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필리조선소의 4번 도크에서 2025년 12월22일 함정 건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시스>

[비즈니스포스트] 한화그룹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필리조선소)가 선박 건조 공간 부족과 비용 경쟁력 확보, 고객 유치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필리조선소가 직면한 문제들은 미국의 다른 제조업 분야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정책 성과를 예측할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12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한화필리조선소가 제시한 사업 계획의 타당성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화그룹의 조선과 방산 계열사인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2024년 12월 1억 달러(약 1342억 원)를 들여 필리조선소를 공동 인수한 뒤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그러나 컨설팅 업체 카라차스마린어드바이저스의 바질 카라차스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필리조선소와 같은 미국 조선소에 좋은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화필리조선소에 선박 건조 공간이 부족하고 한화 계열사를 제외한 고객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필리조선소에서 가용할 수 있는 도크(선박 건조 작업장)는 2곳에 불과해 수주 물량을 즉시 처리하기 어렵고 추가 고객을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실제로 한화필리조선소의 수주 잔고 가운데 대부분은 한화그룹의 미국 해운 계열사인 한화해운이 채우고 있다. 한화해운은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10척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 등을 발주했다.

그룹 외부에서 발주된 상선으로는 미국 선사 매트슨의 컨테이너선 3척이 있다.

다만 미국 연방법인 존스법(Jones Act)에 따라 미국 해역에서 운항하는 민간 선박은 미국 내에서 건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잠재 수요는 충분한 셈이다.

한화그룹은 이에 대응해 선박 건조 능력을 확충하고 있다. 2025년 8월 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약 6조 7천억 원)를 추가 투자해 연간 2척 수준인 상선 건조 능력을 최대 20척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26년 9월 필라델피아의 옛 미 해군 조선소 내 47에이커(약 19만㎡) 부지를 임대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해 선박 조립시설과 부두 등을 조성할 수 있는 부지다.

주요 재원은 한미 조선산업 협력 투자 펀드다. 한국 정부는 관세 인하 협정에 따라 1500억 달러(약 201조 원) 규모의 대미 조선업 투자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15일 펜실베이니아주 칼라일에 있는 육군 전쟁대학에서 열린 국방 및 혁신 서밋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화필리조선소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조선과 반도체 및 철강 등 핵심 제조업에서 중국을 비롯한 해외 공급망 의존도를 축소하고 자국 내 생산 설비 구축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 필리조선소가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정책에 대표 사례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화필리조선소 외에 인도 에사르그룹이 미국 아이오와주에 건설하는 15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철강 공장도 중요한 프로젝트로 지목했다.

다만 두 사업 모두 인력 확보와 높은 비용 등 약점을 안고 있어 투자를 실행하는 단계에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의 경우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조선소나 철강 공장처럼 비용 경쟁력이 중요한 산업에 불리하다. 이는 미국의 제조업이 지난 수십년에 걸쳐 쇠퇴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제조업 부흥 전략을 추진하는 데 한계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한화필리조선소가 대규모 투자로 수주 성과를 내며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대만 폭스콘이 미국 위스콘신주에 100억 달러(약 13조4천억 원)를 투자해 디스플레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지만 공급망과 비용 문제로 규모를 크게 줄인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한화필리조선소와 아이오와 제철소 등 2기 정부에서 추진되는 주요 프로젝트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화필리조선소가 대규모 확장 투자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여러 약점을 극복할 잠재력이 있다.

미국 싱크탱크 카토인스티튜트의 콜린 그라보우 연구원은 4월 현지 매체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에 “한화필리조선소가 연간 20척의 선박을 건조하기 전까지는 동아시아 조선소와 경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