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키코 사태의 분쟁조정을 추진하는 데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측면지원을 받아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관계자에 따르면 키코 사태 분쟁조정을 위한 업무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Who] 윤석헌, 키코 사태 분쟁조정의 '우군' 늘어 갈수록 힘얻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다만 피해기업과 은행권 사이에 의견 차이가 큰 데다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에 회의적 생각을 밝히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좀처럼 속도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윤 원장은 키코 사태의 분쟁조정을 올해 상반기 중으로 결론내려 했지만 결국 6월 중 분쟁조정위원회 상정은 연기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6월 중으로 키코 사안을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양 당사자가 받아들일 만한 조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키코 사태를 놓고 교수 시절부터 중요한 금융소비자 피해사건으로 보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금융위에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하기도 했다. 

윤 원장은 2018년 5월 금감원장에 취임하자 본격적으로 키코 사태의 재조사를 시작했다.

키코 사태의 분쟁조정 추진은 앞으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키코 피해기업을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키코 사태를 놓고 생각을 밝히며 금감원의 분쟁조정 추진에 힘을 실었다. 

민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에 “과거 미흡했던 소비자 보호조치를 시정하고 구제해야 할 필요성과 법적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키코 분쟁조정은 사실상 마지막 구제수단”이라며 “2013년 대법원 판결에서 일부 불완전 판매를 놓고 배상하도록 했음에도 은행은 피해 배상에 나서지 않은 만큼 이번 금감원 분쟁조정을 당시 이행하지 않은 소비자보호 책무를 지금이라도 이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의 발언은 은행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민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무위원회는 소관부처로 금융위원회를 두고 있어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국회 상임위원회다.

키코 피해기업들의 모임인 키코공동대책위원회가 18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 때에는 13곳 시민단체가 함께 했다.

13곳 시민단체 가운데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등 현 정부에 우호적 시민단체가 다수 포함됐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해 5월에 키코를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대상으로 본 것은 금융위”라며 “금융위는 이제라도 금감원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키코 사태를 책임감 있게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코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 은행권 등을 향한 비판이 높아지자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놓고 부정적이었던 최 위원장의 태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최 위원장은 21일 DGB금융지주 핀테크랩 개소식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 지난 발언은 언론에 의문이라고만 보도됐으나 금감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겠다는 것이었다”며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반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양쪽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의 태도는 10일 발언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는 10일 마포혁신타운 착공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키코가 분쟁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당사자들이 받아들여야 분쟁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므로 금감원이 어떻게 할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키코 재조사를 권고했을 당시에도 “검찰 수사 및 대법원 판결이 끝나 전면 재조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키코(KIKO, Knock-In, Knock-Out)는 수출기업이 환헤지를 위해 국내 은행과 맺었던 환율변동과 관련된 파생상품 계약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정해진 환율을 적용하고 상한선 이상 오르면 기업이 계약금의 2배 이상을 은행에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08년 외환위기로 1천 원 안팎이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 넘게 오르면서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줄도산하면서 키코 사태가 벌어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