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커다란 사업기회를 만들어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영업을 총괄하는 책임이 한층 커진 상황에서 정 대표는 그동안 공들여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돈독한 관계를 중심으로 영업과 관련한 과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다진 정기선, 현대중공업 수주기회 더 키우다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5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정 대표는 2월24~25일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에서 열린 IKTVA(In-Kingdom Total Value Add) 프로그램의 5차 포럼에 직접 참석했다.

IKTVA 프로그램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에너지부문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와 협약을 맺은 회사들만이 앞으로 아람코가 진행할 각종 자원 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데 정 대표는 이번 포럼에서 현대중공업이 아람코와 장기 공급계약(LTA)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 대표가 양해각서 체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번 계약을 위해 직접 포럼에 참석한 것은 맞다”며 “그동안 정 대표가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에서 큰 역할을 해왔으며 이번 포럼 참석도 그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아람코가 포럼에서 밝힌 투자계획의 규모나 협약을 맺은 상대 회사들의 면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정 대표가 올린 성과는 현대중공업에게 의미가 크다.

알 바와바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람코는 해양유전 및 가스전 개발을 위해 올해부터 6년 동안 100기 가량의 고정식 플랫폼을 발주한다. 이 해양플랜트들의 예상 발주규모는 모두 210억 달러(25조 원가량)에 이른다.

그런데 아람코가 포럼에서 협약을 맺은 상대 회사들 가운데 조선사는 현대중공업뿐이며 나머지는 일본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MHPS)나 독일 지멘스 등 육상 EPC(일괄도급사업) 및 에너지회사들이다.

이는 현대중공업이 이번 협약으로 아람코가 발주할 해양플랜트들과 관련해 EPC 수주까지는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해양플랜트의 선체(Hull) 건조는 독점 수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에게 해양부문 일감 확보는 최대과제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 8월부터 해양부문의 일감이 없어 유휴인력을 다른 사업부문이나 계열사로 전환배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미국 킹스키(King’s Quay) 프로젝트에 쓰일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Semi-Submersible FPU) 선체의 건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유휴인력의 일부만이 건조작업을 위해 복귀했다. 게다가 이 일감마저도 올해 하반기면 사라진다.

현재 글로벌 해양플랜트 발주시장은 현대중공업이 수주전에 뛰어든 베트남 블록B 프로젝트를 포함한 다수의 계획들이 최종 투자승인(FID)을 받지 못한 채 얼어붙고 있다.

에너지회사들의 해양유전 개발계획은 대체로 국제유가 60달러가 손익분기점인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표는 현대중공업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해양부문의 일감을 풀어낼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 성과는 정 대표 개인에게도 의미가 작지 않다.

정 대표는 2018년 11월부터 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맡고 있지만 그동안 수주영업은 사실상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이 총괄해왔다.

그런데 가 사장은 3월 열리는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의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두 회사의 사내이사에 올라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정 대표는 앞으로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로서 책임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영업전략을 펼쳐나갈 기반을 다진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다진 정기선, 현대중공업 수주기회 더 키우다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가 2019년 6월26일 한국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독대해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프레스 에이전시 인스타그램>


정 대표는 현대중공업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다지기를 주도해왔다.

2015년부터 현대중공업그룹과 아람코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성사시키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직접 지휘했고 2016년에는 현대중공업과 아람코가 사우디아라비아 합작조선소 ‘IMI(International Maritime Industries)’를 짓는 계약도 맺었다.

정 대표가 쌓아올린 현대중공업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지난해 9월 현대중공업이 IMI에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설계도면을 지원하는 대신 선박 건조 로열티를 받는 계약을 맺으며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람코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선사 바흐리를 통해 초대형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12척을 발주할 계획도 진행하고 있는 터라 정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통해 추가로 영업성과를 일궈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해양플랫폼이든 선박이든 아직 아람코와 수주를 논의하는 단계까지는 아니다”면서도 “이번 장기 공급계약 양해각서 체결로 수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기는 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