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해 주택공급 속도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주요 공급 수단으로 꼽히는 도시정비사업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규제 변화로 미분양이 많은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의 오피스텔 전환이 주택공급 속도전의 활로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이미 주택에 가까운 숙박시설로 지어져 있어 관련 제도만 손 보면 주택공급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숙의 미분양 현황과 문제점, 보완할 제도와 정책에는 무엇이 필요한 지 모두 5회에 걸쳐 살펴본다. 우선 대표적 생숙 미분양 지역으로 꼽히는 경기 안산 반달섬과 인천 송도 지역을 돌아보고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과 필요한 제도 보완책을 들어본다. 또 생숙의 오피스텔 전환이 정부의 주택공급에 어떤 영향을 줄 지를 살펴보며 세부 정책에서 어떤 점이 고려돼야 하는지를 놓고 법조계와 학계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본다.

[생숙, 주택공급 활로되나①] 인공섬 위 49층 '모래성 라인', 안산 반달섬 생활형숙박시설 돌파구 '산 넘어 산'

▲ 지난해 10월 정부의 '생활형숙박시설 합법사용 지원방안' 이후 경기 안산시에서 처음으로 생숙에서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한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 <비즈니스포스트>

[안산(경기)=비즈니스포스트]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의 오피스텔 용도 변경은 시작일 뿐입니다.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습니다”

25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에 위치한 반달섬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A씨는 이 지역의 생숙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반달섬에서는 안산시에서 처음으로 생숙 대단지가 오피스텔로 용도변경된 데 따른 기대감과 함께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우려가 뒤섞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반달섬은 전국 최대의 생숙 밀집 단지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를 시작으로 반달섬을 관통하며 현재 시공 중인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2차’까지 16만9585㎡, 약 5만1천 평의 인공섬에 생숙 7천여 실이 이미 들어섰거나 건설되고 있다.

택시 창밖으로 처음 마주한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의 위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하게 다가왔다.

최고 49층, 8개 동, 2554실로 이뤄진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는 하얀 외벽에 빽빽한 창문이 줄지어 있어 인공섬 위에 조각된 단단한 성처럼 느껴졌다.

다만 2021년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주거 사용이 제한되면서 ‘모래성’이 될 위기에 처했었다.
 
[생숙, 주택공급 활로되나①] 인공섬 위 49층 '모래성 라인', 안산 반달섬 생활형숙박시설 돌파구 '산 넘어 산'

▲ 현재 건설되고 있는 최고 49층, 1100여 실 규모의 생활형숙박시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2차'. <비즈니스포스트>

생숙은 장기체류 외국인의 관광수요가 늘어나는 데 대비해 취사가 가능한 숙박시설로 2012년 도입됐다.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에 적용을 받아 2020~2021년 부동산 호황기에 청약통장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전매가 가능하고 완화된 건축기준이 적용된다는 것 등이 장점으로 꼽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21년 정부는 생숙이 주거시설로 ‘오용’되고 있다고 보고 ‘불법전용 방지방안’ 등을 내놓으며 용도 변경 없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규제에 나섰다.

생숙의 숙박업 등록 의무화, 전입신고 제한, 주거용 사용시 매년 공시가격의 10% 이행강제금 부과 등으로 실소유주의 거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대출이 제한됐다. 이런 규제로 수분양자들은 입주 시점에 전입을 할 수 없고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0월 기존 생숙의 숙박업 신고 및 오피스텔로의 용도변경 문턱을 낮추는 ‘합법사용 지원방안’을 내놓고 기존 소유주를 위한 제도적 구제에 나섰다. 올해 9월까지 용도변경을 신청한 소유자에는 2027년까지 이행강제금 부과절차 개시가 유예된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는 안산시에서 처음으로 생숙이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한 사례다. 정부가 합법사용 지원방안을 내놓은 뒤 용도변경된 최대 규모 시설로 반달섬의 ‘희망’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는 수분양자들의 요청과 지난 1월 건축디자인과 산하 생숙지원TF팀을 신설해 적극적으로 행정지원에 나선 안산시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 5월26일 오피스텔로 용도변경 사용승인을 완료했다.

반달섬의 다른 공인중개사 B씨는 “기존에는 이 단지 수분양자들이 1인 시위를 벌일 만큼 올해 4월 첫 사용승인을 앞두고 전입 불가, 대출 제한 등에 우려가 적지 않았다”며 “특히 분양가의 극히 일부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우려 탓에 입주를 앞두고 잔금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는 전체 2554실 가운데 50여 실을 제외한 2500여 실의 오피스텔 용도변경이 마무리돼 법적으로 주거가 가능한 오피스텔로 인정받게 됐다. 전입신고 불가, 대출 제한, 실거주 불허 등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반달섬 일대에서는 안산시의 적극행정이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의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끌어낸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 바로 앞 사거리에는 안산시에 감사를 표하는 입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고 안산시청 홈페이지에는 용도변경 과정에서 힘써온 담당 공무원들을 칭찬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생숙, 주택공급 활로되나①] 인공섬 위 49층 '모래성 라인', 안산 반달섬 생활형숙박시설 돌파구 '산 넘어 산'

▲ 생숙에서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한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 단지 앞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 <비즈니스포스트>

안산시는 여전히 생숙 수천 실을 둘러싼 문제가 온전히 끝나지 않은 만큼 첫 용도변경 사례를 계기로 입주 예정자 등의 주거 불안 해소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주택공급 측면에서 기여할 만한 의미 있는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유인을 강화하는 방향의 세제 혜택이 거론된다.

또 다른 반달섬의 공인중개사 C씨는 “오피스텔 취득세를 대폭 낮추거나 임대를 주면 주택 수에서 제외해주는 등의 규제 완화책이 있어야 오피스텔 전환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실제로 장기 수익률을 고려해 오피스텔 전환을 희망하지 않는 분들도 적지는 않다”고 말했다.

현재 4% 수준인 오피스텔 취득세를 절반 이하로 낮추고 주택 수에 비포함해 다주택자가 지는 여러 세금 부담을 더는 것이 실질적 유인책이라는 설명이다.

이밖에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 이후에 거주지로서 역할을 할 만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일례로 지난 6월부터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1차 입주가 시작되면서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입주민은 교육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안산시와 인근 시흥시를 합쳐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가 4km 바깥에 위치해 입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어린 자녀들의 통학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B씨는 “반달섬 일대가 상업·업무용지인 탓에 학원가는 형성이 가능하지만 학교가 들어설 수는 없다”며 “현재 입주민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해 일부 학교에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등의 방안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생숙의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유도할 수 있는 유인책들이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자리 잡기까지는 사회적 합의, 법적 보완 등의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 했을 때 세제 혜택 등 적용 가능한 재정적 인센티브 방안을 놓고 기존에 오피스텔을 구입한 사람들과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정부에서도 쉽사리 꺼내들기 어려운 선택지로 분류된다.
 
[생숙, 주택공급 활로되나①] 인공섬 위 49층 '모래성 라인', 안산 반달섬 생활형숙박시설 돌파구 '산 넘어 산'

▲ 반달섬과 바다가 맞닿은 수변 산책로, 길게 산책로가 조성돼 있지만 인근에는 추가로 별다른 여가시설 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비즈니스포스트>

공인중개사 A씨는 “당장 상업용지인 반달섬과 인근 시화공단(시화멀티테크노밸리·시화MTV)에 학교가 조성되기는 어렵다”며 “인근에 풍부한 생활 인프라를 갖춘 지역이라고 보기 어려워 실제 거주 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오피스텔로 전환되더라도 대출이 예전만큼 입주 예정자들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으로 관광수요가 늘 것이라는 기대감도 오피스텔 전환보다 생숙 유지를 선택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애초 반달섬의 생숙들은 차로 20분여 거리에 조성될 화성 국제테마파크 방문 수요도 고려해 계획됐는데 그간 지연됐던 화성 국제테마파크 프로젝트가 내년 착공, 2030년 개장을 목표로 사업 진행에 속도가 점차 붙고 있다.

인근 지역 상인들은 전국 최대 생숙 밀집 지역으로 ‘유령섬’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반달섬이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을 받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반달섬의 한 자영업자는 “점심에는 공단에서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 손님들이 많은 편이고 생숙에 묵는 관광객들도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생각보다 적지 않은 것으로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 자영업자는 “당장 식당 등이 몰려 있는 곳에는 눈에 보이는 공실도 많지 않고 아직 입주를 하지 않은 생숙이나 오피스텔 저층에 상가는 나중에 채워지기 마련”이라며 "외부에 알려진 것과 실제 상황에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