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로 이익확대 기대한 조선업계, 후판 가격 올라 이익 줄까 촉각

▲ 조선업계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조선사들의 이익 폭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수주잔고 리스크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포항제철소 침수 피해에 따른 후판 가격 상승에 다시 직면할 가능성도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비즈니스포스트] 고환율에 미소 짓던 조선업계가 포스코 포항제철소 침수에 후판 가격이 더 오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수주잔고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후판 가격까지 강세를 이어간다면 실적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고환율에 따른 실적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사들은 판매 대금을 달러로 받는 만큼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이익폭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1409.7원을 기록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으로 1400원을 넘어섰다.

이런 환율 고공행진을 고려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존 계획(0.25%포인트 금리 인상)과 달리 0.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올해 연말 한국과 미국 기준금리 격차가 1%포인트가량(미국 4.5%, 한국 3.5%) 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이 지속할 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증권업계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최소 1450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아직 러시아 수주잔고의 불확실성 리스크를 모두 해결하지 못한 탓에 고환율에 따른 수혜에 더욱 기대를 걸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선해양은 자회사 현대삼호중공업이 러시아에서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3척을 성공적으로 다른 선주에게 재판매하며 러시아 리스크를 대부분 털어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아직 러시아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올해 초 기준 러시아와 맺고 있는 계약규모는 대우조선해양이 25억 달러(3조 원), 삼성중공업은 50억 달러(6조 원)가량이다.

이동헌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러시아 수주잔고 리스크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한정된 문제”라며 “두 기업은 러시아 수주잔고의 매출 지연으로 더딘 실적개선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고환율에 따른 기대감, 러시아 수주잔고에 따른 위험성이 혼재한 상황에 더해 후판 가격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용 철강재로 주로 사용된다. 선박 건조비용의 20%가량을 차지해 조선사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힌남노’로 침수되는 피해를 보며 국내 철강제품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업계에서는 포항제철소 피해가 후판 공급 차질에 영향을 미쳐 당장 철강업계와 조선업계 사이 진행되고 있는 올해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서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후판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세 번의 협상에 걸쳐 톤당 60만 원 급상승해 톤당 12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당초 조선업계에서는 최근 1년 사이 후판 가격 급등에 따른 조선업계의 어려움, 철강업계의 실적 호조에 따라 하반기에는 후판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시선이 우세했다.

후판 등 원자재 가격 상승 탓에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상반기에 3500억 원, 지난해에는 1조3천억 원에 이르는 공사손실충당금을 반영했다. 삼성중공업도 올해 상반기 2600억 원, 지난해 3700억 원가량의 충당금을 반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한국조선해양과 합병 무산, 하청노조 파업 과정에서 도크(선박 건조시설) 점거에 따른 피해, 분리매각 등 대내외적 이슈에 시달려왔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은 분리매각을 제외한 현안들이 차례로 마무리되면서 지난해부터 이어진 수주 호황을 기반으로 한 내년 흑자전환 기대감을 키워오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20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 연간 기준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2018년 1조248억 원을 정점으로 감소하다 지난해 1조7547억 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은 실적 측면에서 대우조선해양보다 더 급한 상황이다. 분기 기준으로는 2017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17개 분기 연속, 연간 기준으로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연속된 적자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였던 재고 드릴십(심해용 원유 시추선) 5척을 모두 매각 또는 용선하는 데 성공했다.

두 회사 모두 각각 긍정적 영업 환경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판 가격이 재차 상승하게 된다면 내년 영업흑자 전환 목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 하반기 후판 협상에서 최근 포항제철소 침수 피해의 영향이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LNG운반선 등을 높은 선가에 수주해 실적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상황에서 후판 가격이 다시 상승한다면 조선사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울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 포항제철소 침수 피해의 영향이 적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최소 2~3개월 분량의 후판 재고가 남아있고 포스코 광양제철소 가동, 해외로 후판 공급선 다변화 등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조선용 후판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공통으로 생산하고 있다”며 “광양제철소 최대 생산 체제 병행 및 현재 재고 수준을 고려하면 수급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다른 관계자는 “아직 몇 달 치 재고가 남아있지만 포항제철소 정상 가동 중지가 장기화하면 후판 가격 상승보다 후판 조달 자체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후판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것 자체 역시 또 다른 비용을 발생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