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국 대통령 최초 영국의회 연설, “국제사회와 연대해 질서 수호할 것”

▲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런던의 의회인 웨스트민스터 궁 로열 갤러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최초로 영국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은 ‘한영 어코드’를 기반으로 양국이 진정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거듭났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제규범과 질서를 수호할 연대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영국 의회에서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이 창조적 동반자로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증진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의회의 어머니’인 영국 의회에 서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운을 띄우며 “영국은 근현대 세계사의 개척자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고 시장경제 질서를 꽃피웠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확립은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정치혁명으로 확산되었고, 세계 곳곳에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주정치가 정착되었다”며 “한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 영국과 최초로 1883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고 양국 간 오랜 인연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스 선교사는 1887년에 최초로 신약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했고 브리스톨 출신 어니스트 베델 기자는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3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의 독립에 앞장섰다”며 “1916년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 온 워릭셔 출신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하면서 장학회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도 영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며 영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8만 명의 군대를 파병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참석한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의 명예 보훈장관인 콜린 태커리 옹을 지명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깊은 감사와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고 치켜세웠다.

윤 대통령은 태커리 옹을 향해 “6·25 전쟁 당시 처음 도착했던 부산을 다시 찾아 그곳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전우들을 위해 감동적인 노래를 불러주셨다”며 “한국의 민요 '아리랑'을 부르셨는데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였다”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영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도움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기적과도 같은 성공 신화를 써내려 왔다”며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반도체, 디지털 기술, 문화 콘텐츠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문화강국이 되었으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고 말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윤 대통령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은 올해가 양국 관계가 새롭게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바라봤다.

그는 “사이버 안보 협력 체계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며 "영국과 함께 북한의 WMD(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처하면서 가상화폐 탈취, 기술 해킹 등 국제사회의 사이버 범죄에 대한 공조도 강화해 나갈 것이다”고 예고했다.

이어 2021년 한영 FTA가 발효된 것을 거론하며 ”저의 이번 국빈방문 계기에 체결하는 '한영 어코드'를 기반으로 이제 양국은 진정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 개방되고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영국과 함께 만들고 영국과 함께 인류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양국의 협력 지평을 디지털·AI(인공지능), 사이버 안보, 원전, 방산, 바이오, 우주, 반도체, 해상풍력, 청정에너지, 해양 분야 등으로 확장하는데 영국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북한 핵 위협 등 지정학적 리스크 앞에 국제사회가 분열되고 있는 등 국제사회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평화는 혼자 지켜낼 수 없다”며 “한국은 영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불법적인 침략과 도발에 맞서 싸우며 국제규범과 국제질서를 수호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디지털 시대를 맞아 새로운 규범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AI를 비롯한 디지털은 오로지 인간의 자유와 후생을 확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며 “국경을 초월한 연결성과 즉시성을 지닌 AI와 디지털이 자아내는 피해를 막으려면 국제사회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규범이 정립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가 9월에 자유, 공정, 안전, 혁신, 연대의 다섯 가지 원칙을 담은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양국이 문화예술의 매력도 지니고 있다며 “영국이 비틀즈, 퀸, 해리포터,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엔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윈스턴 처칠 수상은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고 했다”며 “오늘 영국 의회에서 영국과 한국이 함께 그려갈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위대한 영국과 영국인들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길 기원한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이 외국 의회에서 외국어로 연설한 것은 4월 미국 국빈 방문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의회에는 존 맥폴 상원의장, 린지 호일 하원의장, 자민당 당수이자 한영 친선의원협회장인 에드 데이비 하원의원, 데이비드 얼튼 상원의원 등 총 450여 명이 관계자가 참석했다.

17분 가량 진행된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약 30초간 박수를 보냈다. 연설 중간에는 한 차례 박수가 나왔다. 시작과 끝을 포함해 박수는 총 3번 나왔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