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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김디모데 기자
2016-08-05   /  0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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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 생애

    구자홍은 1946년 12월11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LS그룹 오너 일가로 LG상사를 거쳐 LG전자 대표이사를 맡았다. LS그룹이 분리된 뒤 LS전선과 LS산전 회장을 역임하고 LS그룹 회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그룹경영은 사촌동생 구자열 회장에게 맡기고 LS니꼬동제련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가족관계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구자엽 LS전선 회장, 고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은 그의 동생이다.

    지순혜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구진희 채원컨설팅 대표이고 둘째는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다.

    ◆ 학력

    1965년 경기고등학교를 61회로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1973년 3월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경력

    1973년 9월 반도상사(현 LG상사) 사업부 수입과에 입사했다.

    1979년 반도상사 홍콩 지사장 부장을 거쳐 1983년 럭키금성상사 싱가폴지사 본부장에 올랐다.

    1987년 금성사 해외사업본부 상무에 올라 이듬해 전무로 승진했다.

    1991년 금성사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았다. 1995년 금성사가 LG전자로 이름을 바꾼 뒤 사장으로 승진해 재직하다가 1998년 부회장, 2002년 회장까지 승진했다.

    2004년 L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하면서 LS전선 회장과 LS산전 회장을 겸직했다.

    2008년 LS전선에서 지주회사 LS를 분리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 LS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2012년까지 그룹을 이끌었다.

    2013년 1월 LS그룹의 연수원인 LS미래원 회장으로 이동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3월 LS산전 사내이사에 오르며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5년 3월 2014년 별세한 동생 구자명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LS니꼬동제련 회장에 복귀했다. 현재 대표이사는 맡지 않고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다.

    2015년 4월 제21대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임기는 2년이다.

    ◆ 사건/사고

    2003년 10월 전 LG전자 직원이었던 정모씨에 의해 무고혐의로 고소당했다. 정모씨는 1999년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다가 퇴사했는데 노동부로부터 산재인정 및 복직 판정을 받았다.

    LG전자는 정씨가 왕따 이메일을 꾸며냈다며 사문서 변조 혐의로 고소했으나 정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정씨는 대표이사였던 구자홍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로 결론냈다. 2005년과 2007년에도 정씨는 구 회장을 고소했으나 마찬가지로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2008년 360만 달러를 송금해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지역에 고급주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1월 LS전선이 구자홍이 보유한 지분 8.58% 등 오너일가의 파운텍 지분 49% 전량을 인수했다. 파운텍은 LS그룹 계열사 매출 비중이 70%가 넘는 곳으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구자홍은 약 30억 원가량의 매각차익을 거뒀다.

    2014년 1월 원전에 불량 케이블을 납품해 물의를 빚은 JS전선을 상장폐지하고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LS그룹 오너 일가들이 사재를 출연해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구자홍은 약 5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그룹 회장인 구자열(67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구자홍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LS 주식 1만5400주를 매각했다.

    ◆ 상훈

    1985년 11월30일 제22회 수출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5년 5월19일 제30회 발명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9년 11월10일 제1회 산업디자인진흥대회에서 디자인경영대상을 받았다.

    2011년 12월9일 한국전문경영인학회로부터 한국CEO대상 제조부문상을 수상했다.

    2012년 2월17일 한국경영학회로부터 올해의 경영자대상을 받았다.

    ◆ 어록

    “두 분이 반세기 이상 해로 하고 영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존경과 배려의 힘이 큰 것 같다. 앞으로도 가족 모두가 이러한 두 분의 정신을 이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2016/05/07, 부친 구태회 명예회장과 모친 최무씨의 부부애를 돌이키며)

    “비철금속업계는 중국의 수요 감소와 가격하락이 멈추지 않는 한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때일수록 기술개발을 통한 우수제품 생산으로 수요와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영혁신 및 업계간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FTA체결국을 활용한 시장 확대 등 다각적인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2016/01/01, 한국비철금속협회 신년사)

    “협회 사무국과 함께 현재 우리나라 비철금속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한·중FTA 등 통상문제와 환경관련 규제법령 강화에 대한 대응,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등 현안문제에 적극 대처하도록 노력하겠다.” (2015/04/02,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LS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더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경영인이 제2의 도약을 이뤄야 할 때이며, 구자열 회장이 최적임자라고 믿는다. 차기 회장과 LS의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는 모범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 (2012/11, 구자열 회장에게 경영권 이양을 결정하며)

    “대나무가 꺾이지 않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각 마디를 이루고 있는 전 세계 LS그룹 계열사가 본격적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자' 역할에 충실하겠다.” (2012/02/17, 올해의 경영자 대상을 받고)

    “2003년 창립 이후 7년간 글로벌 경영위기 등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재계 10위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임직원들의 도전과 혁신의 땀방울이 얻은 결과다. 2011년에는 그린비즈니스 사업기반 확보와 실질적 성과 가시화, 새로운 경영철학인 LS파트너십의 실천과 육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등을 주요 경영목표로 삼아야 한다.” (2011/01/03, 신년사에서)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도전해야 한다. 특히 LS전선과 LS산전은 중국시장에서의 경영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나머지 주력 계열사들도 해외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2006/01/02, 신년사에서)

    “고객과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리딩 솔루션을 제공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임직원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기업이 되는 것이 LS그룹의 미래 비전이다. 새로운 CI 선포를 계기로 산업용 전기·전자 및 소재사업 분야의 국내 1등 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겠다.” (2005/03/14, LS그룹 CI 선포식에서)

    ◆ 평가

    재벌 오너일가로서 드물게 미국 유학시절 만난 부인 지순혜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부부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존댓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개인 블로그에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자홍은 “누구에게나 가족은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로 자리매김하듯이 나에게도 가족은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라며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자긍심과 행복을 주기 위해 성실한 삶,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데 노력하고 있고 여기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친 구태회 회장과 모친 최무씨를 90세가 넘도록 아래위층에서 모시고 살았다. 구자홍이 8층에, 구태회 회장이 7층에 살면서 부모님이 부르는 즉시 아랫집으로 내려가곤 했다고 한다. 최무씨는 2012년 5월, 구태회 회장은 2016년 5월 별세했다.

    홍콩지사장으로 5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중국 사회와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해박하다. LS그룹 회장에 오른 뒤 중국 우시에 LS산업단지를 조성하고 LS홍치전선을 인수해 키우는 등 중국사업 확대에 힘을 쏟았다.

    반도상사에 입사해 가장 처음 지시받은 일은 전선 피복용 폴리에틸렌 수지를 금성전선(현 LS전선)과 대한전선에 파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금성전선과 경쟁사였기 때문에 구자홍의 영업이 먹혀들지 않았다.

    구자홍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대한전선을 찾아갔고 대한전선 직원들이 도시락을 주문해 먹는 것을 보고 함께 한달 가까이 도시락 함께 먹으며 어울렸다. 결국 대한전선 구매팀 과장이 구자홍을 인정하고 구매 주문을 냈다.

    사회 경력 초반을 해외 영업현장에서 보내 국제 감각과 인맥을 갖추고 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지사에서 근무한 뒤 일본에서 근무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으나 구평회 당시 호남정유 사장이 원유구입 업무를 맡기는 바람에 싱가포르지사로 이동하게 됐다. 당초 구평회 사장이 믿고 맡길 사람이 없으니 자리가 잡힐 때까지 2년만 근무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5년 동안 근무하게 됐다.

    부사장 시절을 포함해 회장에 오르기까지 LG전자 CEO로만 10년을 근무했다. LG전자의 디지털 사업을 이끌며 디지털 CEO라는 별명도 얻었다. 계열분리로 LG전자 회장에서 사임할 때 65세까지 LG전자에서 일하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LG그룹에서 LS그룹이 분리한 뒤 초대회장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해외 진출, 연구개발 강화 등으로 10년간 매출을 4배, 영업이익을 3배, 기업가치를 7배 키우며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LS그룹의 재계 순위는 13위까지 올랐다.

    사촌동생 구자열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 잡음없이 경영권 이양이 이뤄져 그룹 공동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LS그룹이 분리할 때 선대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회장이 형제간 약속을 해 사촌들이 돌아가며 10년씩 그룹경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LS니꼬동제련 회장 및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면서 대외 네트워크 강화와 중장기 전략 검토 등 상징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경영을 이끄는 것은 공동대표이사인 강성원 사장과 요시미 토시히코 부회장이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LS그룹 내에서 LS니꼬동제련이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가장 많은 주요 계열사라는 점에서 구자홍의 경영 복귀 의미가 적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영복귀 첫해 매출은 4.1%, 영업이익은 41.3% 감소하면서 단기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LS니꼬동제련은 2016년 3월 강성원 사장이 물러나고 도석구 부사장이 대표이사에 새로 선임됐다. 강 사장은 LS니꼬동제련에서 계속 근무했던 업계 전문가이고 도 부사장은 LG 회장실을 거쳐 LS전선, LS 등에서 구자홍과 손발을 맞춰온 측근이다. 대표이사 교체로 친정체제를 확고히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과 나이 차이가 한 살밖에 나지 않는데 국제디자인대학원(IDAS) 최고경영자과정 등을 함께 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아그룹이 2012년과 2013년 구자홍의 아들 구본웅이 이끄는 포메이션8에 자금을 출자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재조명받았다.

    비교적 신생그룹인 LS그룹을 이끌면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특히 거창하게 포장된 사회공헌활동이 아닌 작더라도 진정성이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소외계층 지원활동, 지역사회 지원 및 환경보호 활동, 글로벌 지원활동 등을 폈다.

    LS그룹의 고유한 경영철학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2011년 LS파트너십을 선포했다. LS파트너십은 내부적으로 존중과 배려, 신뢰를 기반으로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들이 탁월한 성과를 만드는 것이며 외부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협력해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구자홍은 LS파트너십을 실천하기 위해 임직원들에게 성과를 내기 위해 과정이 좋지 않거나 비윤리적이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른바 ‘밝은 인재’를 그룹에서 추구하는 인재상으로 선호한다. 밝은 사람이 모인 밝은 조직이 상호 존중하는 바람직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비타인(不比他人)’을 가훈으로 삼고 있다.

    ◆ 기타

    바둑을 좋아해 1997년부터 바둑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한 후원활동을 해왔다.

    이세돌 9단도 14세부터 구자홍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라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 조혜연 9단, 원성진 9단 등을 후원했다.

    2010년부터 LS그룹 계열사 대표들이 참가하는 대회인 LS파트너십 바둑대회를 열었다. 2011년과 2012년 LS-베트남 바둑 챔피언십도 후원했으며 2012년 대회에는 본인이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바둑 실력은 아마 6단이다.

    바둑은 정치를 하는 부친 덕에 집안에 찾아온 손님들로부터 바둑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한다. 이후 한국 바둑의 대가로 불리는 조남철 명인의 ‘위기개론’을 구입해 독파하면서 바둑에 빠져들었다. 경기고등학교 동문 바둑대회를 만들 정도로 바둑을 좋아한다.

    바둑뿐 아니라 골프와 당구, 농구 등 잡기에 능하다. 골프는 싱글 핸디캡 수준으로 홀인원을 네 차례나 기록했으나 당구는 300점 수준이다. 고려대 재학시절 단과대학 농구 대표선수로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수영 역시 재계에서 손꼽힐 정도의 실력자다.

    종교는 카톨릭으로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해외에서 사용하는 이름인 존 구(John Koo)도 세례명과 동일하다.

    2013년 LS그룹 지주회사 LS에서 급여 3억1900만 원, 상여 9억 원 등 모두 12억19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2015년 LS산전에서 급여 4억8100만 원, 상여 9억5800만 원 등 14억39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2016년 6월30일 기준 LS 주식 89만5200주(지분 2.78%)를 보유하고 있다.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지분 3.87%)에 이어 2대 주주다.

    이 외에 LS전선 주식 78만623주(지분 6.86%), 예스코 주식 38만6760주(지분 6.45%), 가온전선 주식 13만807주(지분 3.14%), LS자산운용 주식 10만9607주(지분 5.48%) 등을 보유하고 있다.

    2011년 11월 아들 구본웅 대표에게 시가 13억9천억 원 규모의 LS 주식 1만9600주를 증여했다. 2011년 10월 누나 구근희씨와 여동생 구혜정씨 자녀 5명에게 예스코와 가온전선 주식 3만9040주, 2만400주씩 증여했다.

    2005년 6월 인터넷 개인페이지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주소는 https://www.johnkoo.pe.kr/index.asp이다.

  • ◆ 평가

    재벌 오너일가로서 드물게 미국 유학시절 만난 부인 지순혜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부부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존댓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개인 블로그에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자홍은 “누구에게나 가족은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로 자리매김하듯이 나에게도 가족은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라며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자긍심과 행복을 주기 위해 성실한 삶,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데 노력하고 있고 여기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친 구태회 회장과 모친 최무씨를 90세가 넘도록 아래위층에서 모시고 살았다. 구자홍이 8층에, 구태회 회장이 7층에 살면서 부모님이 부르는 즉시 아랫집으로 내려가곤 했다고 한다. 최무씨는 2012년 5월, 구태회 회장은 2016년 5월 별세했다.

    홍콩지사장으로 5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중국 사회와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해박하다. LS그룹 회장에 오른 뒤 중국 우시에 LS산업단지를 조성하고 LS홍치전선을 인수해 키우는 등 중국사업 확대에 힘을 쏟았다.

    반도상사에 입사해 가장 처음 지시받은 일은 전선 피복용 폴리에틸렌 수지를 금성전선(현 LS전선)과 대한전선에 파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금성전선과 경쟁사였기 때문에 구자홍의 영업이 먹혀들지 않았다.

    구자홍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대한전선을 찾아갔고 대한전선 직원들이 도시락을 주문해 먹는 것을 보고 함께 한달 가까이 도시락 함께 먹으며 어울렸다. 결국 대한전선 구매팀 과장이 구자홍을 인정하고 구매 주문을 냈다.

    사회 경력 초반을 해외 영업현장에서 보내 국제 감각과 인맥을 갖추고 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지사에서 근무한 뒤 일본에서 근무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으나 구평회 당시 호남정유 사장이 원유구입 업무를 맡기는 바람에 싱가포르지사로 이동하게 됐다. 당초 구평회 사장이 믿고 맡길 사람이 없으니 자리가 잡힐 때까지 2년만 근무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5년 동안 근무하게 됐다.

    부사장 시절을 포함해 회장에 오르기까지 LG전자 CEO로만 10년을 근무했다. LG전자의 디지털 사업을 이끌며 디지털 CEO라는 별명도 얻었다. 계열분리로 LG전자 회장에서 사임할 때 65세까지 LG전자에서 일하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LG그룹에서 LS그룹이 분리한 뒤 초대회장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해외 진출, 연구개발 강화 등으로 10년간 매출을 4배, 영업이익을 3배, 기업가치를 7배 키우며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LS그룹의 재계 순위는 13위까지 올랐다.

    사촌동생 구자열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 잡음없이 경영권 이양이 이뤄져 그룹 공동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LS그룹이 분리할 때 선대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회장이 형제간 약속을 해 사촌들이 돌아가며 10년씩 그룹경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LS니꼬동제련 회장 및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면서 대외 네트워크 강화와 중장기 전략 검토 등 상징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경영을 이끄는 것은 공동대표이사인 강성원 사장과 요시미 토시히코 부회장이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LS그룹 내에서 LS니꼬동제련이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가장 많은 주요 계열사라는 점에서 구자홍의 경영 복귀 의미가 적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영복귀 첫해 매출은 4.1%, 영업이익은 41.3% 감소하면서 단기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LS니꼬동제련은 2016년 3월 강성원 사장이 물러나고 도석구 부사장이 대표이사에 새로 선임됐다. 강 사장은 LS니꼬동제련에서 계속 근무했던 업계 전문가이고 도 부사장은 LG 회장실을 거쳐 LS전선, LS 등에서 구자홍과 손발을 맞춰온 측근이다. 대표이사 교체로 친정체제를 확고히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과 나이 차이가 한 살밖에 나지 않는데 국제디자인대학원(IDAS) 최고경영자과정 등을 함께 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아그룹이 2012년과 2013년 구자홍의 아들 구본웅이 이끄는 포메이션8에 자금을 출자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재조명받았다.

    비교적 신생그룹인 LS그룹을 이끌면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특히 거창하게 포장된 사회공헌활동이 아닌 작더라도 진정성이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소외계층 지원활동, 지역사회 지원 및 환경보호 활동, 글로벌 지원활동 등을 폈다.

    LS그룹의 고유한 경영철학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2011년 LS파트너십을 선포했다. LS파트너십은 내부적으로 존중과 배려, 신뢰를 기반으로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들이 탁월한 성과를 만드는 것이며 외부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협력해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구자홍은 LS파트너십을 실천하기 위해 임직원들에게 성과를 내기 위해 과정이 좋지 않거나 비윤리적이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른바 ‘밝은 인재’를 그룹에서 추구하는 인재상으로 선호한다. 밝은 사람이 모인 밝은 조직이 상호 존중하는 바람직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비타인(不比他人)’을 가훈으로 삼고 있다.

    ◆ 사건/사고

    2003년 10월 전 LG전자 직원이었던 정모씨에 의해 무고혐의로 고소당했다. 정모씨는 1999년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다가 퇴사했는데 노동부로부터 산재인정 및 복직 판정을 받았다.

    LG전자는 정씨가 왕따 이메일을 꾸며냈다며 사문서 변조 혐의로 고소했으나 정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정씨는 대표이사였던 구자홍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로 결론냈다. 2005년과 2007년에도 정씨는 구 회장을 고소했으나 마찬가지로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2008년 360만 달러를 송금해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지역에 고급주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1월 LS전선이 구자홍이 보유한 지분 8.58% 등 오너일가의 파운텍 지분 49% 전량을 인수했다. 파운텍은 LS그룹 계열사 매출 비중이 70%가 넘는 곳으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구자홍은 약 30억 원가량의 매각차익을 거뒀다.

    2014년 1월 원전에 불량 케이블을 납품해 물의를 빚은 JS전선을 상장폐지하고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LS그룹 오너 일가들이 사재를 출연해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구자홍은 약 5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그룹 회장인 구자열(67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구자홍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LS 주식 1만5400주를 매각했다.

  • ◆ 경력

    1973년 9월 반도상사(현 LG상사) 사업부 수입과에 입사했다.

    1979년 반도상사 홍콩 지사장 부장을 거쳐 1983년 럭키금성상사 싱가폴지사 본부장에 올랐다.

    1987년 금성사 해외사업본부 상무에 올라 이듬해 전무로 승진했다.

    1991년 금성사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았다. 1995년 금성사가 LG전자로 이름을 바꾼 뒤 사장으로 승진해 재직하다가 1998년 부회장, 2002년 회장까지 승진했다.

    2004년 L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하면서 LS전선 회장과 LS산전 회장을 겸직했다.

    2008년 LS전선에서 지주회사 LS를 분리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 LS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2012년까지 그룹을 이끌었다.

    2013년 1월 LS그룹의 연수원인 LS미래원 회장으로 이동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3월 LS산전 사내이사에 오르며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5년 3월 2014년 별세한 동생 구자명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LS니꼬동제련 회장에 복귀했다. 현재 대표이사는 맡지 않고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다.

    2015년 4월 제21대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임기는 2년이다.

    ◆ 학력

    1965년 경기고등학교를 61회로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1973년 3월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구자엽 LS전선 회장, 고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은 그의 동생이다.

    지순혜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구진희 채원컨설팅 대표이고 둘째는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다.

    ◆ 상훈

    1985년 11월30일 제22회 수출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5년 5월19일 제30회 발명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9년 11월10일 제1회 산업디자인진흥대회에서 디자인경영대상을 받았다.

    2011년 12월9일 한국전문경영인학회로부터 한국CEO대상 제조부문상을 수상했다.

    2012년 2월17일 한국경영학회로부터 올해의 경영자대상을 받았다.

  • ◆ 어록

    “두 분이 반세기 이상 해로 하고 영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존경과 배려의 힘이 큰 것 같다. 앞으로도 가족 모두가 이러한 두 분의 정신을 이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2016/05/07, 부친 구태회 명예회장과 모친 최무씨의 부부애를 돌이키며)

    “비철금속업계는 중국의 수요 감소와 가격하락이 멈추지 않는 한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때일수록 기술개발을 통한 우수제품 생산으로 수요와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영혁신 및 업계간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FTA체결국을 활용한 시장 확대 등 다각적인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2016/01/01, 한국비철금속협회 신년사)

    “협회 사무국과 함께 현재 우리나라 비철금속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한·중FTA 등 통상문제와 환경관련 규제법령 강화에 대한 대응,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등 현안문제에 적극 대처하도록 노력하겠다.” (2015/04/02,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LS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더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경영인이 제2의 도약을 이뤄야 할 때이며, 구자열 회장이 최적임자라고 믿는다. 차기 회장과 LS의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는 모범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 (2012/11, 구자열 회장에게 경영권 이양을 결정하며)

    “대나무가 꺾이지 않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각 마디를 이루고 있는 전 세계 LS그룹 계열사가 본격적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자' 역할에 충실하겠다.” (2012/02/17, 올해의 경영자 대상을 받고)

    “2003년 창립 이후 7년간 글로벌 경영위기 등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재계 10위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임직원들의 도전과 혁신의 땀방울이 얻은 결과다. 2011년에는 그린비즈니스 사업기반 확보와 실질적 성과 가시화, 새로운 경영철학인 LS파트너십의 실천과 육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등을 주요 경영목표로 삼아야 한다.” (2011/01/03, 신년사에서)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도전해야 한다. 특히 LS전선과 LS산전은 중국시장에서의 경영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나머지 주력 계열사들도 해외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2006/01/02, 신년사에서)

    “고객과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리딩 솔루션을 제공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임직원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기업이 되는 것이 LS그룹의 미래 비전이다. 새로운 CI 선포를 계기로 산업용 전기·전자 및 소재사업 분야의 국내 1등 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겠다.” (2005/03/14, LS그룹 CI 선포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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