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은행 도쿄지점 직원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부당대출, 리베이트 관행, 관리부실 등 국내와 다른 해외지점의 영업환경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우리은행의 전 도쿄지점장인 김모씨가 8일 자살했다. 김씨는 2011년부터 우리은행 도쿄지점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귀국했다. 김씨는 수백억 원대의 불법대출 혐의로 금감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금감원 조사에 대한 심적 부담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KB국민은행 도쿄지점 직원이 자살하기도 했다. 당시 한일 금융당국은 KB국민은행의 부당대출 및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합동검사를 진행중이었다.


두 명이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끊으면서 도쿄지점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금융계는 도쿄지점의 영업환경이 비극을 불러왔다고 본다.

  은행의 도쿄지점 잔혹사  
▲ 4월 9일 새벽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모습


◆ 낮은 인지도 때문에 한정된 고객층


이번에 부당대출 혐의가 적발된 은행은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이다. 이 은행들은 자체 검사 결과 도쿄지점에서 각각 600억 원대, 100억 원대의 부당대출이 있었다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지난해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5천억 원대의 부당대출 혐의가 적발됐다. 금감원은 국민은행 도쿄지점 불법대출 사건을 계기로 은행권 자체 점검을 지시했고 그 결과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적발됐다.


이 은행들은 대출자격이나 변제능력이 없는 개인에게 대가를 받고 부당하게 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담보가치를 부풀리거나 고객명의를 도용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진출한 국내은행의 주 고객층은 일본 제1금융권의 대출이 어려운 재일교포다. 한국계 은행들은 국내에서와 달리 일본 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일반고객이 거의 찾지 않는다. 주로 신용도가 낮은 현지 교민이나 자금 거래가 깨끗하지 못한 일본 야쿠자들이 일본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한국계 은행으로 찾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 한류 붐이 불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자영업을 시작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졌다. 이들의 자금수요가 늘면서 한국계 은행 도쿄지점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갑’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제2금융권처럼 고금리 대출 영업을 하고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다는 얘기다.


여기에 리베이트를 관행처럼 여기는 일본 내 분위기가 더해졌다. 리베이트를 받으면 일본에서 수수료처럼 회계처리를 하지만 한국계 은행들은 지점장 등 직원 개인이 챙겼다. 이번에 자살한 김씨의 경우에도 리베이트에 대해 일본 내 관행을 따랐을 뿐이란 얘기를 주변에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총체적 관리 부실


해외지점에 대한 부실한 감독도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된 리베이트의 경우 일본 내 관행이라고는 하나 일본 금융회사들은 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점장의 대출 전결권을 회수해 본점이 직접 대출 관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계 은행들의 경우 국내 지점이나 일본은행보다 감시와 규제를 덜 받는 점이 문제가 됐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해외사업 확대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면서 막상 해외영업점에 대한 관리는 은행 자체감사에 맡기고 있을뿐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해외지점에서 이뤄지는 대출의 경우 본국에서 심사를 하더라도 꼼꼼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대출 규모가 크지 않아 서류로만 대출심사가 통과되는 사례도 있다.


해외지점의 지점장 발령이 공공연하게 인사보상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승진을 위해 잠시 거치는 곳으로 인식돼 직원들이 영업관리에 소홀하다는 얘기다. 이번에 자살한 김씨도 일본에서 3년의 지점장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현재 우리금융 계열사의 임원으로 재직중이었다.


일단 금감원은 김씨의 자살 때문에 현지조사를 잠정중단한 상태다. 장례 기간이 끝나면 조사를 다시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발생한 국민은행 사태는 전 도쿄지점장 등 2명이 일본에서 4천억 원을 불법 대출해주고 뒷돈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