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 은행장 연임 가능성이 안갯속에 빠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5대 은행장이 국정감사에서 내부통제 부실 문제를 넘어 은행장 연임 자격과 선임 절차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서 연임의 길이 더욱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5대 금융지주 모두 연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임기가 대거 끝나는 만큼 은행장 교체는 다른 계열사 경영진의 연쇄 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5대 은행장을 증인으로 한 국회 정무위 국감은 해킹 사고뿐 아니라 대출금리, 지배구조 등 은행 전반의 경영을 놓고 의원들의 강한 질타를 받으면 그 어느 때보다 매운 맛 국감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5대 은행장이 나란히 증인으로 채택된 것은 2022년 이후 4년 만이다. 당시에도 2017년 이후 5년 만의 집단 소환이었지만 은행장들을 상대로 한 질의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회 시간을 제외하고도 3시간 넘게 질의가 이어졌다. 최근 해킹 사고와 관련한 경위와 피해 구제에서 시작된 질문은 우대금리 축소와 해외법인 금융사고, 경영진 선임 절차까지 폭넓게 다뤄졌다.

▲ 5대 은행장이 국감에서 내부통제 책임과 연임 자격까지 추궁받으면서 금융지주들의 연말 인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졌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이 19일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국감 후반 질의에 나선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킹 외에도 산적한 현안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는 점을 짚으며 “그동안 너무 국정감사를 피해 오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의원들은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은행장들의 연임이 적절한지도 따져 물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의 임기는 모두 올해 12월31일 끝난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장 연임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물었다.

이 의원은 실적, 내부관리 등도 중요하지만 실제 인사에서는 지주 회장의 의중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며 이사회가 실적과 내부통제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은행장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고객정보 보호와 내부통제에 미흡했던 은행장이 연임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따져 물었다.

정상혁 행장을 향해 직접적으로 연임 의견을 묻기도 했는데 정 행장은 당장은 연임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은행의 이환주 행장도 해킹 초기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기에 은행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금리 조정으로 고객 부담을 키웠다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올해 7월 시행된 개정 은행법에는 차주의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행이 부담해야 할 일부 법정비용을 가산금리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 시행 전후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이 가산금리를 낮추면서 우대금리를 더 큰 폭으로 줄여 오히려 은행이 가져가는 몫을 늘렸다고 지적했다.

이환주 행장과 강태영 행장이 금리 조정 경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자 유동수 정무위원장은 은행장이 우대금리 정책도 제대로 알지 못하느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두 은행에 금리 산정 내부 기준을 정무위원들에게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나은행은 정보유출 사고에 따른 관리 책임에 더해 은행장 선임 절차도 도마에 올랐다.

이호성 행장은 선임 과정에서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는지를 놓고 지적을 받았다. 하나금융지주가 함영주 회장의 연임을 앞두고 임기·연령 관련 내부규범을 바꾼 문제까지 다뤄지면서 비판은 그룹 지배구조 전반으로 확대됐다.

우리은행은 해킹 피해를 막은 보안체계로 거센 질타가 이어진 국감장에서 드물게 칭찬을 받았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진완 우리은행장에게 “잘한 부분은 칭찬을 드리려고 한다”며 발언 기회를 줬다. 정 행장은 이중 인증 등 해킹 방어에 활용한 보안체계를 설명했다.

다만 우리은행도 해외법인 금융사고와 소비자보호 문제에서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정보유출 피해가 없었던 강태영 농협은행장 역시 우대금리 축소와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하락 문제로 지적을 받았다.

전날 국감에서 은행별로 지적받은 내용과 책임의 정도는 다르다.

그러나 각 금융지주와 은행 이사회로서는 내부통제뿐 아니라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서 현직 행장의 연임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금융당국의 후속 검사도 연임 판단에 변수로 남아 있다.

금융감독원은 해킹 사고와 관련해 CEO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까지 살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임 이후 검사 결과에 따라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지주가 고려해야 할 부담이다.

▲ 연말 5대 금융지주에 ‘인사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 설치된 은행 ATM. <연합뉴스>


올해 말 5대 금융지주에서 임기가 끝나는 계열사 CEO는 은행장을 포함해 54명에 이른다.

은행은 각 금융지주에서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계열사로 꼽힌다. 은행장 인사에 가장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만큼 은행장 인사는 그 뒤 이뤄질 계열사 대표 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비은행 강화 흐름에 따라 비은행 계열사 CEO 중에 은행장을 발탁하는 흐름도 강해지고 있다. 현재 4대 은행장을 봐도 이환주 행장과 이호성 행장이 각각 KB라이프생명 대표와 하나카드 대표를 거친 비은행 대표 출신 은행장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주요 계열사 CEO가 은행장으로 새롭게 이동한다면 연쇄 작용은 더욱 커질 수 있는 셈이다.

금융지주들이 현직 은행장의 연임과 교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인선 과정에 관한 검증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금융당국이 현재 진행 중인 은행장 선임 절차를 놓고도 강도 높은 검증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국감에서 은행장 인선 절차에 관한 점검 요구에 “법 개정 이전이라도 지금 현재 은행권에서 이루어지는 인선절차와 관련된 점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서 지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실제로 성과를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전해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