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탈원전을 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이라는 건 포기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국내 산업계 안팎은 물론 정치권까지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원전이 대통령과 정부의 뜻대로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가 짚어 본다.
①원전이 제 역할 할까? 넘어야 할 과제들 '험준'
②라이벌 지목된 대만 미국 독일, 원전과 이별 중
③포화 상태인 수도권 송전망과 투자여력 없는 한전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대점검] 라이벌 지목된 대만 미국 독일, 원전과 이별 중

▲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에 위치한 시카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시카 원자력발전소는 1일 일본에서 발생한 진도 7.6의 강진 이후 운전 정지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클러스터와 원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까?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의 경쟁국가로 지목한 독일, 미국, 대만, 일본 등 해외 국가의 동향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19일 전력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는 원전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세 번째,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을 통해 경기도 일대에 수원, 화성, 기흥 등 경기도 일대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방안’을 통해 “반도체 산업 전쟁은 클러스터 국가대항전 형태로 전개 중”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사용될 전력 공급을 위해 신규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행사 자리에서 “반도체 파운드리 라인 하나 까는 데 1.3GW(기가와트)의 원전 1기가 필요하다”며 “탈원전을 하게 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이라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의 경쟁국으로 직접 제시한 국가는 독일, 미국, 대만, 일본이다.

대만은 한국과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표적 국가다.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 TSMC는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는 기업이기도 하다.

TSMC가 대만의 경제는 물론 안보 측면에까지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만 정부는 TSMC의 반도체 생산을 지원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가뭄 때는 TSMC의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농업용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정도다.

하지만 대만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은 ‘비핵가원(非核家園)’으로 불리는 탈원전과 해상풍력 확대다.

13일 치러진 차기 총통 선거에서 현재 여당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16년 취임 직후부터 탈원전에 공을 들여왔다.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은 2020년부터 부총통을 맡는 등 현재 대만 정부의 국정운영에 적극 참여해 온 만큼 기존 정부 정책을 그대로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만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2기이며 2025년까지만 가동될 것으로 예정돼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련해 라이칭더 당선인은 총통 선거 과정에서 대만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현재 20%에서 30%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야당인 국민당은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전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으나 민진당의 대만 역사상 첫 3연속 집권을 막지 못했다.

미국 역시 원전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를 인용해 밝힌 2022년 기준 OECD 주요 10개국 발전량 자료를 보면 한국을 제외하고 일본, 캐나다, 독일, 프랑스, 멕시코, 튀르키예, 영국, 스페인 등 국가에서 원전 비중이 감소했다.

미국도 원전 비중은 2022년에 17.9%로 전년도 18.6%에서 감소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16일(현지시각) 내놓은 발표를 통해 “미국 내 태양광발전 규모가 2023년 1630억 kWh에서 2025년 2860억 kWh로 75% 성장할 것”이라며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미국 내 전력생산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치러질 미국 대선 결과는 주요 변수로 여겨지지만 에너지 정책 방향의 큰 틀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가 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와 워싱턴 주재 한국 기업인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설령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전기차, 배터리 등 IRA 관련 산업의 성장 기조는 속도는 다르겠으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대점검] 라이벌 지목된 대만 미국 독일, 원전과 이별 중

▲ 독일은 2023년 4월16일 0시(현지시각) 엠스란트, 네카베스트하임2, 이자르2 등 원전 3곳의 가동을 영구정지했다. 독일은 1961년 처음으로 원전을 가동한 이후 62년 만에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추면서 세계 첫 탈원전 국가가 됐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설치된 탈원전 관련 조형물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또다른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국으로 꼽은 독일은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달성한 나라다.

지난해 4월 엠스란트, 네카베스트하임2, 이자르2 등 원전 3곳의 가동을 영구정지하면서 독일 내 가동되는 원전은 현재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 등 20여 개 국가와 함께 2050년까지 원전 3배 확대한다는 서약에 참여하는 등 원전 확대에 비교적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일본은 세계적 탈원전 움직임에 주요 계기가 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직접 겪은 만큼 국내에 원전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COP28에서 원전 3배 확대 서약에 참여한 직후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일본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을 3배로 늘리는 것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전 세계적으로 원전이 확대될 때 일본은 각 국가에 기술, 인재 등을 지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