▲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있다.
겉으로는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힘겨루기로 보이지만 실제로 안 대표를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안 대표는 20일 서울 용산구에서 상인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1야당 경선 참여는 고민 끝에 한 결정인데 지금 제1야당은
안철수와 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을 묻자 “국민의당은 많은 당원들을 지닌 원내정당이고 나는 공당의 대표”라며 “왜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안 대표는 전날 모든 야권 인사가 참여하는 통합 경선을 국민의힘에 제안했지만
김종인 위원장은 이를 "뚱딴지 같은 소리"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경선에 참여하려면 국민의힘에 입당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이 안 대표가 내미는 손을 뿌리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안 대표가 김 위원장을 연장자이자 정치 원로로서 비교적 깍듯하게 예우해 왔음에도 김 위원장은 번번히 안 대표에게 무안을 줬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에서 비대위를 맡은 이후 줄곧 ‘안 대표와 통합할 생각 없다’, ‘안 대표는 남의 당 사람’, ‘안 대표 얘기는 하지도 말라’ 등 안 대표와 엮이기 싫다는 발언을 쏟아 냈다.
그는 지난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며 윤 총장에게 대선 무대로 나올 것을 넌지시 제안하면서도 안 대표를 놓고는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깎아내렸다.
김 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안 대표에 대한 불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김 위원장이 안 대표를 두고 내놓는 발언은 '샅바싸움'을 위한 정치적 수사라 하기에 상당히 감정이 서려있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의 본격적인 인연은 안 대표의 정치 입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 대표는 2011년 정치 초보로서 김 위원장를 멘토로 삼아 조언을 청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안 대표에게 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오면 제3당으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며 총선 출마를 권유했지만 안 대표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뭐가 있냐’며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부터 김 위원장의 실망감이 싹튼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경제민주화’ 인식도 김 위원장의 비판 대상이 됐다. 안 대표는 2012년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식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경제민주화’를 두고 ‘시장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민주화만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등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사람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김 위원장과 안 대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각 정당의 대표로 마주하게 됐다.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안 대표는 옛 국민의당의 공동대표로 있었다.
당시엔 지금과 반대로 김 위원장이 안 대표 쪽에 야권 통합을 제안했다.
국민의당의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김종인 위원장의 제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안 대표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단칼에 거부했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손을 잡게 됐다. 이때도 서로 뜻이 맞지 않다는 점만 확인할 뿐이었다.
대선후보였던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을 선거캠프에 영입해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맡겼다.
그러나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김 위원장은 2017년 4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도 공동정부의 참여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야권 연대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바로 그날 “홍 후보를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혀 다른 말을 내놨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 사이 엇박자는 대선 과정에서 거듭됐다. 여기에 안 대표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거듭 미숙한 모습을 보여 초반의 지지율을 깎아먹고 급기야 선거 결과 3위에 머물게 되자 김 위원장의 실망감도 극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불신감은 단순히 감정적 측면을 넘어 안 대표의 정치역량 부족을 확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안 대표가 받고 있는 지지세를 두고도 '거품'에 불과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보면 안 대표 지지층은 언제든 국민의힘으로 옮겨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안 대표에 대한 개인적 불신감에 더해 여론조사 결과 분석에 따른 '과학적 판단'까지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안 대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안 대표를 다 부정적으로 본다”며 “안 대표의 행보가 용두사미식으로 끝날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
김종인 위원장은 식언을 잘 안 한다”며 “김 위원장이 ‘별의 순간이 윤석열 총장 앞에 왔다’고 한 것은 안 대표를 향해 ‘너는 아니야’고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