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 정부가 반도체 및 장비, 핵심 소재의 수출 통제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업계가 중국의 공급망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어 무역 전쟁에 더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희토류 채굴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중국에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기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반도체 업계가 중국산 희토류 공급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무역 전쟁이 본격화되면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업계가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에 예상보다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지시각으로 9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발표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보고서가 근거로 제시됐다.

SIA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제조장비와 소재 구매에 연간 270억 달러(약 36조 원)를 들인다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약 95%는 미국과 유럽, 일본 기업에서 사들인다.

그러나 실제 제품의 생산국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미국과 유럽, 일본의 비중은 68%에 그치고 중국이 5%,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 구매하는 장비와 소재뿐 아니라 원재료와 부품 공급망까지 범위를 넓히면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SIA는 특히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주요 광물 소재인 갈륨의 약 95%, 텅스텐의 약 85%가 중국에서 생산된다고 전했다.

반도체 제조 장비에 필요한 희토류인 네오디뮴과 프라세오디뮴, 터븀의 전 세계 공급량 가운데 약 95%를 중국이 책임지고 있다는 통계도 제시됐다.

결국 SIA는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와 소재 공급망의 가장 깊숙한 영역에는 중국의 지배력이 절대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미국과 동맹국의 반도체 생태계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로 지목됐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기술 규제에 대응해 희토류 및 희귀금속 수출 통제를 무기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위치한 희토류 광산 사진. <연합뉴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정부가 일부 갈륨과 텅스텐 제품, 7종의 희토류 및 관련 제품에 수출 허가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 광범위한 수출 통제 조치는 2025년 10월 발표된 뒤 2026년 11월10일까지 시행이 유예됐다.

중국 정부가 수출 통제 확대를 미루는 것은 미국과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 등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데 희토류 수출 통제를 협상카드로 앞세워 양보를 이끌어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뒤 “희토류와 기타 핵심 광물에 관련해 양국이 협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공급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SIA는 미국이 궁극적으로 중국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핵심 품목을 대상으로 전략적 비축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반도체 생산에 필수로 쓰이는 광물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비축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다만 미국이 이러한 노력으로 반도체 필수 공급망을 모두 대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희토류나 희귀광물의 자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까지 10년 이상, 자체 생산한 소재를 실제 반도체 제조에 활용할 수 있을지 검증하는 데 3~4년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SIA는 미국 정부가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동맹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고품질 소재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제안도 전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핵심광물 채굴과 정제, 가공 설비에 공동으로 투자하면 공급망을 중국 이외로 다변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활용해도 공급망 재편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미국 정부가 당분간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수출 통제를 피하는 일이 최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반도체 공급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서 중국이 우세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는 셈이다.

SIA는 “반도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안정화하는 작업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며 “이러한 과정을 시작하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