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이 자회사 두산지오솔루션 설립을 추진하며 친환경에너지 프로젝트의 직접 개발을 본격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기자재 분야에서 갈고닦은 실력에 더해 개발사업자로서 시장 입지까지 구축하게 되면 친환경 에너지사업의 전문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셈법이 깔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 회장은 이를 통해 글로벌시장으로 친환경에너지 사업 영역 확대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에너빌리티 풍력·수소 밸류체인 확장, 박지원 시선은 글로벌 에너지시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이 글로벌 에너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17일 두산에너빌리티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두산지오솔루션의 본격 출범에 앞서 필요 인력과 자산을 재배치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두산지오솔루션은 에너지 개발사업을 위해 두산에너빌리티가 설립할 자회사다. 특히 해상풍력, 수소, 연료전지 등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사업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에 두산에너빌리티가 확보했던 개발사업과 운영 프로젝트 5건을 비롯한 자산을 두산지오솔루션에 양도하는 등 사업이관을 위해 필요한 절차들이 진행되는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신규 자회사를 설립해 에너지 개발사업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배경에는 개발사업자로서 시장 입지를 구축하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 기자재사업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는 경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각종 에너지 개발사업에서 개발사업자는 프로젝트를 발굴해 개발과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풍력 분야를 예로 들면 개발사업자를 중심으로 풍력터빈 제조사, 풍력 부품 제조사, 시공업체, 관리업체 등이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동안 두산에너빌리티는 주로 에너지 기자재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왔다. 풍력 분야에서는 풍력터빈을, 수소·가스 발전에서는 가스터빈을, 소형모듈원자로(SMR)나 원전에서는 주단조 등 기자재를 담당해왔다. 

박지원 회장은 에너지 기자재 분야에 집중해 특화된 기술력을 축적하며 글로벌 강자들과 견줄 수 있을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8MW급 해상풍력발전시스템 개발을 추진해 현재 풍력터빈을 포함한 생산체제 구축 계획도 마련해 두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개발하는 이 시스템은 풍속이 느린 한국 환경에 맞춤 설계돼 평균 풍속 6.5m/s에서도 이용률 30% 이상이 가능하도록 로터 직경(블레이드 끝이 그리는 원의 지름)을 205m(블레이드 길이 100m)까지 늘렸다. 직경이 길어지면 바람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이 증가해 발전효율을 높일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8MW급 해상풍력발전시스템(모델명 DS205-8MW)을 통해 국제 인증기관 독일의 데비오씨씨(DEWI-OCC)로부터 국제 형식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로부터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세계에서 5번째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에 성공해 이를 상용화하는 성과도 거뒀다. 

올해 6월 한국중부발전과 2800억 원 규모 보령신복합발전소 주기기 공급계약을 맺으며 380MW 규모의 H급 초대형 가스터빈을 비롯해 스팀터빈, 배열회수보일러(HRSG)를 공급하기로 했다. H급은 1500℃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초내열 합금 소재로 제작한 고효율 터빈이다.

다만 이런 에너지 기자재는 글로벌 강자들이 과점적 성격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분야인 만큼 기술력이 있더라도 진입장벽을 넘기 쉽지 않다. 매우 비싼 가격에 기자재를 도입해야 하는 고객사들로서도 제조사의 신뢰도가 대단히 중요한 평가 요소인데 그런 점에서 두산에너빌리티는 실제 운용 실적(트랙레코드)가 충분치 않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어렵사리 개발한 풍력터빈과 가스터빈은 아직 글로벌 시장으로 본격 확장하기보다는 국내 시장에 국한해 진입을 타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자회사를 통해 개발사업자로서 역량을 더할 수만 있다면 풍력터빈, 가스터빈 등을 직접 도입해 운용 실적을 축적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발사업자는 사업기회를 직접 발굴하고 정부 등 유관기관과도 직접 교섭하는 지점이 많은 만큼 풍력터빈과 가스터빈 시장확대에 더 유리한 점이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개발사업으로 가치사슬을 확장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시간과 비용을 감축할 수 있다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에너지 개발사업은 개발사업자와 각종 기자재업체, 시공업체, 관리업체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두산에너빌리티로서는 가치사슬의 상당 부분을 내재화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친환경 에너지사업 가치사슬을 내재화하는 움직임은 두산에너빌리티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집단들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SK그룹에서는 개발사업자인 SK에코플랜트가 풍력발전 기자재사업을 하는 SK오션플랜트(옛 삼강엠앤티)를 인수한 뒤 시너지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풍력·수소 밸류체인 확장, 박지원 시선은 글로벌 에너지시장

▲ 두산에너빌리티가 개발하고 있는 380MW급 수소터빈의 축소모형. <두산에너빌리티>


박지원 회장은 운용 실적을 쌓아 나가며 글로벌 시장 확대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 친환경 에너지 도입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글로벌 강자들의 입김이 덜한 아시아 시장은 박 회장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 시장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도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6월 베트남 현지 발전사들과 '친환경 연료전환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베트남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친환경 연료전환과 암모니아 혼소 발전 등에서 베트남 발전사들과 협력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두산에너빌리티 풍력사업의 첫 해외진출 지역이기도 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8년 베트남전력공사(EVN)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계한 3MW(메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실증단지 건설을 위한 협약을 맺고 풍력 분야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박 회장은 "이번 성과는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신재생에너지사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두산중공업이 베트남과 풍력발전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