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문제 해결은 CSR 차원이 아닌 사회적기업과 같은 제3섹터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동적 생태계가 조성돼야 지속적이고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2년 사회적 기업 포럼 발언.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핵심방법은 사회적기업이며, 사회적기업이 영리기업처럼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데 힘쓰겠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3년 신년사.

국내 대기업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며 실천한다. 대부분 의무적 성격이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주장하는 사회적 가치는 의무적 성격을 넘어선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 창출과 그를 위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 누구보다 목을 매며 앞장서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품게 된 것은 2009년 한 대학에서 열린 국제 포럼에 참석하면서부터로 전해진다. 이후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포럼에서 그의 얼굴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수감 생활 중에도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의 계열사 출자금 465억 원을 국외에서 불법적으로 쓴 혐의(횡령)로 2014년 징역 4년을 받았다.

최 회장은 2014년 10월 감옥에서 집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을 출간한다. 최 회장은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은 사회적기업 활동을 한 나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희망과 아이디어를 정리했다는 의미에 더해, 앞으로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종의 출사표와 같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이 헌신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각오를 드러낸 것은 수감생활 중 큰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깨달음은 ‘행복’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최 회장 개인의 행복, 기업과 구성원의 행복, 고객과 사회의 행복. 여기에 부친 최종현 회장의 뜻을 이어 무엇인가를 남기겠다는 의지가 사회적 가치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8월 광복 70주년 특사로 출소한 최 회장은 경영에 복귀한 뒤 저서에 밝힌 대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SK의 핵심 기업정신으로 강조하고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는 DBL(Double Bottom Line)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8년 SK그룹 주요 계열사들 ‘기업의 핵심 가치’ 정관에 적혀 있던 ‘이윤 창출’ 삭제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 적시했다. 2019년부터는 계열사 CEO 평가에 사회적 가치 창출을 50% 반영했다.

둘째는 기업자산의 공유 인프라 지원이다. SK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190조 원에 이르는 유무형 기업자산을 공유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로 했다.

셋째는 사회성과 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 프로젝트 가동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 기업이 고용, 환경, 복지,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지원하여 성과 창출을 독려하는 프로젝트이다.

최 회장은 2019년 3월 다보스포럼에서 4년간 190여 개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SPC를 시행한 결과 지원금 150억 원보다 많은 성과를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태원 회장은 보아오포럼, 베이징포럼, 닛케이 세계경영자회의 등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며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사회적 가치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최 회장이 주장하는 사회적 가치 경영기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도 있다.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와 횡령 등 혐의로 두 차례 수감생활을 했으며, 계열사 SK케미칼 ‘가습기 살균제’ 가해기업으로 지목돼 검찰수사를 받기도 했다.

SK브로드밴드가 정규직으로 품은 협력업체 간접고용 노동자 4500여 명 중 상당수는 낮은 임금 등에 불만을 터뜨리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이 인수한 보안경비업체 NSOK 등 일부 그룹 자회사 직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지난 5월 SK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 추락사고가 발생했는데, 사고 노동자는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위험의 외주화’와 맞물려 SK의 사회적 가치 창출의 의미를 깎아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현재까지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성과를 수치로 나타내기에도 이르다.

최 회장은 기업이 단기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사회에서 신뢰받는 기업이 돼야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성장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다시 말해 지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인증 사회적 기업은 약 2100개로 2008년 150여개 수준에서 10년 만에 14배 늘었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 과정에는 최태원 회장과 SK의 후원이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태원 회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SK케미칼 사태, 자회사들의 차별문제, 하청고용 문제 등에서도 ‘사회적 가치’ 경영기조에 걸맞게 해결책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임금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