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아픈 손가락’ 지누스를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 회장은 가구와 매트리스 계열사인 지누스를 인수한 뒤에도 경영에 최대한 덜 간섭했지만 실적 부진이 길어지면서 수장을 현대백화점그룹 사람으로 바꿨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아픈 손가락’ 지누스를 더 이상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믿고 오래 썼던 ‘현대맨’ 이재실 전 현대디에프 대표이사까지 교체하면서 ‘성과주의’ 메시지를 던졌다. |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현대디에프(현대면세점 운영사)의 대표이사도 4년 만에 교체했다.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새 대표에게는 실적 반등이라는 과제를 맡긴 것으로 파악된다.
31일 재계에서는 이번 현대백화점그룹 인사를 놓고
정지선 회장이 현대디에프와 지누스 임원들에게 ‘성과주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날 발표된 현대백화점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현대면세점을 운영하는 현대디에프에서는 임원 승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누스는 상무 승진 명단에 한 명의 이름을 올렸다.
현대백화점그룹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와 주요 계열사 14곳을 합쳐 승진자가 나오지 않은 곳은 현대디에프, 현대드림투어, 대원강업 등 3곳 밖에 없다.
올해 현대백화점그룹 승진자가 29명임을 생각하면 현대디에프와 입장에서는 더욱 뼈아픈 임원인사일 것으로 여겨진다.
지누스에서는 승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현대디에프와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지누스가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지 2년반 만에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심재형 전 지누스 대표이사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누스를 인수한 2022년 3월부터 대표로 일했다. 지난해 1분기와 4분기에 주주들에게 ‘CEO레터’까지 보낼 정도로 실적 반등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왔지만 3년을 채우지 못 하고 대표에서 물러났다.
정 회장은 ‘믿으면 오래 쓴다’는 인사 성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만큼 정 회장이 지누스의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정 회장이 믿고 오래 썼던 ‘현대맨’ 이재실 전 현대디에프 대표이사도 외부 출신인 박장서 영업본부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 전 대표는 2020년 11월 임원인사에서 현대백화점면세점(현 현대디에프) 대표 자리에 올랐다. 면세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펜데믹 상황에서 대표를 맡았다고는 하지만 엔데믹 이후에도 좀처럼 실적을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경질됐다.
▲ 박장서 현대디에프 대표이사 내정자(왼쪽)는 현대디에프에 입사한지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1992년부터 신라면세점, 두타면세점 등에서 영업을 담당했다. 정백재 지누스 대표이사 내정자는 현대백화점그룹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현대맨’이다. |
현대디에프와 지누스의 새 대표들은 시작부터 부담감을 안고 일하게 됐다. 전임 대표들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현대디에프 대표이사 자리에 면세사업 전문가를 앉혔다.
박장서 현대디에프 대표이사 내정자는 현대디에프에 입사한지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1992년부터 신라면세점, 두타면세점 등에서 영업을 담당했다.
이재실 전 대표가 198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이후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패션사업부장, 현대백화점 무역점장, 현대백화점 판교점장 등을 거친 것과 비교해보면 정 회장이 업계 전문가인 박 내정자를 선택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현대디에프 대표 자리에 외부 출신을 앉혔다면 지누스 대표 자리에는 현대백화점그룹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정백재 현대L&C 대표이사를 내정했다.
일각에서는 지누스 한국법인장 출신인 심재형 전 대표를 현대백화점 사람인 정 대표로 바꾼 것을 놓고 앞으로 지누스 경영에 있어서 현대백화점그룹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 대표가 현대L&C를 이끈지 1년 만에 지누스로 차출된 것을 보면
정지선 회장이 지누스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1996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현대에버다임 재경실장, 현대L&C 경영전략본부장 등을 거쳤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 대표 선임에 대해 “글로벌 시장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누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적임자로 판단해 발탁했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