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장이 2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수출입은행 등에 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현재로서는 매각 계획이 없다.”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장은 2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수출입은행 국정감사에서 수은이 보유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의에 이렇게 말했다.

황 행장은 다만 앞으로의 지분 처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단정적으로 언급하기가 어렵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날 국감에서는 공급망안정화기금 운용 등 생산적금융 활성화와 관련된 정책금융 본연의 업무에 관한 질의와 더불어 KAI 민영화 논란을 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날 선 질의가 나왔다.

특히 의원들의 공세가 집중된 것은 수은이 2026년 8월 발주한 18억 원 규모의 '우주·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컨설팅 용역'이다.

수출입금융을 본업으로 하는 국책은행이 우주항공 산업 전반을 다루는 대규모 컨설팅을 직접 발주한 데다 발주 시점이 한화그룹의 KAI 지분 확대 시기와 겹쳤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컨설팅 용역이 KAI 민영화를 위한 사전 실사가 아니냐는 시선을 받아 왔다.

한화그룹은 2025년 11월 한화시스템을 통해 KAI 지분 0.58%를 사들이며 2018년 지분 전량 매각 뒤 7년 만에 다시 주주가 됐다. 올해 5월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바꾼 뒤 8월에는 지분을 15.89%까지 늘렸다.

수은은 KAI 지분 26.4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한화그룹이 지분을 15.89%까지 늘려 2대주주로 올라섰지만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결국 수은이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2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수출입은행 등에 관한 국정감사에서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KAI 민영화의 열쇠를 사실상 수은이 쥐고 있는 셈이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수은이 금융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대규모 국가산업 관련 용역을 진행한 것은 최근 5년 동안 처음”이라며 “컨설팅 용역 금액인 18억 원도 굉장히 이례적으로 높은 단가”라고 지적했다.

통상 비슷한 규모의 용역은 사전 절차에 서너 달이 걸리는데 이번 용역은 3주 만에, 실제 업무는 9영업일 만에 끝났다는 점도 짚었다. 수은이 '정부 요청'으로 진행했다고 명기한 용역도 이번이 유일하다고 했다.

국감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7월3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국민보고회에서 우주항공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고 수은은 7월 중순부터 재정경제부와 컨설팅 일정과 과업 범위 등을 협의해 8월 용역을 발주했다.

안 의원은 “결국 컨설팅 용역도 그렇고 한국항공우주 민영화 ‘답정너’로 가고 있다고 보이는 구석이 많다”며 “수은이 구조개편을 한다면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고 말했다.

황 행장은 이와 관련해 수은이 진행한 우주·항공사업 컨설팅 용역은 민영화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황 행장은 컨설팅 발주 배경에 관해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뒤 정부와 협의를 해서 용역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재정경제부에서 후속 조치 차원에서 같이 협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KAI 지분 매각에 관한 직접적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국감에서 황 행장을 향해 “18억 규모의 용역을 3개월 만에 마무리하려고 하는 것은 좀 특별한 용역인 것 같다”며 “현장, 지역에서는 어느 기업으로 몰아주려고 ‘앵커’기업 얘기를 하려는 건가 하는 걱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한국항공우주 최대 주주인 수은 행장이 국정감사 현장에서 (한국항공우주 민영화 관련) 공식적 입장 표명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황 행장은 “이번 용역과 관련해 한국항공우주의 민영화라든지 매각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전제로 용역을 실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한화그룹의 KAI 경영 참여에 따른 방위산업 독과점 문제를 꺼내 들었다.

강 의원은 “파는 곳이 한 곳이 되면 값을 깎자고 해도 안 될 거고 납기를 지키라고 해도 정부가 기댈 데가 없다”며 “하나의 회사가 육해공을 다 장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의원은 오후 보충질의에서 일반증인으로 출석한 김종출 KAI 사장에게도 “보이지 않는 손이 한국항공우주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있다는 시장의 시각이 있다”며 “한국항공우주는 누가 최대주주든 독립경영을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냐”고 물었다.

김종출 사장은 강 의원의 말에 “동의한다”며 “누구나 한국항공우주를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구성원의 동의 없이 (한국항공우주) 지배구조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한화그룹이 경영권을 장악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는 윤후덕 의원의 질의에는 “일단 독과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경쟁체계와 한국 항공산업의 생태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KAI가 항공기 한 대를 만들 때 한화 쪽에서 30~40%를 납품하는데 한화가 어떤 부분에서는 공급업체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경쟁업체라는 것이다.

▲ 김종출 KAI 사장이 2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수출입은행 등에 관한 국정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실제 한화그룹의 KAI 지분 확대와 관련해 국가 예산으로 키운 방위산업 역량을 민간에 넘기는 게 맞느냐는 공공성 논란이 나온다.

정부가 한국형 전투기 KF-21 체계개발비 약 8조8천억 원 가운데 60%를 부담했는데 수익화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정부 지분이 민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KAI 민영화 논란이 이제 막 본격화한 만큼 남은 2년 임기 내내 황 행장을 따라다닐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황 행장은 공급망안정화기금 운용과 중동 위기에 대응한 경제회복 지원, 22조 원 규모의 인공지능 전환(AX) 특별프로그램, 비수도권 기업 대상 정책금융 공급 등 생산적금융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한국항공우주 민영화 논란까지 떠안게 된 셈이다.

황 행장은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정책금융으로 역할을 강조했다.

황 행장은 “지금은 수출의 저변을 넓히고 다양한 산업이 성장하도록 지원하며 우리 기업들이 대외 충격에 흔들리지 않도록 정책금융이 든든히 뒷받침해야 할 때”라며 “수출입은행은 위기에 먼저 달려가는 금융, 지역의 기업을 세계로 잇는 금융, 미래 산업을 키우는 생산적 금융을 제공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황 행장은 1990년 수출입은행에 입행해 서비스산업금융부장, 인사부장, 기획부장, 남북협력본부장 등을 지냈고 2023년부터는 상임이사에 올라 리스크관리, 디지털금융, 개발금융, 정부수탁기금 업무 등을 총괄했다. 윤희성 전 행장에 이은 두 번째 내부출신 행장으로 2025년 11월 취임해 이번에 첫 국감을 치렀다.

재경위는 23일 수출입은행 등을 포함한 종합감사를 진행한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