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기업 구조조정 원칙으로 내세우는 ‘신속 매각’이 하림그룹과 HMM 매각 협상 결렬로 금이 갔다.

특히 ‘고래급’ 인수자가 없는 상황에서 인수 자금 동원에 의문이 있던 하림그룹을 상대로 무리하게 HMM 매각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만큼 강 회장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HMM 주인 찾기 무산에 빛 바랜 강석훈표 '신속 매각', 산은 서두르다 책임론만 키웠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사진)이 '신속 매각' 원칙을 앞세워 HMM 매각을 추진했으나 7일 우선협상대상자 하림그룹과의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연합뉴스>


7일 산업은행은 HMM 경영권 매각을 두고 우선협상대상자인 팬오션·JKL컨소시엄과 7주에 걸쳐 진행한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협상기간 동안 상호 신뢰 아래 성실히 협상에 임했으나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이번에도 신속 매각을 앞세우며 협상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속 매각은 강 회장이 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한 이후 줄곧 고수해왔던 기업 구조조정 원칙 가운데 하나다.

이 원칙에 따라 강 회장은 취임 3개월 만에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으로 한화그룹을 찾는 성과를 냈다.

강 회장은 2023년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업은행의 해묵은 숙제였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전격적으로 신속하게 이뤄냈다”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회장의 신속 매각 원칙이 HMM 매각전에서는 통하지 못했다.

신속한 매각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던 산업은행과 달리 해양진흥공사는 HMM이 국내 유일의 컨테이너 선박회사라는 점을 고려해 경영에 일정 부분 관여하겠다는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림그룹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협상 결렬과 관련해 “그동안 은행과 공기업으로 구성된 매도인 사이의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았다”며 “실질적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HMM 주인 찾기 무산에 빛 바랜 강석훈표 '신속 매각', 산은 서두르다 책임론만 키웠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인수 자금 동원에 의문이 있던 하림그룹을 상대로 무리하게 HMM 매각을 추진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HMM 매각 무산으로 강 회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 회장은 의원들로부터 HMM이 자금 동원이나 경영 능력 측면에서 적합하지 못한 주체에게 매각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강 회장은 매각전에 참여한 기업들이 충분한 역량을 가진 회사라고 평가하면서 매각을 신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이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계열사인 팬오션의 현재 발행주식보다도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결정해 강 회장이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강 회장은 HMM 매각 무산에 따른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신속 매각 원칙을 내세우며 새 주인 찾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하림그룹과 협상 과정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던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HMM 영구채의 주식 전환 문제가 계속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시장에서는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림그룹이 지적했듯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1조6800억 원어치의 영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인수자의 지분율은 57.9%에서 38.9%로 떨어진다. 인수자의 입장에서는 지분 하락으로 경영권이 간섭받을 수 있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HMM 경영권 매각 재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