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산업
- KT&G '니코틴 파우치' 시동 걸었다, 방경만 부동산·건기식 침체에 '반신반의' 카드
- 방경만 KT&G 대표이사 사장이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니코틴 파우치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연내 북유럽 니코틴 파우치 업체 인수를 마무리짓고 해당 시장에 진출, 글로벌 확장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이다.다만 글로벌 경쟁업체들은 앞서 유럽, 미국 등 니코틴 파우치 주요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KT&G가 강점을 지닌 중동과 아시아태평양,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니코틴 파우치 인지도가 낮아 사업 확장성을 놓고 우려의 시각이 나온다.2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방 사장은 KT&G의 지속 성장을 이끌 성장 동력을 모색하며 사업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안정적 선택지로서 니코틴 파우치를 낙점한 것으로 분석된다.KT&G에 따르면 회사는 올해 안에 미국 담배 제조사 '알트리아'와 함께 북유럽 니코틴 파우치 기업 'ASF'(Another Snus Factory)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인수대금은 약 2600억 원으로 KT&G는 그 가운데 약 1600억 원을 투자해 ASF 지분 51%를, 알트리아가 49%를 확보한다.이에 내년 1분기부터 ASF 실적이 KT&G에 지분법 이익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ASF는 주력 브랜드 '루프'(LOOP)를 앞세워 북유럽 5개국에서 최상위권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니코틴 파우치는 사용자가 잇몸이나 뺨 안쪽에 넣어 서서히 니코틴을 흡수할 수 있는 제품이다. 담배잎을 사용하지 않고 니코틴과 감미료, 향료 등으로 구성돼 냄새•유해물질 배출이 거의 없다. 장소 제약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어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글로벌 담배업체들은 이미 앞서 니코틴 파우치 상업화에 나서며 사업성을 입증하고 있다.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은 2022년 니코틴 파우치 브랜드 '진'(ZYN)을 보유한 스웨디시매치를 161억 달러에 인수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진 출하량은 2022년 4200만 캔에서 지난해 6억4400만 캔으로 연평균 292% 급증했다. 현재 47개 국에 진출했고 90%가량이 미국에서 판매된다.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는 2017년 니코틴 파우치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 담배회사 RJ 레이놀즈를 인수한 뒤 이듬해 유럽 시장에 '벨로'(VELO, 옛 LYFT)를 출시했다. 유럽 다수 국가에서 50% 넘는 압도적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KT&G와 제휴한 알트리아 역시 2019년 '온!'(on!)을 개발해 북유럽 중심으로 판매하던 스타트업을 인수한 뒤 미국 시장점유율 2위 업체로 안착했다.KT&G가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글로벌 경쟁업체들의 발걸음을 한발 늦게 뒤따라가는 안정적 전략을 채택한 셈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니코틴 파우치 판매량은 2023년 약 156억 개에서 지난해 약 235억 개로 50% 넘게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2030년까지 연평균 30%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KT&G 니코틴파우치 사업의 확장성에 관해서는 우려하는 시선이 나온다.KT&G는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내년부터 북유럽 5개국을 넘어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등 니코틴 파우치 사업 글로벌 확대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방 사장은 9월 빌리 길포드 알트리아 최고경영자(CEO)와 포괄적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니코틴 파우치 포트폴리오 확대 및 시장 공략을 위해 ASF의 제품인 루프와 알트리아의 온!을 KT&G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기로 했다.KT&G 관계자는 "연내 ASF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뒤 니코틴파우치 출시 국가와 제품 등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다만 KT&G의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한다면 현지 법인이 있는 인도네시아, 러시아, 튀르키예, 대만,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ASF의 니코틴파우치 제품 '루프'. < ASF >KT&G는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벌사업의 경우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을 통해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KT&G는 2020년 PMI에 '릴'을 공급하고 한국을 제외한 세계시장에 PMI가 릴을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담배 선도 업체 PMI의 유통·마케팅 역량을 활용해 전자담배 초기 시장에서 해외 진출 비용을 줄이고 함께 파이를 키우는 전략을 채택한 셈이다.KT&G가 현지 법인을 설립한 지역은 기존 궐련형 담배 수요가 높은 곳들이다. 니코틴 파우치 판매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안방인 국내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도 미지수다.KT&G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KT&G 내부에서도 국내 니코틴 파우치 사업 성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해외는 이미 필립모리스와 BAT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만만치 않다. 결국 국내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둬야 하는데, 소비자의 저항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말했다.특히 최근 합성니코틴을 담배 정의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업계에서는 니코틴 파우치도 법적 규제를 받는 담배 제품으로 편입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해외의 경우 스타트업 등이 니코틴 파우치를 막 내놓던 시기 세금과 판매채널 등 규제가 공백인 상태에서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KT&G는 해외궐련 사업 호조 속에 최대 실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성장 동력 확보에 있어 여유가 있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해외궐련과 함께 3대 핵심사업 축으로 삼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와 건기식(건강기능식품) 등이 모두 구조적 침체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올해 3분기 국내 전자담배 침투율은 22.6%를 보였다. 흡연자 4~5명 중 1명은 이미 전자담배로 전환한 셈이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사업이 성숙기 진입으로 KT&G의 전자담배 점유율은 46%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고, 시장 내 판촉 경쟁이 심화하는 추세다.국내 건기식 시장은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지속적 역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KT&G는 비효율 사업을 정비하고 수익성 확보에 집중하는 사업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한 때 KT&G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했던 부동산 사업은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의 영향을 받아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부동산 사업 영업이익은 2021년 2828억 원에서 2023년 705억 원까지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영업손실 45억 원을 기록했다.이에 KT&G는 비핵심 자산을 처분하는 쪽으로 부동산 사업 방향을 틀었다.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해 본업 경쟁력 강화와 주주환원에 활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