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언자는 살아 있는 한 언제든 유언을 고칠 수 있고 통째로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주택 단지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언은 한 번 쓰면 끝나는 문서가 아니다. 유언자는 살아 있는 한 언제든 유언을 고칠 수 있고, 통째로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다.
민법 제1108조는 유언자가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정한다. 철회에 이유는 필요 없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강의를 하면서 드는 예가 있다.
“여러분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막내 자식에게 재산 전부를 물려 준다는 유언장을 썼습니다. 그런데 유언장을 작성하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저녁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오늘 한 유언을 철회합니다.”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것과 유언 철회에 인과 관계가 있나요? 물론 없습니다. ”
“유언 철회, 변경은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유언을 하는데 망설이지 마세요. 언제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유언의 철회나 변경은 자식이 서운하게 했든, 유언자의 마음이 바뀌었든, 아무 까닭이 없든 상관없다. 유언은 유언자의 최종 의사를 존중하는 제도이고, 그 '최종'은 사망 직전까지 계속 갱신되기 때문이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유언을 바꾸는 그 순간 유언자의 정신이 온전했어야 한다. 유언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철회하거나 변경할 때에도 의사능력이 있어야 하고, 분쟁이 생기면 그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상속 분쟁의 상당수가 바로 여기서 터진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마지막 몇 주를 보내던 무렵 새 유언장이나 재산 처분 계약서가 등장하면, 형제 중 누군가는 반드시 "그때 아버지는 판단할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유언 철회는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법 제1109조는 유언 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면 그 저촉된 부분의 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본다. 아파트를 장남에게 준다고 써 두고 그 아파트를 팔았다면, 유언은 그 범위에서 철회된 것으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판 돈은 어떻게 되는가. 대법원이 최근 이 질문에 의미 있는 답을 내놓았다(대법원 2026. 6. 24. 선고 2024다260146 판결).
사건은 이렇다. 아버지는 2016년 11월 자필 유언장을 썼다. 울산의 부동산을 네 자녀에게 각 1.75/5, 0.95/5, 1.75/5, 0.55/5 비율로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법정상속분대로라면 각자 4분의 1이다. 아버지는 일부러 차등을 둔 것이다.
그런데 그 부동산이 지역주택조합 사업부지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2019년 3월 조합과 8억 원에 매매계약을 맺었다. 당시 그는 췌장암 말기로 요양병원에 있었고, 19일 뒤 세상을 떠났다.
자녀들은 4분의 1씩 상속등기를 한 뒤 조합에 팔아 각자 1억 7700만 원씩 받았다. 유언상 더 많이 받기로 한 자녀가 유언의 효력 확인을 구했다. 적게 받기로 한 자녀들은 "아버지가 부동산을 팔았으니 유언은 철회된 것"이라고 맞섰다.
원심은 철회 쪽 손을 들었다. 유언 목적물을 팔았으니 유언과 저촉되는 생전행위라는 것이다. 형식논리로는 깔끔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저촉'의 의미부터 다시 짚었다. 저촉이란 전 유언을 실효시키지 않으면 뒤의 행위가 유효할 수 없거나, 뒤의 행위가 유언과 양립할 수 없다는 취지가 명백한 경우를 말한다.
그 판단은 유언자의 실제 의사를 따져 신중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목적물을 처분했더라도 그 매매대금 같은 대상재산에 유언의 효력을 미치게 할 의사가 추단된다면, 처분했다는 사정만으로 쉽게 철회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법원이 든 사정은 이렇다. 첫째, 유언의 핵심은 '이 부동산' 자체가 아니라 '법정상속분과 다른 배분 비율'이었다. 둘째, 매매대금은 부동산이 형태만 바뀐 대상재산이다.
셋째, 유언장을 쓸 무렵 이미 조합 추진이 활발했고 주택법상 매도청구 제도도 있었으니, 아버지는 결국 부동산 대신 돈이 남을 수 있음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넷째, 죽음을 앞두고 맺은 계약에서 그 돈을 병원비로 쓰거나 남에게 주려 한 정황이 없다. 다섯째, 법률가도 아닌 노인이 매매 후 '대금도 같은 비율로 나눈다'는 유언을 새로 쓰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판결의 날은 여기서 선다. 원심의 논리대로라면 유언으로 부동산을 차등 분배한 부모가 그 부동산을 파는 순간 자녀들의 몫은 자동으로 법정상속분으로 되돌아간다.
부모가 그것을 원했을 리 없다. '판다'는 행위와 '나눈다'는 의사는 다른 층위의 문제다. 대법원은 행위의 겉모습이 아니라 의사의 실질을 봤다. 이유 없는 철회까지 허용하는 근거가 유언자의 진의 존중에 있다면, 진의에 반하는 '간주 철회'는 그 취지를 거꾸로 세우는 것이다.
다만 이 판결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유언의 효력이 미친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며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을 뿐이다. 유언자가 대금으로 다른 부동산을 샀거나, 써 버렸거나, 특정 자녀에게 넘겼다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사망 19일 전, 병상에서 인감이 찍힌 매매계약서가 작성됐다. 이 사건에서는 그 계약의 효력이 다퉈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 계약이 유언을 뒤집는 방향이었고 당시 의사능력이 쟁점이 됐다면, 분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렀을 것이다. 유언을 바꿀 자유는 무제한이다. 그러나 그 자유를 온전한 정신으로 행사했다는 증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실무의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유언장에 "목적물이 매각·수용될 경우 그 대금과 대체재산에도 같은 비율을 적용한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 법원의 선의에 기대지 말고 유언자가 직접 말해 두어야 한다.
둘째, 유언을 쓰거나 바꾸거나 중요한 재산을 처분할 때는 그 시점의 판단능력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공정증서 유언, 의사의 소견서, 작성 과정 영상이 그것이다. 유언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바꿨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 정신이 멀쩡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변경은 법정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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