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4-12-17 14: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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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가 HBM에서 새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지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 브로드컴이 인공지능(AI) 칩에서 엔비디아 대항마로 부상하면서,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새로운 대형 수요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HBM 대부분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산능력에 여유가 있는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에 HBM을 공급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분장 부회장은 HBM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브로드컴을 중심으로 한 미국 빅테크들의 ‘주문형 AI 반도체’에서 HBM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브로드컴이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위협적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두 기업의 주가가 최근 엇갈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브로드컴 주가는 미국 시각으로 13일 24.43% 급등한 데 이어, 16일에도 10.42% 상승 마감하며 전 세계 시가총액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엔비디아 주가는 13일 2.25%, 16일 2.29% 하락했다.
▲ 브로드컴이 AI 반도체에서 엔비디아 대항마로 부상하고 있다. <브로드컴>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과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며 “향후 3년 동안 AI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브로드컴은 그동안 주로 통신용 반도체를 설계하고, 기업에 데이터센터 관련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맞춤형 주문 반도체(ASIC)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주문형 반도체(ASIC)는 특정 작업에 완벽히 특화한 반도체인 만큼, 사용처가 제한적이지만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전력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구글의 AI 반도체 가속기(TPU), 메타의 자체 AI 칩 'MTIA' 등이 대표적인 주문형 반도체로 분류되는데, 모두 브로드컴이 설계했다.
최근에는 애플이 브로드컴과 손잡고 자체 AI 칩을 개발하고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브로드컴은 구글이 제작을 요청한 신형 ASIC에 최신 5세대 HBM3E를 탑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를 위해 올해 초부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로부터 HBM3E 샘플을 받아서 테스트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에 HBM3E를 가장 많이 공급할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생산할 예정인 HBM3E까지 이미 엔비디아에 공급키로 확정한 만큼, 아직 엔비디아에 본격적으로 HBM3E를 공급하기 전인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브로드컴에 납품할 기회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AMD를 비롯해 브로드컴, 마벨 등 엔비디아 외 기업들에 HBM을 공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주문형 AI 칩에는 중급 사양의 HBM이 탑재됐으나, 2025년부터는 점차 HBM3E 등 고사양 HBMD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세계 고성능 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에서 브로드컴 점유율은 약 35%, 마벨은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이 시작될 예정인 HBM4부터는 기존 HBM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점도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자체 AI 반도체에 맞춘 주문형 HBM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주문에 따라 제작방식을 바꿔야 하는 만큼, 이에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가 HBM4 성공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7월 HBM 개발팀을 신설, 직접 HBM4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도 HBM4에서 경쟁사를 따라잡지 못하면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2025년 하반기 HBM4 양산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HBM4 양산을 위한 전용라인 ‘D1c(10나노급 6세대)’까지 구축했다. 10나노 D램 공정은 D1x, D1y, D1z, D1a, D1b, D1c 순으로 회로 폭이 좁아진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메타 등의 주문형반도체(ASIC) 칩 수요 증가는 주요 공급처인 삼성전자 HBM 사업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는 차기 제품인 HBM4와 이에 적용될 D1c 공정 개발을 통해 기술 경쟁력과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 회복을 동시에 이뤄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