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반도체 핵심소재인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한 점을 놓고 일본 기업의 이익과 수출규제 명분쌓기를 염두에 둔 행보로 파악된다.

8일 무역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한동안 한국 대상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강경한 태도를 지켰던 데에서 한 걸음 물러서 상황을 살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한국에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허가해 '냉탕 온탕' 양동작전 구사

▲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일본 경제산업성은 7월 초 포토레지스트를 비롯한 반도체 소재 3개의 한국 수출을 개별허가로 전환했다. 최대 90일까지 수출 허가를 미루거나 아예 거부할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30여 일 만에 삼성전자 대상으로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를 수출하는 안건을 허가했다고 전해졌다. 

이를 놓고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강화에 따른 일본 반도체 소재기업의 피해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수출규제 수위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반도체기업은 핵심소재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 왔다. 예컨대 수출규제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의존도는 90%를 넘어선다. 이번에 허가된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도 삼성전자가 일본 JSR과 신에츠케미칼의 전체 생산물량 50% 정도를 사들여 왔다. 

이 때문에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 허가를 미룰수록 일본 소재기업도 한국에 팔아왔던 물량을 대신 수입할 곳을 찾아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대체 수입처를 찾거나 소재 국산화로 ‘탈일본’에 성공한다면 일본 소재기업도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일본 내부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는 “한국과 거래가 정체되는 사이 한국 안에서 불화수소 등의 생산체제가 정비되면 세계에서 일본 기업과 맞붙게 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한 이유로 전략물자의 수출관리 미흡을 들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일부 수출안건을 개별허가해 수출규제 강화의 명분을 쌓으려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번에 허용된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는 사용량이 많지 않아 반도체 생산에만 쓰인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비교적 쉬운 전략물자로 꼽힌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도 8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상의 수출규제는 수출금지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에서 잘 이해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은 수출규제와 관련된 국제 여론전에서 비교적 수세에 있다”며 “이런 상황을 고려해 수출규제 논리를 뒷받침할 ‘액션’으로서 일부 수출안건을 허가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를 무역제한 행위로 규정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일본 정부가 선제적 조치에 나섰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의 개별허가를 거부한다면 세계무역기구에서 한국이 무역제한 행위로 피해를 봤다고 볼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지금처럼 거부 없이 일부 안건을 개별허가한다면 실질적 피해를 입증하기 쉽지 않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