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포괄허가취급요령’에 따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를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의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탄소섬유와 공작기계의 수출규제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한국 수출절차 조정 눈앞, 탄소섬유 공작기계 규제 강화 가능성

▲ 6일 경상남도 창원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된 대한상공회의소와 창원상공회의소의 기업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7일 포괄허가취급요령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한국에 수출하는 전략물자 1100여 품목의 수출 허가절차를 조정하게 된다. 

전략물자는 대량파괴무기나 재래식 무기, 미사일 등의 제조, 개발, 사용 등에 쓰일 수 있는 물품과 기술을 말한다. 전략물자를 수출하려면 일본 정부의 개별 허가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돼 수출절차 간소화 조치가 적용돼 왔다. 일본에서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3년 단위의 일반포괄허가를 받으면 개별 허가는 받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면서 전략물자의 수출허가 절차는 특별일반포괄허가 또는 개별허가를 받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특별일반포괄허가는 일본에서 지정한 전략물자 품목 1120개 가운데 비민감품목 857개를 대상으로 적용된다. 일본 수출기업이 정부의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아 수출을 잘 관리한다고 여겨진다면 개별 허가를 면제하고 3년 단위의 포괄허가를 내주는 방식이다.  

국내 기업이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특별일반포괄허가로 지정된 품목을 사들인다면 이전처럼 처리기간 일주일에 유효기간 3년인 수출 허가를 적용받는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의 타격도 비교적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증을 받지 않은 일본 기업은 한국에 물품을 수출할 때 경제산업성의 개별 허가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 개별 허가는 심사기간만 최대 90일이고 일본 정부가 서류 보완을 요청하면 더욱 길어질 수 있다.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은 1300여 곳에 머물러 이들과 거래하지 않는 국내 중소기업은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증을 받는 데 수출처도 고려되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 기업이 인증을 새로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에서 어떤 품목의 수출규제를 먼저 강화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며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의 정확한 명단이 파악되지 않았고 기본 원칙은 모든 전략물자 품목을 개별 허가로 돌리는 쪽”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일본 수입 의존도는 높고 일본의 한국 수출 의존도는 낮은 일부 품목을 개별 허가만 가능하도록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지정된 품목은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이라 해도 한국에 수출할 때 경제산업성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앞서 일본 정부가 7월4일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소재품목 3개를 개별 허가로 조정한 뒤 지금까지 수출 개별 허가를 한 건도 내주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탄소섬유와 공작기계 관련 품목이 개별 허가로 조정될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탄소섬유는 자동차, 반도체, 항공엔진 등 여러 분야에서 소재로 쓰인다. 공작기계는 다른 기계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기계로 제조업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도레이, 도호테낙스, 미쓰비시레이온 등 일본 기업 3곳의 글로벌 탄소섬유시장 점유율은 66%에 이른다. 국내 기업도 2017년 기준 탄소섬유 수입량의 50%를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국내에서 탄소섬유 소재를 조달할 수 있지만 안정적 양산체제를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준과 비교해 기술력을 높이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 아래 무역위원회가 펴낸 ‘2018년 탄소섬유 및 탄소섬유 가공소재산업 경쟁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산 탄소섬유의 기술 경쟁력은 73점으로 평가돼 일본의 99점을 밑돌았다.

전략물자관리원에 따르면 공작기계로 분류되는 전체 품목의 60%가 일본에서 전략물자로 분류됐다. 국내 공작기계시장의 일본 점유율도 25%에 이른다.

특히 컴퓨터로 기계를 제어하는 데 쓰이는 컴퓨터수치제어(CNC) 소프트웨어는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수입량의 91%를 일본 화낙에서 들여오고 있다. 독일 지멘스 등의 대체 수입원이 있지만 더 비싼 가격과 시스템적 차이 때문에 국내 기업도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7월 말 기사에서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뺀다면 반도체 소재품목 3개 외에 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공작기계와 탄소섬유의 수출 관리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