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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저예산 음악영화 ‘위플래쉬’가 누적 관객 130만 명을 넘어서며 장기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른 살의 신예감독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아카데미상 3개 부문 상을 거머쥔 데 이어 한국 영화관객들에게도 확실한 눈도장을 받는 데 성공했다.
중소 수입사인 '미로비젼' 채희승 대표는 일찌감치 옥석을 가려낸 덕분에 단돈 5천만 원으로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 수입사 '미로비젼' 채희승의 옥석 고르기 '대박'
3일 영화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위플래쉬’는 2일까지 약 133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달 12일 개봉해 9일 만인 20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선 데 이어 4주차에 접어들며 신작들에 약간 밀렸으나 여전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2일까지 누적 매출액도 105억9300만 원에 이른다. 최근 개봉했던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이 100만 명 돌파까지 24일 걸렸는데 ‘위플래쉬’는 이것을 8일을 단축했다. 음악, 그것도 재즈를 다룬 저예산 영화치고 놀라운 흥행 성적을 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외적으로 위플래쉬의 선전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할리우드 직배사가 아니라 중소 영화수입사인 ‘미로비젼’이 들여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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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희승 미로비젼 대표 |
채희승 미로비젼 대표는 이 영화를 수입하는 데 5천만 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흥행추세가 이어져 150만 명을 넘길 경우 수입사가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점쳐진다.
위플래쉬는 애초 단편 시나리오로 기획됐다. 할리우드 영화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차젤레 감독이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해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18분짜리로 공개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공개되자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차젤레 감독은 330만 달러를 투자받아 장편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채희승 대표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단편을 보고 미국 판매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판매계약을 따냈다. 수입사와 경쟁을 피한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구매할 수 있었다.
김정주 NXC대표가 위플래쉬의 국내 수입 공식후원사로 참여한 점도 화제를 낳고 있다. 김 대표는 ‘넥슨문화다양성펀드’ 사업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위플래쉬를 선택했다.
김대표는 NXC에서 2012년 게임과 예술을 접목한 기획전시 ‘보더리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운영과 전시를 후원하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위플래쉬는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여러 영화인들과 음악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영화 평론가 허지웅씨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위플래쉬 추천드렸었죠. 이 영화를 교육물로 보는 분들께 말씀 드리자면 위플래쉬는 유사 매트릭스입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앤드류는 네오, 플렛처는 모피어스. '더 원'을 찾는 이야기”라며 “꽉 짜여진 근사한 오락영화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류승완 감독이나 FT아일랜드 등 유명인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 플렛처 리더십, 왜 유독 한국에서 인기일까
위플래쉬는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청년의 광기와 제자를 극한까지 몰아넣어 한계를 극복하게 만드는 폭군 스승의 이야기를 다룬다.
음악영화 답게 ‘캐러밴’‘위플래쉬’ 등 재즈 명연주를 맛볼 수도 있다. 특히 드럼 연주는 재즈 문외한이라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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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
재즈 사운드를 극장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재관람 관객들이 속출하고 있다. OST 음반과 음원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재즈와 드럼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
위플래쉬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주인공 앤드류는 비정상적 범주에 있는 인물이다. 오직 재즈 드럼 명연주자로 성공하고 싶은 열망뿐이다. 친구나 애인, 가족 등은 안중에도 없다.
스승 플렛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학생들에게 폭언과 때로 폭행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예술의 광기에 사로잡힌 극한의 이 두 캐릭터가 부딪치는 과정이 재즈 리듬을 타고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 제목이 국내에서 위플래쉬로 소개된 점은 다소 아쉽다.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재즈연주곡의 제목이자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예술의 절대적 경지를 향한 스승의 채찍질이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외국어 표기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윕래쉬’라고 표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으로 보인다.
위플래쉬가 미국보다 국내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더 뜨겁다는 점도 주목된다. 플렛처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이 ‘잘 했어, 그만하면 됐어(Good job)’라며 앤드류와 학생들을 몰아붙인다. 그는 '대충'과 '적당히'를 결코 봐주지 않는다.
목표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만을 강요하는 이런 리더십은 미국 등 서구에서 사랑받을 수 없다. 목표가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부모까지 들먹이며 모욕하고 폭언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음악이든 일이든 과정을 즐기고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위플래쉬의 국내 흥행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학교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우리 사회도 1등과 성과, 목표에 찌들려 있다. 더 잘 하라는 채찍질보다 이런 위로의 한마디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Good job!'.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