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외부인사 CEO’ 라고 하면 대개는 외풍, 외압, 낙하산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개혁을 추진할 외부 CEO의 영입이 필요한 공기업도 있다. 2013년 하반기 원전마피아로 악명을 떨친 한국수력원자력이 바로 그곳이다.


  조석 한수원 사장, "거문고 줄 바꿔 끼우겠다"  
▲ 조석 한수원 사장.
지난 9월 취임한 조석 한수원 사장은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김균섭 전 사장에 이어 두 번째 외부인사 CEO이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김 전 사장의 낙마 이후, 조 사장 역시 개혁의 카드를 빼들었다. 지난 12월19일에는 손병복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 오원수 전 청원건설 전무 등 외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임원직에 앉혔다. 원전본부장으로 외부인과 사무직 출신을 선택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의 파격 인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 조 사장은 “2014년을 원전 비리 없고 안전성을 신뢰받는 ‘원전 원년’으로 삼고,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뼈를 깎는 자정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내부 출신 CEO vs 외부 영입 CEO

6대 김균섭 사장 취임 이전까지 한수원 사장직은 내부 출신의 인사가 맡아 왔다. 5대 사장까지가 모두 모회사인 한국전력 출신이었다. 2001년 한수원 설립 이후로 특정 학교 출신들이 ‘라인’을 형성해 납품업체, 혹은 은퇴한 한수원 임직원이 관계된 관련업체와 유착하고 감사 기능과 임원직을 장악해 한수원을 ‘라인’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동안, 뚜렷한 개혁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4대와 5대를 연임한 김종신 전 사장이 고리원전 사고 은폐 건으로 물러나고 원전업체인 한국정수공업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 개혁의 필요성은 절실해졌다. 한수원 내부에 부패가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한수원 사장은 산자부 장관이 임명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승인하는 방식이다. 산자부는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한수원 사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첫 외부 출신 CEO가 된 김균섭 전 사장은 과감하게 한수원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발전소 기술직 순환보직을 도입해 직원들이 한 지역을 연고지 삼아 납품업자와 유착하는 행태를 쇄신하고자 했다. 2012년에는 본사 처장급 직위의 3분의 2 이상을 바꾸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원전 비리에 따른 위조부품 사건의 책임을 지고 면직되었다.


조 사장은 김 전 사장의 임무를 이어받아 한수원 개혁의 선봉에 섰다. 지난 9월 취임해서 12월 중순에 외부 인사 출신 임원을 영입하기까지 3개월여의 시간이 소모되어, 언제까지 시동을 걸 준비만 하고 있을 것인지를 묻는 시각도 있었다. 조 사장은 2011년부터 2년간 지경부 차관을 지냈는데, 당시 원전 및 국내 에너지 정책을 총괄했던 만큼 원전 비리에 도의적인 책임이 있지 않냐는 의문도 등장했다. 긴 침묵 끝에 조 사장이 내놓은 첫 번째 개혁안은 외부 인사의 영입이었다. 고위직 외부 인재 영입을 확대해 원자력 순혈주의를 타파하자는 의도이다.


조 사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도 거문고의 줄을 바꿔 끼운다는 의미의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새해 화두로 내세웠다. 어려울 때일수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기본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자는 뜻이지만, 지난해 한수원을 뒤흔들어놓았던 원전 비리라는 ‘줄’을 깨끗한 새 줄로 갈아 끼운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조 사장은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밝히고, 외부 인사를 대거 임원으로 기용함으로써 그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