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밥캣 분할과 합병을 뼈대로 하는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성사될지 불확실하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그룹은 앞서 두산에너빌리티 분할·합병비율을 일반주주에 유리하게 조정하고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은 자진철회하면서 반전을 노렸으나, 분할-합병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사업구조 개편을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승부수를 던진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국민연금의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5일 재계와 두산그룹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오는 12일 열릴 두산에너빌리티 주총에서 상정될 인적분할-합병 안건에 대한 의결권자문사들의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표를 행사할 때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를 종합해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처럼 자문사들의 권고가 갈릴 경우 국민연금의 표심 예측이 쉽지 않다.
▲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사업 구조개편을 위한 두산에너빌리티 12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산>
상법 상 분할합병은 주총 특별결의 사안으로 전체 주주 3분의 1이상 참석과,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6.8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사업구조 개편안 발표 이후 불만이 커진 소액주주 반대표까지 더해져 분할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현재까지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국민연금 측은 일부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 민원에 "장기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연급수급권자에 이익이 되도록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의결권과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다.
다만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던 SK이노베이션과 SKE&S 합병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것은 박 회장으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의결권 자문사가 찬성을 권고했음에도,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을 근거로 반대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은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으나 합병비율이 일반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기준으로 산정됐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이 지난 10월21일 기존 분할 합병 안보다 더 많은 주식을 일반 주주에 부여하도록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시장 불신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 중 하나인 ISS는 두산에너빌리티를 하나의 사업에 집중토록 하고 비핵심 투자자산(두산밥캣 지분 46%)을 분리한다는 분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후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합병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지난달 27일 반대 권고를 냈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지난 3일 발송한 주주서한에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의 반대 권고에 논리의 부당성과 일부 사실 오류를 나열하면서, 소액주주들에게 찬성표 행사를 호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는 계속해 나오고 있다.
아주기업경영연구소는 지난 4일 “총수 일가로서 의사결정의 경제적 유익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겨냥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상충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부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은 반대표로 결집하고 있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 전자위임을 받는 중이다. 이날 오후 기준 654명이 의결권을 위임했다. 대부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파악된다.
박 회장은 향후 늘어날 원자력발전 발주에 대비해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여력을 확보하고, 신성장동력인 협동로봇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 분할합병 사업구조 개편안을 내놨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와 한국ESG기준원·한국ESG연구소 등의 기관들이 분할-합병에 최근 찬성 권고를 냈다는 점은 개편안 발표 초기보다는 분위기가 호전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국내 의결권 자문사 아주기업경제연구소는 4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총회 의안에 반대 권고를 내리며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사진)을 겨냥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상충 가능성을 제기했다. <두산>
주총에서 분할합병 안건이 가결된다 해도 이후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라 사업구조 개편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최근 주가 하락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5일 1만8690에 거래를 마감했다. 주식매수청구가격인 2만890원에 비해 10% 넘게 차이가 난다.
주가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내려간다면 차익실현을 위한 주식매수청구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식매수청구 합산 금액이 6천억 원을 넘으면 분할합병이 취소된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2025년 2월21일 재상장 이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주가 변동에 따른 합산지분 가치변동 전망에 따라 주식매수청구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