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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벼랑 끝에서 만든 서정진의 1조 재산

박은영 기자 dreamworker@businesspost.co.kr 2014-04-03  19: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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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벼랑 끝에서 만든 서정진의 1조 재산  
▲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무일푼에서 시작해 1조 원의 재산을 만든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서 회장이 이끄는 셀트리온그룹은 셀트리온홀딩스를 중심으로 모두 7개의 국내 계열사를 두고 있다. 자산은 4조5천억 원 대에 이른다.

그는 맨손으로 그룹을 일궈내는 과정에서 신체각서를 무수히 쓸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문인지 주가 시세조종, 매출 부풀리기 등 어두운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다.

◆ 대우그룹 해체 뒤 맨손으로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다 

서 회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동료 10여 명과 함께 2000년 6월 (주)넥솔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바이오사업에 뛰어들었다. 넥솔은 세계적 제약기업의 바이오 프로젝트를 발굴해 직접 투자하거나 합작 형태로 바이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서 회장은 대우그룹을 나와 창업을 결심하면서 성공의 원칙을 세웠다. 우선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하는 산업이어야 하고, 진입장벽이 높아 경쟁자들이 쉽게 진출 할 수 없는 분야여야 하며 우리나라의 강점과 부합하는 분야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 회장은 당시 2013년부터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들의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라는 데 주목했다. 서 회장은 “대세는 생명공학”이라며 옛 동료들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서 회장은 1년 동안 미국을 포함해 40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직접 바이오 전문가들을 만났다. 그는 뒷날 “당시 창업은 직업을 얻는 것이었다”는 말로 절박감을 표시했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 바이오 전문가들을 무턱대고 찾아 다닌 것도 그런 절박감 때문에 가능했다.

'페이퍼(보고서)에 없는 것은 필드(현장)에 있다'는 그의 철학은 그때 만들어졌다.

서 회장은 말도 잘하고 발표도 잘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서 회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나면 투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우리말이든 영어든 능수능란한 말솜씨를 자랑한다”고 전했다.

넥솔 시절 서 회장을 알고 있는 한 인사는 “부하직원들에게 굉장히 엄하기로 유명하다”며 “대부분 일을 직접 챙기며 호통을 칠 땐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 사채시장에서 신체포기 각서도 쓰고 자살 문턱까지 가다

서 회장은 풍채만큼이나 배포도 크다. 그는 키 180cm, 체중 100kg의 거구다. 그는 2011년 셀트리온을 바이오시밀러 대표주자로 키운 경영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짤짤이 아십니까? 짤짤이 할 때 아도치죠, 제가 아무것도 없이 한 열댓 번 쳐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실력이 있어도 운 없이는 불가능 한 일입니다.” 짤짤이는 손 안에 동전을 넣고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은 채로 흔들면서 동전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히는 놀이다. 아도친다는 건 도박에서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에 배팅한다는 뜻이다.

서 회장은 미국 바이오기업 벡스젠과 KT&G로부터 2000년 초반 투자를 이끌어내 사업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2004년 생산하기로 했던 에이즈 백신이 미국의 임상에 실패하면서 사업이 크게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셀트리온은 세계에서 바이오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 제넨텍의 에이즈 백신을 인천공장에서 생산하고, 이 기술을 이전받아 다른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무산되자 주주들이 동요했다. 직원 월급을 못 줄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서 회장은 이런 위기를 사채를 조달하면서 헤쳐나갔다.

서 회장은 주식을 발행해도 아무도 사겠다고 나서지 않자 직접 구입한 뒤 그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썼다. 서 회장은 "신체 포기각서를 하도 많이 써서 명동 사채시장에서 저 사람은 더 떼어갈 장기도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술회했다.

그는 하도 어려워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고 북한강으로 차를 몰고 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그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살아나 셀트리온으로 벤처 신화를 일궈냈다.

서 회장은 1957년 충북 청주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울 정도여서 간신히 인천의 제물포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서울로 와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과을 졸업하고 삼성전기에 입사했다.  당시 손병두 제일제당 이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생산성본부로 옮겼다.

서 회장은 여기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만났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대우그룹 컨설팅을 하다 김 회장의 눈에 들어 1991년 34세의 나이로 대우그룹 임원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회사를 나왔다.

서 회장은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전략실 고문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사표를 쓰면서 “회사 수뇌부의 일원으로서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퇴직금도 포기하고 나왔다가 장모에게 “뭘 먹고 살려냐”는 핀잔을 듣고 창업을 결심했다.

서 회장은 정관계에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2011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셀트리온 2공장 준공식에 200명이 넘는 정관계 인사가 참석할 정도였다. 당시 서 회장과 제물포고 선후배 사이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서 회장을 정치권으로 영입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치켜세웠고 송영길 인천시장은 “서 회장과 나는 정말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 자산 4조5천억 원의 셀트리온그룹을 만들어 내다

서 회장은 현재 지주회사 셀트리온홀딩스를 중심으로 모두 7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코스닥 상장회사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두 곳이다. 2012 회계연도 기준 자산규모는 4조5113억 원에 이른다.


셀트리온은 2005년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2009년 2월 시가총액이 1조4700억 원 수준으로 올라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1년 바이오벤처로 시작한 셀트리온은 12년 만에 직원 1500명을 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서 회장은 현재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97.2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셀트리온지에스씨의 68.42%, 셀트리온헬스케어의 50.31%, 셀트리온에스티 7.27%의 지분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셀트리온의 경우 개인 지분은 없으니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해 지배를 하고 있다.

셀트리온그룹은 2012 회계연도 기준 매출액 4500억 원이다. 셀트리온이 3489억 원으로 가장 많다. 그룹 전체 매출의 78%를 차지한다. 셀트리온제약은 447억 원, 셀트리온헬스케어는 33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셀트리온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은 셀트리온이 BBB 등급으로 가장 높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BBB 등급은 상업 거래를 위한 신용능력이 양호하나, 경제여건 및 환경악화에 따라 거래안정성 저하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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