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첨단반도체 생산 확장 10% '무산', SK하이닉스가 삼성보다 뼈아프다

▲ 미국 상무부가 확정한 반도체지원법(CSA)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게 된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게 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중국 사업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2년부터 중국 투자를 축소하며 반도체 사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도 중국에 더 많은 투자를 진행해온 만큼 미국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미국 반도체지원법(CSA)의 투자 보조금을 받으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우려국(러시아, 이란, 북한 등)에서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확정하면서 한국기업의 걱정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가 내놓은 최종안을 살펴보면 첨단 반도체(D램 18나노 이하, 낸드 128단 이상)는 생산능력을 5% 이상, 레거시(구형) 반도체의 경우에는 10% 이상 늘릴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초부터 미국 상무부에 첨단반도체의 실질적인 확장 기준을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해왔으나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가드레일 초안에 있었던 ‘중대한 거래’와 관련한 상한선 10만 달러(약 1억3천만 원) 규정이 최종안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상무부와 협의하면 구축하고 있는 설비를 가드레일 제한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어 ‘최악’은 피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반도체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 첨단반도체 지속 생산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반도체보조금을 신청 작업을 완료했으며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보조금 신청 이전부터 ‘탈중국’을 준비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의 2022년 중국 투자액은 22억 달러 정도로 2021년보다 60%나 줄어들었다. 또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를 조성하고 20년 동안 3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국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전체 낸드의 36%를 생산하고 있지만 현상유지만 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셈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발을 빼는 것은 삼성전자보다 훨씬 어려울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의 39%, 중국 다롄에서 낸드플래시의 18%를 생산하고 있어 삼성전자보다 중국 공장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중국서 첨단반도체 생산 확장 10% '무산', SK하이닉스가 삼성보다 뼈아프다

▲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기반 조정을 위한 투자부담이 지속될 공산이 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게다가 그동안 중국에 투자한 비용도 더 많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20년까지 삼성전자가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170억6천만 달러(약 22조2천억 원) 수준인데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중국에 249억 달러(약 32조4천억 원)를 투자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2021년 말 인수한 인텔 낸드사업부(현재 솔리다임) 양수대금 88억4천만 달러(11조5천억 원)를 합치면 337억4천만 달러(약 44조 원)로, 삼성전자가 투자한 금액의 2배 수준에 이른다. 인텔 낸드사업부는 중국 다롄 공장이 주요 생산시설이었다.

이제는 SK하이닉스가 중국 사업을 축소하려면 천문학적인 매몰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가 중국의 지역적인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때늦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화웨이 5G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에 SK하이닉스 D램과 낸드가 모두 들어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했는데도 SK하이닉스 반도체가 중국으로 들어간 것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SK하이닉스와 직접거래 방식이 아닌 말레이시아와 같은 제3국을 경유해 화웨이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SK하이닉스가 최대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생산공정 기반을 조정하면서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일정 공정을 수행한 웨이퍼를 국내 공장으로 이송한 후 나머지 미세화 공정을 수행하는 식의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방식도 생산능력, 수익성 측면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SK하이닉스는 필요 미세화 공정을 국내 공장에서 보완하는 방식의 중국 공장 운영이 일정수준 가능하며 중국에서 생산하는 레거시(구세대) 반도체의 활용방안도 중요해질 것”이라며 “메모리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생산기반 조정을 위한 투자부담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