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도청에 대해 이중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AI 비서'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 논란에 대해서는 귀를 닫으면서,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 책임 분담에 대해서는 도청을 하라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도청'에 대해 이중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청이란 남의 음성통화를 몰래 엿듣거나 이메일·문자메시지 등을 몰래 엿보는 행위를 말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 책임을 통신사들도 분담해야 한다'는 금융업계 일각의 주장과 관련해 '가입자들의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내용을 임의로 엿듣고 엿보라는 것이냐'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이하 연합회)는 지난 9월30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이동통신사에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 책임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 감청·검열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꽤 오래 전부터 금융권을 중심으로 기금을 조성해 보이스피싱 피해 보상에 사용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근거를 담은 법도 발의돼 있다. 금융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해킹 공격을 받아 고객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 국정감사에서 주요 이슈가 되면서, 기금 조성 얘기가 다시 불거지며 이동통신사 책임 분담 얘기까지 나오자 공방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회는 우리나라 통신서비스 사업자 단체이다.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을 위해 일한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주축이다. 주로 이동통신 3사가 개별적으로 나서기 불편한 상황이거나 낯간지러운 말을 해야 할 때, 연합회가 사업자들을 대신해 나선다.
감청이란 국가정보원은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 목적으로, 공수처와 경찰 등 수사기관은 수사를 이유로 각각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이메일을 몰래 엿듣거나 엿보는 것을 말한다. 통비법에 따라 내국인은 법원 영장, 외국인은 대통령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합회의 용어 사용 맥락으로 볼 때, 불법 감청은 도청을 말한다.
연합회는 보도 참고자료에서 "통신비밀 보호는 통신사업자들의 의무다. 음성통화·문자메시지 내용을 임의로 들여다보며 사기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법적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 책임을 분담하라는 것은 범죄를 막기 위해 통신 내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라는 논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연합회에 따르면 금융업체에 과실이 없더라도 보이스피싱 피해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금융권에선 '범죄 예방에 이동통신사와 수사기관 등이 함께 참여하는데, 배상 책임을 금융업체에만 지우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포폰'(명의 도용 휴대전화) 등 통신망이 범죄에 이용되는 만큼 이동통신 사업자들도 피해 배상 책임 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금융사와 이동통신사 권한과 역할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금융사는 고객 자산을 보호하고 거래를 승인하며 자금 흐름을 통제할 수 있지만, 이동통신사는 계좌 정보나 이체·인출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합회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통신망의 결함이나 서비스 중단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닌 만큼 통신서비스 제공과 금전적 피해 사이에 배상 책임을 물을 인과관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렌트카를 이용한 범죄가 발생했다고 해서 렌트카 업체나 도로관리기관에 피해 금액을 배상하라는 것과 같은 불합리한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금융사 전산시스템 해킹 공격과 은행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둘러싼 수면 밑 공방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공방과 관련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도청에 대해 이중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게 더 눈길을 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AI 비서' 서비스의 통비법 침해 소지 비판에 대해 수년째 눈을 감고 있다. 통신서비스 사업자의 기본 덕목이자 의무인 통신비밀 보호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의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 책임 분담 주장이 나오자, '통신비밀 의무'를 앞세워 발끈해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나라는 통신비밀 보호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다만 통신비밀보호법 절차에 따라 예외적으로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이나 수사 목적일 때는 법원 영장이나 대통령 허가를 받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연합뉴스>
우리나라는 통신비밀 보호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도청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 다만 통비법의 '감청' 절차에 따라 정보·수사기관만이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이나 수사를 목적으로 예외적으로 할 수 있다. 그나마도 법원 영장과 대통령 허가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SK텔레콤은 2023년 '에이닷'이란 이름의 인공지능(AI) 비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AI로 이용자의 음성통화 내용을 분석한다. 발라낸 데이터로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 연속성 보장을 명분으로 통화 내용을 요약해 저장하기까지 한다. SK텔레콤 서버(컴퓨터)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서비스 출시 단계부터 통비법 위반 소지 논란이 일었다. SK텔레콤은 에이닷 가입 때 사용자 동의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동의를 받으니 통비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화는 둘이 하는 것이다. 상대가 있다. 에이닷 서비스가 통비법 위반 소지 논란을 피하려면 통화 상대의 동의(통화 내용 분석과 요약본 저장)를 구하는 절차를 둬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SK텔레콤 측은 "사람이 엿듣는 게 아니라 AI가 통화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라 통비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AI 역시 사람이 쓰는 도구'이고 'AI 뒤에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LG유플러스도 2024년 '익시오'란 이름으로 AI 비서 서비스를 내놨다. 이 업체 관계자는 "에이닷과 유사한 구조의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모든 과정을 가입자 단말기에서 이뤄지도록 해 통비법 위반 소지 논란을 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일부 과정이 회사 서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통비법 위반 소지 지적에 대해 "AI 서비스를 하지 말라는 거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AI 비서 서비스는 이용자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 투명성 논란도 빚고 있다. 사업자들이 처음 설명이 뒤집어지고, 음성통화 원본 등 서비스 출시 때는 수집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 이후 개인정보처리지침 변경을 통해 추가 수집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이후 이동통신사들이 뭘 더 수집하고,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통신 사업자들은 새로운 사실이 불거져 논란이 일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할 뿐, 공개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있다.
이동통신 3사 가운데 KT는 아직 AI 비서 서비스를 내놓지 않고 있다. KT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앞서 출시된 AI 비서 서비스들이 통비법 위반 소지 논란과 개인정보 부당 수집 의혹을 빚고 있어 출시를 미루고 있다"고 했다.
결국 '내로남불' 비판까지 쏟아진다.
이동통신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AI 비서 서비스를 'AI 에이전트' 형태로 발전시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에 따라 이동통신 회선(가입자 유치) 장사로는 더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이자, AI 비서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유료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정말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AI 비서 서비스의 통비법 위반 소지 논란부터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들로부터 어떤 정보를 얼마나 수집해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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