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저장장치업황 부진으로 수주에 고전하다 대규모 수주를 따냈지만 또 다시 발생한 화재로 국내 에너지저장장치사업이 상당 기간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정명림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사장.
에너지저장장치사업에서 부진이 이어지면 현대일렉트릭의 경영정상화도 그만큼 지연될 수 있다.
30일 현대일렉트릭은 해남 솔라시도 태양광단지 조성사업에 필요한 에너지저장장치의 EPC계약(설계에서 자재조달, 공사, 시운전까지 한 회사가 도맡는 방식)을 969억 원에 수주했다고 밝혔다.
현대일렉트릭이 1년에 수주하는 에너지저장장치사업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계약이다.
현대일렉트릭은 이번 에너지저장장치 수주가 2019년 첫 수주일 정도로 수주 부진에 시달려 왔다.
현대일렉트릭은 해마다 2천억 원에 이르는 에너지저장장치를 수주해왔다.
올해는 앞으로 솔라시도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없는 만큼 정 사장은 소규모 에너지저장장치의 수요 공략에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규모 에너지저장장치의 수요 자체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잠잠해진 줄로만 알았던 에너지저장장치 화재가 최근 다시 재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경북 군위에서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정부의 에너지저장장치 안전강화 대책이 발표된 뒤 발생한 세 번째 화재다.
특히 앞서 24일 평창 풍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에너지저장장치 화재는 현대일렉트릭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가 모두 중소 설치회사들이 시공한 에너지저장장치에서 화재가 일어났기 때문에 에너지저장장치사업이 다시 활성화되면 이른바 에너지저장장치 대형 3사(LS산전, 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시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평창 풍력발전소의 에너지저장장치 설치회사는 효성중공업이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제는 메이저 설치회사들도 화재원인 조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부가 내놓은 에너지저장장치 안전강화 대책의 실효성을 향한 근본적 우려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정부가 에너지저장장치의 안전성과 관련해 다시 고강도 조사를 실시한다면 현대일렉트릭은 모처럼 확보한 대형 수주의 혜택을 당장 누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업황 자체가 위축돼 다시 수주 부진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저장장치는 현대일렉트릭의 매출 가운데 15% 안팎을 담당하는 사업으로 비중이 작지 않다.
게다가 현대일렉트릭은 주력사업인 전력기기사업의 부진으로 고전하는 동안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과 맞물려 에너지저장장치로 실적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대일렉트릭은 정부가 올해 초 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원인조사에 들어가면서 산업 자체가 위축되자 결과와 대책이 발표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화재사건으로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다시 움츠러들 가능성이 커 정 사장의 비상경영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 사장은 앞서 9월 유상증자와 자산매각을 통해 3천억 원을 확보하고 20개 사업조직을 4개로 축소하는 한편 전체 임원의 40%를 줄이는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밝히며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에는 현대오일뱅크에 용인시 마북리 연구소의 토지와 건물을 560억 원에 매각했고 5월에는 유휴인력 200여 명을 현대중공업으로 옮기기도 했다.
이런 자구계획을 통해 정 사장은 현대일렉트릭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19년 2분기 기준으로 현대일렉트릭의 부채비율은 214.3%에 이른다.
그러나 재무구조를 개선하더라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대일렉트릭의 정상경영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김동혁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현대일렉트릭의 재무구조 악화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에너지저장장치 수주 정체, 국내 발전기기시장 침체 등 요소들이 결합된 결과”라며 “영업실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재무지표는 다시 악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내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주요 매출처인 한국전력이 지난해 4분기부터 연속 적자를 내며 신규 설비투자가 줄어든 탓에 현대일렉트릭도 전력기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이 유지되는 한 에너지저장장치는 성장이 예상되는 사업으로 수주는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라며 “자구계획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에너지저장장치가 결국에는 실적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