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식수원' 빙하 절반 사라졌다, 기후변화 가속에 대책 강화 목소리 높아져

▲ 페루 식수원 역할을 한 빙하의 절반이 사라졌다. 사진은 2016년 8월 페루 후아레즈의 국립공원에서 찍은 빙하의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남미의 빙하가 절반 가까이 녹아 없어지는 등 기온 상승에 따른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국제기관들이 현행 기후목표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3일 로이터와 CNN 등 주요 외신들을 종합하면 남미에서 빙하 소실과 폭염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로이터는 22일(현지시각) 페루 국립기상과학연구소가 자국의 빙하 면적이 56% 줄었다고 발표한 자료를 보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페루 빙하의 면적은 1962년 2399㎢(평방킬로미터)에서 2020년 1050㎢로 감소했다.

특히 최근 4년 사이에 가장 많은 양의 빙하가 유실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약 6%가 줄어들었다.

페루에서 빙하 감소는 곧 식수원 감소로 이어진다. 국토 대부분이 고지대라 빙하가 주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페루 국립기상과학연구소는 약 2천만 명이 넘는 페루 주민들이 빙하 감소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비나 루이즈 페루 환경부 장관은 로이터를 통해 “우리는 사실상 식수원의 절반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탄소 오염(pollution)을 줄이고 녹지대를 형성하는 등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당장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안데스산맥을 공유하고 있는 칠레, 볼리비아, 콜롬비아 등 국가들도 빙하가 상당량 유실됐다.

특히 칠레는 8월 칠레 수자원관리부 발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 빙하 8%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들은 8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폭염으로 겨울에도 기온이 일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이상 기후를 겪었다. 심지어 남미와 인접한 남극 일부분에서도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상황의 심각성을 증명하듯 당시 세계 기온 상승은 파리협정에서 목표로 정한 산업화 이전 시대 대비 1.5도를 넘어섰다.
 
페루 '식수원' 빙하 절반 사라졌다, 기후변화 가속에 대책 강화 목소리 높아져

▲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에서 관측한 세계 평균 기온 상승. 17일과 18일 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시대 대비 2도를 넘겼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

이러한 이상기온은 11월까지도 이어졌다.

유럽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20일(현지시각) 발표에 따르면 17일에 세계 평균 기온은 2.07도, 18일에 2.06도 올라 사상 최초로 2도의 벽을 넘어섰다.

사만다 브루게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부국장은 CNN과 인터뷰에서 “기온 상승이 이틀 연속 2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파리협정 목표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합의했던 한계선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세계가 이전보다 자주 1.5도나 2도 선을 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협정 목표란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참가국들이 합의한 '1.5도 목표' 혹은 '2도 목표'를 뜻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각국이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최소한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이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같은 날 '2023년 배출 갭 보고서'를 발간해 각국 정부가 기후대책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세계 평균 기온이 2.9도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2030년까지 현재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28% 감축해야 '2도 목표'를, 42% 감축해야 '1.5도 목표'를 지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현행 기후정책만으로 1.5도 목표를 지킬 가능성은 14%에 불과했다. 사실상 현행 기후정책들로는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한 셈이다.

유엔환경계획은 동시에 2015년 파리협정이 체결된 이래 인류가 추진해온 기후정책들이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2015년에는 2030년까지 16%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던 온실가스 배출은 2023년 기준 3%만이 증가한 상태다.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 증가세를 억제한 것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일 소식지를 통해 “우리는 아직 1.5도 목표를 지킬 수 있다”며 “그것을 위해선 기후변화의 썩은 뿌리, 화석연료를 완전히 퇴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화석연료 감축이 절실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3일 '석유와 천연가스 업계 탄소중립 전환' 보고서를 통해 현재 화석연료 업계가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거의 두 배 많은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티흐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가디언을 통해 "화석연료업계가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라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이 순간 '평상시와 같은(business as usual)' 운영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목표를 준수한다면 2050년까지 화석연료 수요가 현재와 비교해 45% 이상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파리협정 목표를 실현하려면 최소 75%를 감축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석유와 천연가스 업체들은 현재 그들이 가진 자본과 기술 가운데 2.5%만을 기후 대응에 사용한다"며 "나머지 97.5%는 전부 원래 그들이 하고 있던 사업 영역에 투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많은 화석연료 업체가 기후변화를 향한 행동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주장해왔으니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행동할 적절한 시기"고 말했다.

석유, 천연가스업체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들 역시 새로운 석유 시추 허가를 내주는 등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기후대응에 앞장서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아랍에미리트(UAE)는 30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개최한다. 총회 의장은 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회사(ADNOC)의 술탄 알 자베르 최고경영자(CEO)가 맡았다. 

미국과 영국은 각각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친환경 에너지 로드맵 같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다.

2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영국은 독일과 캐나다 등 서구권 국가들과 함께 COP28 참여국들에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관련 재정 지원 중단을 강력하게 요청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파이낸셜타임스의 문의에 해당 계획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유럽연합(EU), 중국 등 다른 다배출 국가들도 메탄 규제 등 갖가지 기후약속들을 쏟아내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목표치를 확정해서 내놓지는 않은 상태다.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현행보다 더 강화하지 않으면 1.5도 목표는 물론 2도 목표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국제기구와 연구자들의 경고가 이번 COP28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12월12일 총회 마지막날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