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라이벌] ‘무어의 법칙’ 내세운 인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선전포고

▲ 팻 겔싱어 인텔 CEO가 '무어의 법칙'을 내세워 삼성전자 등 경쟁사에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 우위 확보를 자신하고 있다. <인텔>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의 목표는 2030년까지 세계 2위 반도체 파운드리업체로 도약하는 것이다.”

랜디르 타쿠르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 사장은 최근 닛케이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이 파운드리 분야의 선두가 아닌 두 번째 기업에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점은 다소 이례적이다. TSMC가 해당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 인텔이 이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계획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인텔은 현재 2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TSMC에 버금가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일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60%의 매출 점유율로 1위, 삼성전자는 13%로 2위를 기록했다. 사업 진출 초기에 불과한 인텔의 점유율은 아직 집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인텔이 이처럼 큰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도 수 년 안에 삼성전자를 뛰어넘겠다고 자신한 배경은 경쟁사를 압도하는 규모의 투자 계획과 반도체 미세공정 신기술 도입 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주 및 오하이오주에 각각 200억 달러의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럽 등에 예정된 투자 금액을 합치면 앞으로 10년 동안 시설 투자에 들이는 비용만 업계 최대 규모인 1천억 달러(약 128조 원)를 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새 반도체 공정기술 도입 일정을 의미하는 로드맵도 매우 과감한 수준이다. 인텔은 4나노에 해당하는 인텔4 공정을 2022년 하반기에 상용화했는데, 이는 삼성전자나 TSMC보다 1년 정도 늦은 시점이다.

그러나 차세대 기술인 인텔3 미세공정은 2023년 하반기, 2나노에 해당하는 20A 공정은 2024년 상반기부터 활용하기로 했다. 이는 주요 경쟁사보다 1년 가량 앞선 것으로 단 2년 만에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 수준을 모두 뛰어넘을 수 있다는 도전적인 목표에 해당한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이러한 기술 로드맵을 발표한 뒤 인텔이 ‘무어의 법칙’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앞세웠다.

무어의 법칙은 1965년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가 내놓은 예측을 의미하는 단어로, 반도체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텔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어의 법칙을 실현하며 세계 반도체시장의 기술 발전을 주도해 왔고, 결국 인텔 CPU 기반의 PC가 전 세계에 빠르게 대중화되며 업무 환경과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모두 큰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인텔은 미세공정 기술 발전의 ‘암흑기’를 맞으며 더 이상 무어의 법칙을 선도하는 기업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인텔이 14나노 공정을 2014년 출시한 5세대 CPU부터 2018년 선보인 9세대 CPU까지 무려 5년 동안 활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라이벌] ‘무어의 법칙’ 내세운 인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선전포고

▲ 인텔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사진. <인텔>

인텔이 주춤하는 사이 삼성전자와 TSMC는 파운드리사업에 활용하는 10나노 이하 반도체 공정기술 상용화에 속도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인텔이 10나노 공정을 마침내 도입했을 때 시장의 중심은 이미 7나노 이하 미세공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반도체기업에 따라 나노 단위를 측정하는 기준에 다소 차이가 있고 미세공정이 반도체 성능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기술력이 경쟁사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이미지는 파운드리를 핵심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인텔의 고객사 확보에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팻 겔싱어가 인텔 파운드리사업에서 무어의 법칙을 내세운 것은 지난 수 년동안의 패착을 딛고 첨단 반도체 기술력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으로 인텔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사업 전략에도 반영되고 있다. 인텔은 차세대 공정 기술 개발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차기 CPU를 직접 제조하는 대신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기고 자체 연구개발 조직을 분리해 여러 미세공정 기술을 동시에 연구하도록 했다.

팻 겔싱어는 인텔이 삼성전자나 TSMC보다 효과적으로 투자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시설 투자는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에 분산될 수밖에 없고, TSMC는 첨단 미세공정뿐 아니라 구형 공정에도 꾸준히 증설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 반면 인텔은 첨단 시스템반도체 생산에만 시설 투자를 집중할 수 있어 유리하다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아직도 반도체업계에 널리 쓰인다는 것은 인텔의 기술 주도권과 영향력이 그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이어져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텔이 과거의 패착을 딛고 파운드리 사업에서 기술 선두 지위를 되찾는다면 삼성전자는 그만큼 큰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파운드리사업은 반도체 생산 수율과 원가 경쟁력, 충분한 고객사 기반 확보 등에 크게 좌우되는 사업인 만큼 인텔의 본격적 시장 진출에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있다.

삼성전자와 TSMC도 인텔을 의식해 미세공정 기술 발전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말 ‘파운드리포럼’ 행사에서 2027년 1.4나노 공정 도입 계획을 공식화했고 TSMC는 더 나아가 1나노 반도체 생산 투자 계획도 구체화하며 격차를 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동안 삼성전자와 TSMC의 ‘2파전’ 양상을 보이던 반도체 파운드리시장 기술 경쟁 판도는 이제 해당 기업들이 인텔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지를 두고 시험대에 놓이며 더욱 치열한 각축전을 보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3부 - 삼성 vs INTEL
(3) 인텔 메모리반도체 50년, 삼성전자에 밀려 역사 속으로
(4) '무어의 법칙' 내세운 인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선전포고
(5)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인수합병 가능성, 인텔의 선례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