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라피더스 2나노 파운드리 삼성전자와 경쟁 피한다, '선택과 집중' 뚜렷

▲ 히가시 데쓰로 라피더스 회장이 지난해 2월2일 일본 도쿄 라피더스 본사 사옥 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가 2나노 미세공정 기술로 삼성전자나 대만 TSMC와 맞경쟁을 노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반도체 사업 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정부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고 선두 기업의 기술력과 생산 효율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는 21일 “일본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주요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거금을 베팅했다”며 “반도체가 경제 안보에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제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을 두고 다수의 기업에 막대한 시설 투자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TSMC의 일본 공장 2곳에 책정된 지원금은 모두 1조1천억 엔(약 9조8천억 원)에 이른다. 마이크론과 키옥시아도 공장 증설에 각각 2조 원 넘는 보조금을 받는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라피더스의 홋카이도 공장 신설에 책정된 1조 엔(약 8조9천억 원) 상당의 금전적 지원이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가 직접 설립을 주도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정부 지원을 받아 공장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설립된 지 18개월에 불과한 라피더스가 반도체사업에 전혀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2027년까지 2나노 파운드리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2025년 2나노 반도체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미세공정 기술력을 꾸준히 쌓아 오며 고객사 기반과 노하우를 확보했다.

자연히 라피더스가 일본 정부 지원을 받아 공장을 완공한 뒤에도 삼성전자와 TSMC를 상대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구도를 구축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도체 생산 수율이나 공급 능력, 가격 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피더스의 2나노 미세공정 기술 확보는 일본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자급 능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본 라피더스 2나노 파운드리 삼성전자와 경쟁 피한다, '선택과 집중' 뚜렷

▲ 일본 라피더스의 홋카이도 반도체공장 예상 조감도 그래픽 이미지. <라피더스>

첨단 공정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 대만 등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도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라피더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실현 가능한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시미즈 아츠오 라피더스 전무는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반도체 기술에서 글로벌 상위에 올라야 한다”며 “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라피더스의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이 경제적 성과보다 일본의 국가 경쟁력 강화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시미즈 전무는 “라피더스는 삼성전자나 TSMC와 상업용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며 “틈새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대형 파운드리 업체에 위탁생산을 주문하기 어려운 고객사들의 반도체를 소량 생산해 빠르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라피더스의 역할을 찾겠다는 의미다.

이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량의 주문 수주나 가격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라피더스 입장에서 효과적일 수 있는 전략으로 꼽힌다.

라피더스는 2나노 반도체 관련 핵심기술을 다수 보유한 미국 IBM과 협력해 기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고려한다면 2027년 2나노 파운드리 생산체계 구축 목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블룸버그는 “라피더스는 정부 지원 이외에 어떠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지 아직 밝히지 않았다”며 “공장 가동을 위한 인력 확보 등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