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

남희헌 기자
2018-10-2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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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


    ◆ 생애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이자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다.

    기업인이자 정치인, 축구행정가로 활동하며 많은 성과를 냈지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뒤 사실상 정치활동을 중단했다.

    현대중공업이 경영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영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복귀하지 않았다.

    1951년 음력 10월27일 부산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짧은 기간 동안 현대중공업 사장과 회장으로 경영책임을 맡기도 했지만, 30년 가까운 대부분의 기간을 최대주주로 지내면서 직간접적인 영향력만 행사하고 있다.

    정치에 입문해 7선 의원을 지내면서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 등에 출마했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대표도 맡았다.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맡아 한국과 일본 월드컵 공동개최에 기여했다. 피파 명예부회장에 오른 뒤 피파 회장에도 도전했으나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으면서 무산됐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오랜 기간 맡아 한국 축구가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기업인과 정치인, 축구행정가 등 과거 활동들을 모두 접어두고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만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체제로 개편한 뒤 아들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겨 줄 준비를 하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지주회사 최대주주 올라
    현대중공업그룹은 2018년 10월 현재 지주사체제 전환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2016년 11월 현대중공업의 비조선부문을 인적분할 하겠다고 발표한 지 약 2년 만이다.

    정몽준의 측근으로 꼽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재빠르게 추진하면서 구조조정 등을 우려한 노조의 반발도 있었으나 2017년 2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편 안건을 승인받아 큰 난관 없이 지배구조를 바꿨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행위 제한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옛 현대로보틱스)의 신주와 자회사인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현대중공업의 지분 등을 맞교환했고 순환출자고리도 모두 끊었다.

    정몽준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모든 계열사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2018년 10월5일 기준으로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420만2266주(25.8%)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경영
    2014년 조선업황 악화로 현대중공업이 3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자 경영을 직접 맡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복귀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2015년에 영업손실로 모두 4조8588억 원을 내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2016년에 영업이익 3915억 원을 내 간신히 흑자로 전환했지만 2017년에는 일감 부족 등으로 영업이익 규모가 14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몽준이 현대중공업에서 직접 경영을 맡은 기간은 채 몇 년이 되지 않는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2년 사장, 1987년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1988년 정계에 진출했고 이후 현대중공업은 30년가량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돼왔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정몽준의 경영능력을 놓고 “2차 오일쇼크의 후유증으로 조선산업이 세계적으로 불황에 허덕일 때 정몽준 사장이 시추선에 진출하는 등 조선 선종을 다양화하고 로봇 철탑 건설장비까지 업무영역을 넓혀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전문경영인체제에서 고속성장을 했다. 1990년대 후반 현대중공업의 매출은 6조 원 수준이었으나 2011년 53조 원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정몽준은 2013년에 50년 지기였던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을 회장으로 올려 현대중공업의 경영권을 맡겼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자 이재성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이후 측근인 최길선 전 사장을 회장으로 불러들이고 권오갑 사장을 대표이사에 앉혀 현대중공업의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의 전권을 맡겼다.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2015년부터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이들은 자구계획안을 세운 뒤 비핵심자산 매각과 함께 수천 명의 인력 희망퇴직 등을 진행해 노조와 강하게 대치하기도 했다.

    구조조정을 일단락한 뒤 최 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났고 권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몽준은 대한축구협회에서 함께 일했던 가삼현 사장에게 현대중공업그룹의 선박해양영업담당 임원을 맡겼다.

    ▲ 현대중공업 실적.

    △국제축구 행정가
    정몽준은 대한축구협회 회장뿐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도 오랜 기간 맡으며 국제축구 행정가로서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올랐고 1994년 피파 아시아담당 부회장에 당선돼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치하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정몽준은 현대그룹의 조직력을 이용한 총력전을 펼쳤다. 현대그룹의 재력뿐 아니라 디에고 마라도나 전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등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불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프레젠테이션에서 1991년 19세 이하 세계청소년대회 때 남북 단일팀 선수단의 사인볼을 들고 나가 한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정몽준은 한국전쟁 시기에 찍은 흑백 가족사진과 연평도 피격 현장 사진을 프레젠테이션에서 소개해 한국의 현실을 부각했다. 이는 심사위원들에게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1996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기로 확정되자 “단독 개최 자격이 있지만 피파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아시아 단결과 평화, 한반도 통일의 촉매가 되는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6년 12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한국 측 조직위원회 실무부위원장에 올랐다.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정몽준을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했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4번이나 피파 부회장에 선출됐고 임기를 마친 2011년 세계 축구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부회장에 추대됐다. 1997년 피파 미디어위원장, 2007년 피파 올림픽조직위원장 등도 지냈다.

    정몽준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여러 의미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이루자 축구협회 회장으로서 축구 발전을 위해 오랜 기간 기여한 정몽준의 지지도 함께 높아졌다.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지가 급등한 것을 보고 정몽준은 국민통합21이라는 당을 새로 만들어 출마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한때 정몽준은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대선 후보인 노무현 후보를 앞섰을 뿐만 아니라 야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 후보를 바짝 쫓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대선 출마의 꿈을 접긴 했지만 정몽준의 30년에 가까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라고 정치권은 바라본다.

    △정치인 정몽준
    정몽준은 제13대 국회의원부터 제19대 국회의원까지 7차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을 정도로 무게감을 인정받았던 정치인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계에서 입지를 다진 뒤 축구계 행정가로서 면모를 주목받아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하면서 꿈을 키웠지만 서울시장 낙선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아버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1996년과 2000년, 2004년에는 모두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뽑혔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창당했던 국민통합21을 2004년 해체한 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래 지역구인 울산 동구가 아닌 서울 동작을로 옮겨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를 꺾고 6선에 성공했다.

    2008년 7월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2009년 9월 박희태 대표가 사퇴한 뒤 당 대표 자리를 승계했다. 여당 대표를 지내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합리적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인도적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대북정책에서 당청 간의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자 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당선자와 서울 25개 구청장 당선자 모두 민주당에 밀렸다.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정몽준이 여야관계를 부드럽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기여하기 바란다”고 평가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7선 국회의원에 올랐다.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현역 최다선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내 경선에서 김황식·이혜훈 후보를 꺾고 최종 후보로 선출돼 의원을 내려놓고 선거를 치렀으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큰 표차로 밀려 낙선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고 2016년 말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자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별다른 정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2018년 8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산재단 창립 41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재단 활동
    정몽준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가는 의미에서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

    2011년 8월16일 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10주기를 맞아 범현대가와 함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몽준은 현금 300억 원 등 사재 2천억 원을 출연했고 현대중공업 6개 계열사가 2380억 원을 출연했다. 범현대가인 현대산업개발, KCC, 현대백화점 등을 포함해 모두 5천억 원의 재원이 마련했다.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설립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8천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아산나눔재단은 ‘기업가 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기업가 정신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비 창업가를 발굴하고 창업 인프라를 지원하는 청년 창업 지원사업과 비영리 생태계를 이끌어갈 사회혁신가 육성사업 등도 진행한다.

    정몽준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몽준은 아산나눔재단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며 “창조적이고 역동적 인재가 필요하게 되고 나눔의 미덕이 소중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 이런 시대상에 맞춰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정몽준은 2001년부터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1977년 현대건설 창립 30주년을 맞아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내놓아 설립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는 설립취지에 따라 의료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5월1일 기준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대중공업 지분 2.44%, 현대미포조선 지분 0.43%,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1.87%, 현대건설기계 지분 2.41%,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지분 2.41%를 들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 지분 0.62%, 현대오일뱅크 지분 0.25%,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0.48%, 현대건설기계 지분 0.62%,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정몽준은 축구계에서 쌓은 업적과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바탕으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대선을 완주하지 못했다.

    그는 국민통합21을 만든 뒤 2002년 9월에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두 자릿수 이상 지지율 격차로 크게 따돌리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추격하며 양강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를 꺾기 위해 노무현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여론조사에서 밀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됐다.

    정몽준은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경선 TV토론에서 시종일관 공세적 태도로 질문을 퍼부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중장년층에게 역효과를 불러왔다. TV토론을 누가 더 잘했느냐는 여론조사에서 TV토론 다음날엔 앞섰지만 이틀 후부터 노무현 후보에게 역전을 당했다. 결국 2002년 11월24일 단일화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해찬 당시 민주당 기획본부장은 이를 두고 “반응이 늦게 오는 중장년층을 노린 전략이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정몽준은 대선 투표 전날인 12월 18일 저녁 10시 민주당과 선거 공조를 파기했다. 대북 대미 외교정책에서 의견 차이를 보인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그러나 차기 대선후보로 인정받지 못한 소외감 등이 단일화 파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무현 후보는 한밤중에 정몽준의 자택을 방문해 마음을 돌이키려 했으나 만나주지 않았고 회동은 결렬됐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는 엄청난 오판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몽준의 특별보좌관이었던 김흥국씨는 이후 “‘단 하루를 못 참았느냐’는 비난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 비전과 과제

    ▲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6년 11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손녀 결혼식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그룹을 전문경영인체제에서 오너경영인체제로 바꾸면서 아들인 정기선 부사장에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8년 8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냈고 9월에는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하이투자증권 매각도 모두 마무리하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했다.

    정몽준은 2017년 7월에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 지분 대부분을 현대로보틱스(현 현대중공업지주) 지분과 맞바꿔 지주회사 지분을 25.8%까지 늘리면서 지배력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 등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지분율이 28.15%까지 높아진다.

    2018년 기준 67세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경영에서 손을 뗀 지 오래고 정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뛰면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분 승계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이 지분 25%가량을 정 부사장에게 승계하려면 2018년 10월24일 기준으로 7500억 원 이상 증여세를 내야 한다.

    지분 승계와 더불어 오랜 기간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된 현대중공업을 다시 오너경영인체제로 바꾸는 일도 중장기적 과제로 꼽힌다.

    정몽준이 정계에 입문한 뒤 현대중공업은 25년 넘게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했다. 정몽준이 측근을 통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긴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전문경영인들이 앞장서 회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정기선 부사장이 점차 현대중공업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결국 현대중공업그룹이 오너경영인체제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몽준은 앞으로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안정적 승계 구도를 짜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 평가

    ▲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2018년 6월26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준의 인생은 크게 현대중공업의 오너와 정치인, 축구인으로 평가받는다. 세 영역에서 모두 성공한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실패가 반복되기도 했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후보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져 정치인으로서의 승부수로 여겨졌다.

    하지만 막내아들의 ‘세월호 유가족 비하 사건’ 등이 발생한 탓에 여론이 매우 악화해 선거에서 패배했다. 정몽준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국회의원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계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후 몇 차례 정계 복귀설이 흘러나왔지만 정몽준은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새누리당에서도 탈당했다.

    축구계 행정 수반으로 대한민국 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몽준이 현대가의 네트워크를 동원해 대한축구협회에 많은 지원을 해 한국 축구를 키웠다는 평가가 많다.

    정몽준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임원으로 기용했던 남광우 사무총장과 유영철 홍보국장, 가삼현 국제국장, 김동대 사무총장보는 모두 현대 출신이었다. 정몽준 이후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정몽준의 측근으로 여겨진 조중연 회장을 거쳐 사촌동생인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차지하고 있다. 대한프로축구연맹 회장도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맡고 있다.

    선수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축구계에 몸담으면서 실제 축구 실력도 상당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축구단으로 활동했고 2010년에는 홍명보 자선축구대회에 특별선수로도 뛰었다.

    ‘애처가’로 유명하다. 정몽준은 1978년 미국 MIT대 유학 중 넷째 형수 이행자씨의 소개로 김영명씨를 만나 1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부인 자랑이 유별나서 ‘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스스로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결혼을 꼽았다.

    정몽준의 학생 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182cm의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 이런 별명이 붙었다. 

    과거 언론이 진행한 100문100답에서 자신의 성격을 “결정을 하기까지는 신중하지만 결정하고 나면 뒤돌아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장점으로는 도전정신, 단점으로는 서두르는 성격을 꼽았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부친 정주영 명예회장은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을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 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하면서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 사건사고

    △현대중공업 경영 책임 논란
    현대중공업이 2014년 3조 원, 2015년 1조5천억 원의 적자를 낸 뒤 구조조정과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하자 오너로서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016년 4월 “회사 경영 개선에 정몽준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하는 등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노동자의 희생만 요구하는 구조조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현대중공업에서는 현재 상시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인력 퇴출이 이뤄지고 있으며 기성 삭감으로 폐업하는 회사가 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2016년 11월 정몽준이 서울 명동성당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손녀 결혼식에 참석하자 “지금 현대중공업에 창사 이래 가장 거센 피바람이 불어 닥치는 데도 아는 것인지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는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은둔생활을 해온 것처럼 보인다”며 “이제 현대중공업의 실질 권력 ‘실세’인 그가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값 등록금 반대
    정몽준은 반값 등록금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혀 논란을 낳았다.

    2014년 5월12일 서울시장 선거운동을 하면서 숙명여대 제2창학 캠퍼스에서 대학생 기자들과 만나 “반값등록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고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훼손시킨다”며 “기숙사와 장학금 확대가 대안”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원회·전국대학생위원회는 이 발언을 놓고 “프랑스 혁명 시기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을 연상하게 한다”며 “정몽준 후보는 2015년 초까지 울산대 이사장이었지만 울산대는 대학교육연구소에서 발표한 ‘사립대학 장학금 현황’에서 151개 학교 가운데 72위”라고 비판했다.

    ▲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2014년 6월4일 서울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캠프 관계자들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막내아들 세월호 유가족 폄하 사건
    2014년 4월 18일 막내아들 정예선씨가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발언으로 논란이 빚어졌다.

    정예선씨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틀 후인 4월18일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에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에 물세례.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라는 글을 올렸다. 

    비난여론이 일자 정몽준은 4월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고 말했다. 5월12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막내아들 발언을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몽준이 아들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과한 지 약 한 달여 만인 5월11일 한 인터넷언론에서 정몽준의 부인 김영명씨가 서울의 한 당협 사무실에서 했던 말이 알려져 논란이 재점화됐다.

    김영명씨는 당시 한 인터넷언론의 동영상에서 "막내가 일을 저지른 거 아시죠? 그 아이가 지금 지난번 대학가는 거 실패하고 재수생이다. '바른소리 했다'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긴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 어린아이다 보니까 말 선택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정몽준은 페이스북에 “제 아내가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딴말을 하는 이중 얼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고 글을 남겼다.

    △저서 사재기 의혹
    정몽준은 저서를 사재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1년 10월 2일 한겨레는 정몽준이 2011년 9월 6일 발간한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현대중공업 직원들을 동원해 사재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몽준이 자서전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그룹과 재단 쪽 임직원에게 문화상품권을 대량으로 나눠주고 책을 사오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중공업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사재기 의심을 피하는 요령을 교육받고 책과 영수증을 도로 회사에 반납했으며 정몽준의 저자 사인회에도 동원됐다고 말했다.

    정몽준은 자서전을 사재기했다는 보도는 과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버스 기본요금 70원 논란
    버스 기본요금을 수십년 전 수준으로 알고 있어 논란이 됐다.

    2008년 6월27일 KBS1에 방송된 라디오에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묻자 "요즘은 카드로 타는데 한 번 탈 때 70원 하나요"라고 답했다. 당시 서울 시내 버스요금은 900원이었다.

    논란이 일자 정몽준은 홈페이지를 통해 “마을버스를 이용하며 요금이 7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을 70원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하였다. 그는 “사실 일반버스 요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서민 물가를 알아보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일부러 물건도 사보고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 일주일 후에 열린 7월 3일 제10회 한나라당 전당 대회에서 정몽준은 “한나라당 동지들은 따뜻했고 너그러웠다. 이 작은 선물이 그 증거”라며 당원들에게 선물 받았다는 버스 요금 지불용 전자카드인 노란색 티머니 카드를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정몽준이 보여준 카드는 학생용 티머니 카드여서 비난은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서민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기자 성희롱 논란
    기자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해 성희롱 논란으로 비화한 적이 있다.

    2008년 4월2일 서울 사당에서 거리유세를 마친 정몽준에게 MBC의 김모 기자가 당시 지역구(동작 을)의 논쟁거리였던 사당 뉴타운 사업과 관련하여 질문을 던지자 정몽준은 "다음에 하자"며 왼손으로 김 기자의 오른쪽 뺨을 두 번 건드렸다.

    김 기자는 성희롱이라며 항의했고 정몽준은 본인 명의로 사과문을 내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며 해명을 했다. 피해자 김 기자가 소속한 MBC 보도국은 해명에 반발하며 "손이 실수로 닿은 것인지 고의로 얼굴을 만졌는지는 당시 촬영된 비디오를 보면 누구든 알 수 있다"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논란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정몽준은 서울 여의도 MBC 본사를 방문해 김 기자를 만나 뺨을 건드린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 정몽준이 2015년 8월17일 파리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 영향력 약화
    정몽준은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오래 활동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전은 정몽준을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부각한 계기가 됐지만 축구 행정가로서 내리막을 걷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정몽준은 월드컵 유치전을 치르면서 주앙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1974~1998년)과 사이가 멀어졌다. 아벨란제 회장은 일본 단독 월드컵 개최를 지지했는데 정몽준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벨란제 회장은 국제축구연맹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주자로 조제프 블래터를 내세웠다. 정몽준은 블래터의 대항마였던 요한슨 유럽축구연맹 회장과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을 지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블래터 회장이 1998년부터 2016년까지 국제축구연맹 회장으로 장기집권하면서 정몽준의 국제 축구계 영향력은 크게 제한을 받았다.

    정몽준은 2015년에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대회 유치를 위해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 6년을 당하면서 무산됐다.

    정몽준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자격정지 처분이 부당하다며 제소했다. 국제축구연맹은 2018년 2월 징계 조치가 2017년 1월부로 종료됐다고 판결했다.

    정몽준은 2018년 6월21일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나의 국제축구연맹 투쟁 기록’을 발표하며 “나에게 가해졌던 제재들은 명백하게 그리고 극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라며 “국제축구연맹이 조제프 블래터의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몽준은 “피파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변함없다”며 “이제 고통의 기억들을 뒤로 접어두려 한다”고 덧붙였다.

    △초원복집 사건 연루
    제14대 대통령선거 직전 발생한 ‘초원복집 사건’으로 불구속기소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12월11일 부산의 음식점인 초원복국에서 현지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역감정을 대놓고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정몽준은 통일국민당 측 도청실무자 3명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범인은닉죄를 적용받았다. 1995년 3월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정몽준은 항소를 포기했다.

    △학창 시절 부정행위
    1970년 대학교 학부시험 부정행위(커닝)가 적발되어 해당 학기 과목 수강 취소 및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몽준은 1970년 서울대학교 1학년 2학기 ‘문화사’ 교양과목 기말고사에서 다른 학생의 답안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다 전임강사 심재기(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에게 적발돼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이 사건으로 대학을 1년 더 다녀야 했다.

    정몽준은 과거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시험을 빨리 끝내고 놀러가겠다는 들뜬 기분에서 저지른 충동적인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경력

    ▲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2009년 9월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별정직 보건진료원 일반직화 여야 합동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1980년 현대중공업 상무이사로 승진했다.

    1981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상무이사를 겸임했다.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승진했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장, 1984년 실업테니스연맹 회장을 지냈다.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에 올랐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울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2년 통일국민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 해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4년 제16회 아시아축구연맹 연차총회에서 아시아 지역 FIFA 부회장에 당선됐다.

    1996년 2002년 월드컵 한국 측 조직위원회 실무부위원장에 선출됐다. 무소속으로 제15대 국회의원에 뽑혔다.

    2000년 무소속으로 울산 동구 제16대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2001년 제7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02년 9월 제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통합21을 창당했다.

    2004년 국민통합21 소속으로 울산 동구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8년 지역구를 서울 동작구로 옮겨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9년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2009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을 맡았다.

    2011년 1월 아시아지역 FIFA부회장 선거에서 5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2011년 FIFA 명예부회장에 추대됐다.

    2012년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새누리당 북핵안보전략특별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2014년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울산대, 울산과학대) 명예이사장에 올랐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뒤 낙선했다.

    ◆ 학력

    1964년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장충초등학교 동창이다.

    1967년 중앙중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콜롬비아 경영대학원을 다니다가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경영대학원으로 옮겨 1980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 강성욱 GE코리아 총괄사장,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사장,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 이상훈 모건스탠리PE 한국 대표 등이 MIT 동문이다.

    1993년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문제연구원(SAI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체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전주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2018년 8월16일 오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 11주기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부 정봉식씨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 농민 출신이다. 부친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정봉식씨의 장남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둘째 형이며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셋째 형,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다섯째 형이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이 동생이다.

    사촌으로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선 전 현대시멘트 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몽훈 성우전자 회장, 정몽용 현대성우홀딩스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정몽진 KCC그룹 회장, 정몽익 KCC 사장 등이 있다.

    외무부 장관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인 김동조씨의 넷째 딸 김영명씨와 결혼했다. 김영명씨의 언니인인 김영숙씨의 사위는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회장이다.

    김영명씨의 또 다른 언니인 김영자씨의 남편은 GS그룹 가문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다. 허광수 회장의 둘째 딸인 허유정씨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장남인 방준오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정기선 정예선 등 두 아들과 정남이, 정선이 등 두 딸을 두었다.

    정기선씨는 동아일보와 보스턴컨설팅그룹, 크레디트스위스그룹을 거쳐 현재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남이씨는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가 2013년부터 아산나눔재단으로 옮겨 기획팀장, 사무국장을 거쳐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2017년 6월16일 서승범 유봉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서 대표는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의 처남이다.

    정선이씨는 2014년 8월15일 미국 벤처기업인 백종현씨와 결혼했다. 백종현씨는 하버드대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유학 중 정선이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1997년 월드컵 유치 공로로 체육훈장 청룡상을 받았다.

    200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일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월드컵의 성공 개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9년 세계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말레이시아 다투 작위를 받았다. ‘다투’는 말레이시아 국가 발전에 공헌한 이에게 주어지는 작위다. 정몽준은 외국인으로서 주앙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및 조셉 블래터 현 FIFA 회장에 이어 세 번째로 작위를 받았다.

    2010년 남미축구연맹(CONMEBOL)에서 최고 훈장을 받았다.

    2013년 독일 대십자 공로훈장을 받았다. 양국간 경제협력 및 독일 축구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3년 아시아축구연맹 다이아몬드상을 받았다.

    ◆ 기타

    1975년 학군(ROTC) 13기 소위로 임관해 1977년 중위 만기 전역했다.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도 학군 43기로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2014년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2조396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18년 10월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25.8%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가치는 1조5천억 원 수준이다. 다른 계열사 지분은 들고 있지 않다.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와의 소통'(2011), '나의도전 나의열정'(2011), '자유민주주의의 약속'(2012), '시장경제의 약속'(2012), '키다리아저씨의 약속'(2012) 등의 저서를 펴냈다.

    ◆ 어록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AI), 나노, 바이오, 그리고 3D프린팅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큰 도전이다. 로봇과 AI는 지금까지 사람이 해 오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있다. 물론 몇몇 직업들은 사라질 것이지만 그 대신 더 좋고 더 많은 직종이 새로 생겨날 것이다.” (2018/08/16,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일자리’ 심포지엄)

    “이 모든 절차가 저의 FIFA 내 활동을 저지하려는 특정세력의 비윤리적 공작에 불과하다고 지적해왔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것은 FIFA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에 대한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것은 제 명예회복뿐 아니라 FIFA의 변화와 개혁에 일조하는 과정이다. CAS 항소를 포함한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 (2016/07/06, 국제축구연맹 항소결과에)

    “신임 회장의 당선을 축하한다. 신임 회장이 아벨란제-블래터의 체제를 청산하고 FIFA의 근본적 개혁을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신임 회장의 당선을 계기로 FIFA가 명예를 회복하고 많은 축구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게되기를 바란다.” (2016/02/26, 지아니 인판티노가 국제축구연명 회장에 당선되자)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 인접 적대국이 핵무기 실험을 할 때 대충 말 폭탄이나 쏘고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핵무기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역설이야말로 냉전의 교훈이다. 핵에 상응하는 강력한 수단이 있을 때만 핵을 없애는 협상도 가능하다.” (2016/01/31, 자신의 블로그에서)

    “젊은 시절 아버님은 거친 막노동으로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했다. 평생을 부유한 노동자로 여기며 소탈했다.”(2015/11/23,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10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저희 아버님하고 김 전 대통령하고 개인적으로 친하셨다. 좋은 관계를 끝까지 계속 유지하도록 제가 잘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해)

    “지하철 사고 원인은 서울대공원 사육사 사건과 같은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대공원 원장을 잘못 임명하니까 곤충 사육사가 호랑이 우리에 가서 사고를 당했다”(2014/05/04, 지하철 2호선에서 추돌사고가 나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내가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지역구(서울 동작구)를 부인에게 공천하도록 하겠다.” (2014/05/11,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측근 및 캠프 인사 10여 명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제 아내를 만나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딴말하는 이중얼굴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2014/05/11, 아들 정예선의 발언에 대한 부인 김영명의 발언이 다시 파문을 낳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에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 제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없다. 저희 아이도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이다.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2014/04/21, 아들 정예선의 세월호 관련 발언 논란이 격해지자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한 사과문)

    “핵주먹 타이슨이 권투경기 중 상대편 귀를 물어뜯어 쫓겨났다.” (2014/04/01,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김황식 전 총리 캠프의 네거티브 공세를 비판하며)

    “탈모되는 분들에게 필요한 건 발모제다. 그런데 발모제는 꼭 머리가 없는 사람들만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건 옳은 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4/03/05, MBN '뉴스공감'에 출연해 "재벌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서민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김성환) 장관 같은 사람이 장관을 하니까 외교부가 문제없이 잘되는지…. 거친 표현으로 결례를 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2011/09/19,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당(한나라당) 소속이었음에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반말조로 언쟁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북한의 핵무장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과 평화 공존할 수 없으며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해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1991년 철수한 미국 전술핵무기를 다시 반입할 필요가 있다. 전술핵 재반입은 북핵 폐기를 위한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 재반입은 NPT 체제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2013/03/18, 북핵 문제 취재를 위해 방한한 안나 코렌 홍콩 주재 CNN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카드로 타는데 한 번 탈 때 70원 하나요?” (2008/06/27, KBS1 라디오 한나라당 당권주자 생방송 토론에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라고 묻자)

    “관중들은 축구협회 직원이 아니고, 자기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한테 태극기를 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2002/09, 남북축구경기에서 박근혜가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 또 경기 전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치자 “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항의하자 - 자신의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나도 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 뭐 딴 데서 나나. 어느 시점에서 생모가 누구인지 밝히겠다” (2002/08/16, 기자들과 산행을 하며 출생의 비밀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씨가 친모가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며)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모두 집에 가.” (1984년 울산 현대중공업 작업장에서 근무시간에 낮잠을 즐기는 직원을 훈계하는 가운데 일렬로 세워놓고 ‘군기가 빠졌다’고 호통을 치며)
  • ◆ 경영활동의 공과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지주회사 최대주주 올라
    현대중공업그룹은 2018년 10월 현재 지주사체제 전환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2016년 11월 현대중공업의 비조선부문을 인적분할 하겠다고 발표한 지 약 2년 만이다.

    정몽준의 측근으로 꼽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재빠르게 추진하면서 구조조정 등을 우려한 노조의 반발도 있었으나 2017년 2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편 안건을 승인받아 큰 난관 없이 지배구조를 바꿨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행위 제한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옛 현대로보틱스)의 신주와 자회사인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현대중공업의 지분 등을 맞교환했고 순환출자고리도 모두 끊었다.

    정몽준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모든 계열사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2018년 10월5일 기준으로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420만2266주(25.8%)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경영
    2014년 조선업황 악화로 현대중공업이 3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자 경영을 직접 맡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복귀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2015년에 영업손실로 모두 4조8588억 원을 내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2016년에 영업이익 3915억 원을 내 간신히 흑자로 전환했지만 2017년에는 일감 부족 등으로 영업이익 규모가 14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몽준이 현대중공업에서 직접 경영을 맡은 기간은 채 몇 년이 되지 않는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2년 사장, 1987년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1988년 정계에 진출했고 이후 현대중공업은 30년가량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돼왔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정몽준의 경영능력을 놓고 “2차 오일쇼크의 후유증으로 조선산업이 세계적으로 불황에 허덕일 때 정몽준 사장이 시추선에 진출하는 등 조선 선종을 다양화하고 로봇 철탑 건설장비까지 업무영역을 넓혀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전문경영인체제에서 고속성장을 했다. 1990년대 후반 현대중공업의 매출은 6조 원 수준이었으나 2011년 53조 원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정몽준은 2013년에 50년 지기였던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을 회장으로 올려 현대중공업의 경영권을 맡겼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자 이재성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이후 측근인 최길선 전 사장을 회장으로 불러들이고 권오갑 사장을 대표이사에 앉혀 현대중공업의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의 전권을 맡겼다.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2015년부터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이들은 자구계획안을 세운 뒤 비핵심자산 매각과 함께 수천 명의 인력 희망퇴직 등을 진행해 노조와 강하게 대치하기도 했다.

    구조조정을 일단락한 뒤 최 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났고 권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몽준은 대한축구협회에서 함께 일했던 가삼현 사장에게 현대중공업그룹의 선박해양영업담당 임원을 맡겼다.

    ▲ 현대중공업 실적.

    △국제축구 행정가
    정몽준은 대한축구협회 회장뿐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도 오랜 기간 맡으며 국제축구 행정가로서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올랐고 1994년 피파 아시아담당 부회장에 당선돼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치하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정몽준은 현대그룹의 조직력을 이용한 총력전을 펼쳤다. 현대그룹의 재력뿐 아니라 디에고 마라도나 전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등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불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프레젠테이션에서 1991년 19세 이하 세계청소년대회 때 남북 단일팀 선수단의 사인볼을 들고 나가 한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정몽준은 한국전쟁 시기에 찍은 흑백 가족사진과 연평도 피격 현장 사진을 프레젠테이션에서 소개해 한국의 현실을 부각했다. 이는 심사위원들에게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1996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기로 확정되자 “단독 개최 자격이 있지만 피파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아시아 단결과 평화, 한반도 통일의 촉매가 되는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6년 12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한국 측 조직위원회 실무부위원장에 올랐다.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정몽준을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했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4번이나 피파 부회장에 선출됐고 임기를 마친 2011년 세계 축구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부회장에 추대됐다. 1997년 피파 미디어위원장, 2007년 피파 올림픽조직위원장 등도 지냈다.

    정몽준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여러 의미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이루자 축구협회 회장으로서 축구 발전을 위해 오랜 기간 기여한 정몽준의 지지도 함께 높아졌다.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지가 급등한 것을 보고 정몽준은 국민통합21이라는 당을 새로 만들어 출마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한때 정몽준은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대선 후보인 노무현 후보를 앞섰을 뿐만 아니라 야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 후보를 바짝 쫓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대선 출마의 꿈을 접긴 했지만 정몽준의 30년에 가까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라고 정치권은 바라본다.

    △정치인 정몽준
    정몽준은 제13대 국회의원부터 제19대 국회의원까지 7차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을 정도로 무게감을 인정받았던 정치인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계에서 입지를 다진 뒤 축구계 행정가로서 면모를 주목받아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하면서 꿈을 키웠지만 서울시장 낙선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아버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1996년과 2000년, 2004년에는 모두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뽑혔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창당했던 국민통합21을 2004년 해체한 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래 지역구인 울산 동구가 아닌 서울 동작을로 옮겨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를 꺾고 6선에 성공했다.

    2008년 7월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2009년 9월 박희태 대표가 사퇴한 뒤 당 대표 자리를 승계했다. 여당 대표를 지내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합리적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인도적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대북정책에서 당청 간의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자 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당선자와 서울 25개 구청장 당선자 모두 민주당에 밀렸다.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정몽준이 여야관계를 부드럽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기여하기 바란다”고 평가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7선 국회의원에 올랐다.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현역 최다선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내 경선에서 김황식·이혜훈 후보를 꺾고 최종 후보로 선출돼 의원을 내려놓고 선거를 치렀으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큰 표차로 밀려 낙선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고 2016년 말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자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별다른 정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2018년 8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산재단 창립 41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재단 활동
    정몽준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가는 의미에서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

    2011년 8월16일 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10주기를 맞아 범현대가와 함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몽준은 현금 300억 원 등 사재 2천억 원을 출연했고 현대중공업 6개 계열사가 2380억 원을 출연했다. 범현대가인 현대산업개발, KCC, 현대백화점 등을 포함해 모두 5천억 원의 재원이 마련했다.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설립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8천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아산나눔재단은 ‘기업가 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기업가 정신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비 창업가를 발굴하고 창업 인프라를 지원하는 청년 창업 지원사업과 비영리 생태계를 이끌어갈 사회혁신가 육성사업 등도 진행한다.

    정몽준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몽준은 아산나눔재단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며 “창조적이고 역동적 인재가 필요하게 되고 나눔의 미덕이 소중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 이런 시대상에 맞춰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정몽준은 2001년부터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1977년 현대건설 창립 30주년을 맞아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내놓아 설립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는 설립취지에 따라 의료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5월1일 기준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대중공업 지분 2.44%, 현대미포조선 지분 0.43%,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1.87%, 현대건설기계 지분 2.41%,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지분 2.41%를 들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 지분 0.62%, 현대오일뱅크 지분 0.25%,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0.48%, 현대건설기계 지분 0.62%,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정몽준은 축구계에서 쌓은 업적과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바탕으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대선을 완주하지 못했다.

    그는 국민통합21을 만든 뒤 2002년 9월에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두 자릿수 이상 지지율 격차로 크게 따돌리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추격하며 양강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를 꺾기 위해 노무현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여론조사에서 밀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됐다.

    정몽준은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경선 TV토론에서 시종일관 공세적 태도로 질문을 퍼부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중장년층에게 역효과를 불러왔다. TV토론을 누가 더 잘했느냐는 여론조사에서 TV토론 다음날엔 앞섰지만 이틀 후부터 노무현 후보에게 역전을 당했다. 결국 2002년 11월24일 단일화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해찬 당시 민주당 기획본부장은 이를 두고 “반응이 늦게 오는 중장년층을 노린 전략이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정몽준은 대선 투표 전날인 12월 18일 저녁 10시 민주당과 선거 공조를 파기했다. 대북 대미 외교정책에서 의견 차이를 보인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그러나 차기 대선후보로 인정받지 못한 소외감 등이 단일화 파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무현 후보는 한밤중에 정몽준의 자택을 방문해 마음을 돌이키려 했으나 만나주지 않았고 회동은 결렬됐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는 엄청난 오판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몽준의 특별보좌관이었던 김흥국씨는 이후 “‘단 하루를 못 참았느냐’는 비난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 ◆ 비전과 과제

    ▲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6년 11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손녀 결혼식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그룹을 전문경영인체제에서 오너경영인체제로 바꾸면서 아들인 정기선 부사장에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8년 8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냈고 9월에는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하이투자증권 매각도 모두 마무리하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했다.

    정몽준은 2017년 7월에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 지분 대부분을 현대로보틱스(현 현대중공업지주) 지분과 맞바꿔 지주회사 지분을 25.8%까지 늘리면서 지배력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 등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지분율이 28.15%까지 높아진다.

    2018년 기준 67세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경영에서 손을 뗀 지 오래고 정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뛰면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분 승계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이 지분 25%가량을 정 부사장에게 승계하려면 2018년 10월24일 기준으로 7500억 원 이상 증여세를 내야 한다.

    지분 승계와 더불어 오랜 기간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된 현대중공업을 다시 오너경영인체제로 바꾸는 일도 중장기적 과제로 꼽힌다.

    정몽준이 정계에 입문한 뒤 현대중공업은 25년 넘게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했다. 정몽준이 측근을 통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긴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전문경영인들이 앞장서 회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정기선 부사장이 점차 현대중공업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결국 현대중공업그룹이 오너경영인체제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몽준은 앞으로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안정적 승계 구도를 짜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 ◆ 평가

    ▲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2018년 6월26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준의 인생은 크게 현대중공업의 오너와 정치인, 축구인으로 평가받는다. 세 영역에서 모두 성공한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실패가 반복되기도 했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후보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져 정치인으로서의 승부수로 여겨졌다.

    하지만 막내아들의 ‘세월호 유가족 비하 사건’ 등이 발생한 탓에 여론이 매우 악화해 선거에서 패배했다. 정몽준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국회의원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계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후 몇 차례 정계 복귀설이 흘러나왔지만 정몽준은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새누리당에서도 탈당했다.

    축구계 행정 수반으로 대한민국 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몽준이 현대가의 네트워크를 동원해 대한축구협회에 많은 지원을 해 한국 축구를 키웠다는 평가가 많다.

    정몽준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임원으로 기용했던 남광우 사무총장과 유영철 홍보국장, 가삼현 국제국장, 김동대 사무총장보는 모두 현대 출신이었다. 정몽준 이후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정몽준의 측근으로 여겨진 조중연 회장을 거쳐 사촌동생인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차지하고 있다. 대한프로축구연맹 회장도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맡고 있다.

    선수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축구계에 몸담으면서 실제 축구 실력도 상당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축구단으로 활동했고 2010년에는 홍명보 자선축구대회에 특별선수로도 뛰었다.

    ‘애처가’로 유명하다. 정몽준은 1978년 미국 MIT대 유학 중 넷째 형수 이행자씨의 소개로 김영명씨를 만나 1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부인 자랑이 유별나서 ‘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스스로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결혼을 꼽았다.

    정몽준의 학생 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182cm의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 이런 별명이 붙었다. 

    과거 언론이 진행한 100문100답에서 자신의 성격을 “결정을 하기까지는 신중하지만 결정하고 나면 뒤돌아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장점으로는 도전정신, 단점으로는 서두르는 성격을 꼽았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부친 정주영 명예회장은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을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 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하면서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 사건사고

    △현대중공업 경영 책임 논란
    현대중공업이 2014년 3조 원, 2015년 1조5천억 원의 적자를 낸 뒤 구조조정과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하자 오너로서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016년 4월 “회사 경영 개선에 정몽준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하는 등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노동자의 희생만 요구하는 구조조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현대중공업에서는 현재 상시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인력 퇴출이 이뤄지고 있으며 기성 삭감으로 폐업하는 회사가 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2016년 11월 정몽준이 서울 명동성당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손녀 결혼식에 참석하자 “지금 현대중공업에 창사 이래 가장 거센 피바람이 불어 닥치는 데도 아는 것인지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는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은둔생활을 해온 것처럼 보인다”며 “이제 현대중공업의 실질 권력 ‘실세’인 그가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값 등록금 반대
    정몽준은 반값 등록금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혀 논란을 낳았다.

    2014년 5월12일 서울시장 선거운동을 하면서 숙명여대 제2창학 캠퍼스에서 대학생 기자들과 만나 “반값등록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고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훼손시킨다”며 “기숙사와 장학금 확대가 대안”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원회·전국대학생위원회는 이 발언을 놓고 “프랑스 혁명 시기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을 연상하게 한다”며 “정몽준 후보는 2015년 초까지 울산대 이사장이었지만 울산대는 대학교육연구소에서 발표한 ‘사립대학 장학금 현황’에서 151개 학교 가운데 72위”라고 비판했다.

    ▲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2014년 6월4일 서울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캠프 관계자들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막내아들 세월호 유가족 폄하 사건
    2014년 4월 18일 막내아들 정예선씨가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발언으로 논란이 빚어졌다.

    정예선씨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틀 후인 4월18일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에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에 물세례.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라는 글을 올렸다. 

    비난여론이 일자 정몽준은 4월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고 말했다. 5월12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막내아들 발언을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몽준이 아들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과한 지 약 한 달여 만인 5월11일 한 인터넷언론에서 정몽준의 부인 김영명씨가 서울의 한 당협 사무실에서 했던 말이 알려져 논란이 재점화됐다.

    김영명씨는 당시 한 인터넷언론의 동영상에서 "막내가 일을 저지른 거 아시죠? 그 아이가 지금 지난번 대학가는 거 실패하고 재수생이다. '바른소리 했다'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긴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 어린아이다 보니까 말 선택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정몽준은 페이스북에 “제 아내가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딴말을 하는 이중 얼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고 글을 남겼다.

    △저서 사재기 의혹
    정몽준은 저서를 사재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1년 10월 2일 한겨레는 정몽준이 2011년 9월 6일 발간한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현대중공업 직원들을 동원해 사재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몽준이 자서전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그룹과 재단 쪽 임직원에게 문화상품권을 대량으로 나눠주고 책을 사오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중공업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사재기 의심을 피하는 요령을 교육받고 책과 영수증을 도로 회사에 반납했으며 정몽준의 저자 사인회에도 동원됐다고 말했다.

    정몽준은 자서전을 사재기했다는 보도는 과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버스 기본요금 70원 논란
    버스 기본요금을 수십년 전 수준으로 알고 있어 논란이 됐다.

    2008년 6월27일 KBS1에 방송된 라디오에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묻자 "요즘은 카드로 타는데 한 번 탈 때 70원 하나요"라고 답했다. 당시 서울 시내 버스요금은 900원이었다.

    논란이 일자 정몽준은 홈페이지를 통해 “마을버스를 이용하며 요금이 7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을 70원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하였다. 그는 “사실 일반버스 요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서민 물가를 알아보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일부러 물건도 사보고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 일주일 후에 열린 7월 3일 제10회 한나라당 전당 대회에서 정몽준은 “한나라당 동지들은 따뜻했고 너그러웠다. 이 작은 선물이 그 증거”라며 당원들에게 선물 받았다는 버스 요금 지불용 전자카드인 노란색 티머니 카드를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정몽준이 보여준 카드는 학생용 티머니 카드여서 비난은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서민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기자 성희롱 논란
    기자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해 성희롱 논란으로 비화한 적이 있다.

    2008년 4월2일 서울 사당에서 거리유세를 마친 정몽준에게 MBC의 김모 기자가 당시 지역구(동작 을)의 논쟁거리였던 사당 뉴타운 사업과 관련하여 질문을 던지자 정몽준은 "다음에 하자"며 왼손으로 김 기자의 오른쪽 뺨을 두 번 건드렸다.

    김 기자는 성희롱이라며 항의했고 정몽준은 본인 명의로 사과문을 내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며 해명을 했다. 피해자 김 기자가 소속한 MBC 보도국은 해명에 반발하며 "손이 실수로 닿은 것인지 고의로 얼굴을 만졌는지는 당시 촬영된 비디오를 보면 누구든 알 수 있다"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논란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정몽준은 서울 여의도 MBC 본사를 방문해 김 기자를 만나 뺨을 건드린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 정몽준이 2015년 8월17일 파리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 영향력 약화
    정몽준은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오래 활동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전은 정몽준을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부각한 계기가 됐지만 축구 행정가로서 내리막을 걷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정몽준은 월드컵 유치전을 치르면서 주앙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1974~1998년)과 사이가 멀어졌다. 아벨란제 회장은 일본 단독 월드컵 개최를 지지했는데 정몽준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벨란제 회장은 국제축구연맹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주자로 조제프 블래터를 내세웠다. 정몽준은 블래터의 대항마였던 요한슨 유럽축구연맹 회장과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을 지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블래터 회장이 1998년부터 2016년까지 국제축구연맹 회장으로 장기집권하면서 정몽준의 국제 축구계 영향력은 크게 제한을 받았다.

    정몽준은 2015년에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대회 유치를 위해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 6년을 당하면서 무산됐다.

    정몽준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자격정지 처분이 부당하다며 제소했다. 국제축구연맹은 2018년 2월 징계 조치가 2017년 1월부로 종료됐다고 판결했다.

    정몽준은 2018년 6월21일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나의 국제축구연맹 투쟁 기록’을 발표하며 “나에게 가해졌던 제재들은 명백하게 그리고 극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라며 “국제축구연맹이 조제프 블래터의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몽준은 “피파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변함없다”며 “이제 고통의 기억들을 뒤로 접어두려 한다”고 덧붙였다.

    △초원복집 사건 연루
    제14대 대통령선거 직전 발생한 ‘초원복집 사건’으로 불구속기소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12월11일 부산의 음식점인 초원복국에서 현지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역감정을 대놓고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정몽준은 통일국민당 측 도청실무자 3명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범인은닉죄를 적용받았다. 1995년 3월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정몽준은 항소를 포기했다.

    △학창 시절 부정행위
    1970년 대학교 학부시험 부정행위(커닝)가 적발되어 해당 학기 과목 수강 취소 및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몽준은 1970년 서울대학교 1학년 2학기 ‘문화사’ 교양과목 기말고사에서 다른 학생의 답안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다 전임강사 심재기(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에게 적발돼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이 사건으로 대학을 1년 더 다녀야 했다.

    정몽준은 과거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시험을 빨리 끝내고 놀러가겠다는 들뜬 기분에서 저지른 충동적인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 경력

    ▲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2009년 9월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별정직 보건진료원 일반직화 여야 합동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1980년 현대중공업 상무이사로 승진했다.

    1981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상무이사를 겸임했다.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승진했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장, 1984년 실업테니스연맹 회장을 지냈다.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에 올랐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울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2년 통일국민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 해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4년 제16회 아시아축구연맹 연차총회에서 아시아 지역 FIFA 부회장에 당선됐다.

    1996년 2002년 월드컵 한국 측 조직위원회 실무부위원장에 선출됐다. 무소속으로 제15대 국회의원에 뽑혔다.

    2000년 무소속으로 울산 동구 제16대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2001년 제7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02년 9월 제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통합21을 창당했다.

    2004년 국민통합21 소속으로 울산 동구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8년 지역구를 서울 동작구로 옮겨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9년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2009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을 맡았다.

    2011년 1월 아시아지역 FIFA부회장 선거에서 5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2011년 FIFA 명예부회장에 추대됐다.

    2012년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새누리당 북핵안보전략특별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2014년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울산대, 울산과학대) 명예이사장에 올랐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뒤 낙선했다.

    ◆ 학력

    1964년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장충초등학교 동창이다.

    1967년 중앙중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콜롬비아 경영대학원을 다니다가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경영대학원으로 옮겨 1980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 강성욱 GE코리아 총괄사장,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사장,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 이상훈 모건스탠리PE 한국 대표 등이 MIT 동문이다.

    1993년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문제연구원(SAI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체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전주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2018년 8월16일 오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 11주기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부 정봉식씨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 농민 출신이다. 부친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정봉식씨의 장남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둘째 형이며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셋째 형,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다섯째 형이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이 동생이다.

    사촌으로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선 전 현대시멘트 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몽훈 성우전자 회장, 정몽용 현대성우홀딩스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정몽진 KCC그룹 회장, 정몽익 KCC 사장 등이 있다.

    외무부 장관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인 김동조씨의 넷째 딸 김영명씨와 결혼했다. 김영명씨의 언니인인 김영숙씨의 사위는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회장이다.

    김영명씨의 또 다른 언니인 김영자씨의 남편은 GS그룹 가문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다. 허광수 회장의 둘째 딸인 허유정씨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장남인 방준오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정기선 정예선 등 두 아들과 정남이, 정선이 등 두 딸을 두었다.

    정기선씨는 동아일보와 보스턴컨설팅그룹, 크레디트스위스그룹을 거쳐 현재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남이씨는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가 2013년부터 아산나눔재단으로 옮겨 기획팀장, 사무국장을 거쳐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2017년 6월16일 서승범 유봉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서 대표는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의 처남이다.

    정선이씨는 2014년 8월15일 미국 벤처기업인 백종현씨와 결혼했다. 백종현씨는 하버드대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유학 중 정선이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1997년 월드컵 유치 공로로 체육훈장 청룡상을 받았다.

    200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일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월드컵의 성공 개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9년 세계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말레이시아 다투 작위를 받았다. ‘다투’는 말레이시아 국가 발전에 공헌한 이에게 주어지는 작위다. 정몽준은 외국인으로서 주앙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및 조셉 블래터 현 FIFA 회장에 이어 세 번째로 작위를 받았다.

    2010년 남미축구연맹(CONMEBOL)에서 최고 훈장을 받았다.

    2013년 독일 대십자 공로훈장을 받았다. 양국간 경제협력 및 독일 축구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3년 아시아축구연맹 다이아몬드상을 받았다.

    ◆ 기타

    1975년 학군(ROTC) 13기 소위로 임관해 1977년 중위 만기 전역했다.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도 학군 43기로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2014년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2조396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18년 10월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25.8%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가치는 1조5천억 원 수준이다. 다른 계열사 지분은 들고 있지 않다.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와의 소통'(2011), '나의도전 나의열정'(2011), '자유민주주의의 약속'(2012), '시장경제의 약속'(2012), '키다리아저씨의 약속'(2012) 등의 저서를 펴냈다.

  • ◆ 어록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AI), 나노, 바이오, 그리고 3D프린팅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큰 도전이다. 로봇과 AI는 지금까지 사람이 해 오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있다. 물론 몇몇 직업들은 사라질 것이지만 그 대신 더 좋고 더 많은 직종이 새로 생겨날 것이다.” (2018/08/16,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일자리’ 심포지엄)

    “이 모든 절차가 저의 FIFA 내 활동을 저지하려는 특정세력의 비윤리적 공작에 불과하다고 지적해왔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것은 FIFA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에 대한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것은 제 명예회복뿐 아니라 FIFA의 변화와 개혁에 일조하는 과정이다. CAS 항소를 포함한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 (2016/07/06, 국제축구연맹 항소결과에)

    “신임 회장의 당선을 축하한다. 신임 회장이 아벨란제-블래터의 체제를 청산하고 FIFA의 근본적 개혁을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신임 회장의 당선을 계기로 FIFA가 명예를 회복하고 많은 축구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게되기를 바란다.” (2016/02/26, 지아니 인판티노가 국제축구연명 회장에 당선되자)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 인접 적대국이 핵무기 실험을 할 때 대충 말 폭탄이나 쏘고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핵무기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역설이야말로 냉전의 교훈이다. 핵에 상응하는 강력한 수단이 있을 때만 핵을 없애는 협상도 가능하다.” (2016/01/31, 자신의 블로그에서)

    “젊은 시절 아버님은 거친 막노동으로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했다. 평생을 부유한 노동자로 여기며 소탈했다.”(2015/11/23,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10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저희 아버님하고 김 전 대통령하고 개인적으로 친하셨다. 좋은 관계를 끝까지 계속 유지하도록 제가 잘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해)

    “지하철 사고 원인은 서울대공원 사육사 사건과 같은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대공원 원장을 잘못 임명하니까 곤충 사육사가 호랑이 우리에 가서 사고를 당했다”(2014/05/04, 지하철 2호선에서 추돌사고가 나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내가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지역구(서울 동작구)를 부인에게 공천하도록 하겠다.” (2014/05/11,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측근 및 캠프 인사 10여 명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제 아내를 만나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딴말하는 이중얼굴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2014/05/11, 아들 정예선의 발언에 대한 부인 김영명의 발언이 다시 파문을 낳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에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 제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없다. 저희 아이도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이다.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2014/04/21, 아들 정예선의 세월호 관련 발언 논란이 격해지자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한 사과문)

    “핵주먹 타이슨이 권투경기 중 상대편 귀를 물어뜯어 쫓겨났다.” (2014/04/01,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김황식 전 총리 캠프의 네거티브 공세를 비판하며)

    “탈모되는 분들에게 필요한 건 발모제다. 그런데 발모제는 꼭 머리가 없는 사람들만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건 옳은 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4/03/05, MBN '뉴스공감'에 출연해 "재벌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서민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김성환) 장관 같은 사람이 장관을 하니까 외교부가 문제없이 잘되는지…. 거친 표현으로 결례를 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2011/09/19,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당(한나라당) 소속이었음에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반말조로 언쟁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북한의 핵무장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과 평화 공존할 수 없으며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해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1991년 철수한 미국 전술핵무기를 다시 반입할 필요가 있다. 전술핵 재반입은 북핵 폐기를 위한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 재반입은 NPT 체제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2013/03/18, 북핵 문제 취재를 위해 방한한 안나 코렌 홍콩 주재 CNN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카드로 타는데 한 번 탈 때 70원 하나요?” (2008/06/27, KBS1 라디오 한나라당 당권주자 생방송 토론에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라고 묻자)

    “관중들은 축구협회 직원이 아니고, 자기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한테 태극기를 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2002/09, 남북축구경기에서 박근혜가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 또 경기 전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치자 “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항의하자 - 자신의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나도 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 뭐 딴 데서 나나. 어느 시점에서 생모가 누구인지 밝히겠다” (2002/08/16, 기자들과 산행을 하며 출생의 비밀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씨가 친모가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며)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모두 집에 가.” (1984년 울산 현대중공업 작업장에서 근무시간에 낮잠을 즐기는 직원을 훈계하는 가운데 일렬로 세워놓고 ‘군기가 빠졌다’고 호통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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