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톰 크루즈(오른쪽)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왼쪽)이 6일(현지시각)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영화 '디거' 시사회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몇 달 전 네팔에서 고산지대 빙하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홍수 참사는 기후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온 위기라는 경종을 울렸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도 인간의 무분별한 경제 활동으로 빙하가 붕괴하는 사건을 다룬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했는데 톰 크루즈를 비롯한 화려한 출연진과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다.

다만 이 영화가 기후변화의 현실을 알리고 대응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기여했다는 외신의 호평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21일 가디언,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디거'가 제작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는 처참한 흥행 성적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디거는 영화 '레버넌트'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 및 각본을 맡고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화려한 배우진에 제작비 약 1억2500만 달러(약 1657억 원)를 들여 제작했고 앞서 2일(현지시각)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순차적으로 개봉했다.

포춘은 디거가 개봉 2주차 기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약 353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영화 제작비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한 처참한 성적이다.

포춘은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약 5천만 달러(약 665억 원)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며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흥행 실패작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작품성을 위주로 보는 영화 평론가들의 반응도 매우 좋지 않은 편이다. 영화에 대한 긍정평가를 보여주는 '로튼토마토 지수'가 최고 100% 만점에 52%를 기록하는 데 머물렀다. 로튼토마토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부정적 평가가 상당수 존재하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수준이다.

외신들은 영화의 성적과 별개로 디거가 기후위기의 현실을 묘사하고 대중이 체감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에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20일(현지시각) 분석 기사를 통해 "이 영화는 과장되고 인간 혐오적인 영화로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며 "하지만 우리 시대에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는 기후변화 영화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앞에서 화석연료 퇴출과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디거는 석유 재벌 '디거 록웰'의 일생을 묘사한 영화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디거는 미국 정부와 담합해 벌인 북극 시추 과정에서 그린란드에서 거대한 빙하 '주디'가 떨어져 나올 수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주디가 노르웨이 해안과 충돌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을 보고도 디거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매우 낮은 확률을 믿고 계속 채굴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참사는 실제로 발생했고 디거는 유럽인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결탁해 사태의 원인을 은폐하고 책임을 축소하려는 시도를 벌인다.

영화에서 발생한 참사의 원인은 극지방 빙하이고 무분별한 시추가 원인이 됐다.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발생한 것은 아니나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최근 히말라야 고산지대 빙하가 붕괴하며 수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낸 네팔 홍수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식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도 사건의 성격이 같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 미국 대통령은 미리 빙하가 무너질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도 "이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네팔 홍수 참사도 중국의 관측 위성이 미리 빙하 붕괴의 조짐을 잡아냈지만 이를 무시하고 네팔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디언은 "디거의 메시지는 섬뜩하지만 불편할 정도로 정확하다"며 "우리 모두가 현재와 미래 세대에 가하고 있는 대재앙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묵인해 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태 발생 직후 해명을 위해 유럽인들과 마주한 디거는 "당신들도 알고 계속 석유를 써오지 않았느냐"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실제 석유 기업들이 자주 꺼내드는 논리이기도 하다.

제이슨 그린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칼럼을 통해 "기후위기를 다루는 영화는 항상 제작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기후위기가 너무 거대한 문제라 이를 와닿게 묘사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번 영화는 어쩌면 최악의 기후위기 영화로 위장한 역대 최고의 기후위기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포춘은 디거를 향한 평론가들의 박한 평가를 두고 영화계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판단을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영화 평가 플랫폼 IMDb의 디거 영화 평점은 10점 만점 기준 7.5점으로 양호한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디거는 앞서 3일 한국에서도 개천절 연휴를 맞아 개봉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20일 기준 누적 관객 수는 9만 1786명, 누적 매출은 약 9억7205만 원에 불과하다.

야후엔터테인먼트는 디거의 흥행 참패 원인은 주제 선정보다는 전달 방식에 있다고 봤다.

브랫 아널드 야후 영화 평론가는 온라인 평가를 통해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끔찍하고 참을 수 없게 지루하며 허세가 가득했다"며 "감독의 자기중심적 면모가 영화의 전제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 주장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지경"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이 영화는 기업이 이윤을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는 세상을 풍자하려는 시도였지만 전혀 웃기지도 않고 새롭거나 흥미로운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