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장수 전 주중대사
김장수 전 주중대사.


김장수는 1948년 2월26일 광주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27기로 임관해 군 생활을 시작했다. 7군단장과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6번을 받아 제18대 국회의원이 됐다.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초대 국가안보실 실장으로 임명됐으나 2014년 5월22일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사임했다.

2015년 3월27일 주중 대사에 임명돼 2017년 9월까지 일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박근혜 정부는 물론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중용됐던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국방부장관을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국방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실세이자 4성 장군 출신의 군 전문가다. 육사 27기로 현역 군인 시절 야전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의 작전·전략분야의 핵심보직을 거쳐 군내 대표적 작전·전략통으로 꼽혔다.

국방부 장관 시절 김정일과 악수할 때 홀로 허리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중수교 뒤 23년만에 군 출신이 주중대사에 임명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관계에서 군사안보 분야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외교분야 경험이 부족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주중대사에 임명된 뒤 우리정부가 중국정부에 아그레망을 신청한 지 2주 만에 임명동의가 이뤄졌다. 통상 2~3주가 걸렸던 점에 비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처리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국가안보실장으로 있으면서 북한의 도발위협이 감지되자 3개월 동안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청와대 인근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상황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 일로 '온몸을 바쳐' 역할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가 초동대처를 잘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반박성 해명을 내놓아 책임회피 논란을 불렀다. 결국 1년 3개월만에 안보실장에서 물러났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면서도 군 선후배들로부터 '장수다운 장수'라는 평가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니스와 골프 등 각종 스포츠에 능하다.

이명박 정부 초기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과 비교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비판을 받는 가운데 국방부 장관직에서 물러나며 관사를 내주고 전셋집을 구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6번으로 당선되며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참여정부 인사들로부터 변절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광주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군내 대표적 호남인맥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부하들의 고향이나 임관출신 등을 놓고 차별하지 않아 군에서 두루 존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례대표 의원 시절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하는 인사라는 평가도 받았다.

당 최고위원까지 지냈지만 2013년 4·11 총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재선을 하지 않겠다'고 불출마 소신을 밝혔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육군사관학교 27기를 졸업한 뒤 1996년 육군 제1군 사령부 작전처장, 2000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2001년~2003년 4월 육군 1군단장 등 야전에서 작전 지휘관 경력을 쌓았다.

2003년 4월부터 2004년 5월까지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냈으며 뒤이어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2005년 제37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임한지 1년 7개월 만에 제40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노무현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2008년 총선 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국방·안보 분야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국회에서 국방위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당 최고위원을 역임하며 여당 내 주류에 진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초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아 안보라인의 컨트롤타워가 됐다.

그러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대처에서 부실함을 보인 데다 “(청와대는)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비난을 받으며 경질됐다.

2015년 3월 주중대사에 부임했다. 군 출신이 중국대사를 맡은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3년여 만에 처음이다.

2017년 9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 학력

1967년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육군사관학교를 마쳤다.

1989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 가족관계

부인 박효숙과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아들도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 상훈

2008년 미국 국방부 공로훈장을 받았다.

2008년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았다.

2007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6년 미국 공로훈장을 받았다.

2002년 보국훈장 국선장을 받았다.

1996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 상훈

2008년 미국 국방부 공로훈장을 받았다.

2008년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았다.

2007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6년 미국 공로훈장을 받았다.

2002년 보국훈장 국선장을 받았다.

1996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어록


“한중 관계의 잠재적 에너지를 현실화하는 데 주력하겠다. 한중 관계는 굉장히 많은 잠재적 에너지가 있다. 한중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라는 목표와 관련해 살을 더 붙여 나가야 한다.”(2015/03/31, 주중대사 부임 위해 베이징 서우두 공항 도착 뒤 특파원들과 만나)

“(나만 보면) 사드, 사드 하는데 제 이름이 김사드가 아니다. 경제, 문화 등 할 일이 많다.”(2015/03/30,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질문이 쏟아지자)

◆ 평가

박근혜 정부는 물론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중용됐던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국방부장관을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국방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실세이자 4성 장군 출신의 군 전문가다. 육사 27기로 현역 군인 시절 야전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의 작전·전략분야의 핵심보직을 거쳐 군내 대표적 작전·전략통으로 꼽혔다.

국방부 장관 시절 김정일과 악수할 때 홀로 허리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중수교 뒤 23년만에 군 출신이 주중대사에 임명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관계에서 군사안보 분야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외교분야 경험이 부족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주중대사에 임명된 뒤 우리정부가 중국정부에 아그레망을 신청한 지 2주 만에 임명동의가 이뤄졌다. 통상 2~3주가 걸렸던 점에 비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처리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국가안보실장으로 있으면서 북한의 도발위협이 감지되자 3개월 동안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청와대 인근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상황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 일로 '온몸을 바쳐' 역할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가 초동대처를 잘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반박성 해명을 내놓아 책임회피 논란을 불렀다. 결국 1년 3개월만에 안보실장에서 물러났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면서도 군 선후배들로부터 '장수다운 장수'라는 평가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니스와 골프 등 각종 스포츠에 능하다.

이명박 정부 초기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과 비교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비판을 받는 가운데 국방부 장관직에서 물러나며 관사를 내주고 전셋집을 구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6번으로 당선되며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참여정부 인사들로부터 변절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광주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군내 대표적 호남인맥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부하들의 고향이나 임관출신 등을 놓고 차별하지 않아 군에서 두루 존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례대표 의원 시절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하는 인사라는 평가도 받았다.

당 최고위원까지 지냈지만 2013년 4·11 총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재선을 하지 않겠다'고 불출마 소신을 밝혔다.

◆ 기타

장남인 김용우 대위는 육사 62기로 2006년 소위로 임관해 현재 육군 7사단에서 대위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육사에서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