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프리즘] e스포츠의 경제학 - 롤에서는 지금 치열한 마케팅 전쟁 중

▲ 4월9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 LCK스프링 결승전 사진. 필자 직접 촬영.

[비즈니스포스트] “롤게임을 아시나요? 페이커를 아시나요? 롤드컵(혹은 월즈WORLDS)를 아시나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심리적 연령’을 확인하기 위해 곧잘 던지는 질문이다. ‘롤(LoL)’은 2009년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라는 게임의 약자. 젊은 층들의 열광적 지지 속에 성장한 e스포츠의 대표주자다.

페이커(Faker)는 축구의 메시에 빗대 ‘롤의 메시’라고 불리는 T1 구단 소속의 전설적인 선수. ESPN은 봉준호 감독과 손흥민, 방탄소년단, 페이커를 한국의 4대 엘리트라고 칭할 정도이다.

롤드컵은 매년 전세계 각 프로리그의 상위권팀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국제대회를 일컫는 말로 축구의 월드컵에 비유한 용어다. 정식 명칭은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이다.

고객이나 지인들과 자리에서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 던지는 질문인데 40대 이상의 사람들 중 3개를 모두 맞추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이 “롤게임 그거 우리 애들 좋아하던데”, “아~ 그 BTS만큼 유명하다는 페이커?” 정도의 반응들.

“그런데 페이커가 뭐하는 선수지?”하고 되물으면 “글쎄, 게이머 아닌가?” 정도의 대답이 돌아온다. 월즈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40대 중반을 넘어가면.

나 역시도 3년 전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서 TV리모콘을 돌리다 게임중계 방송을 보면 ‘저걸 누가 보냐, 별걸 다 중계하네’하고 코웃음 쳤다. 롤게임하러 PC방을 간다고 대학생 아들이 나가면 ‘차라리 축구나 야구를 하지’하며 속으로 쯧쯧했다.

그런 내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3년 전 국내의 유명 e스포츠 구단의 중국 마케팅을 맡게 되면서 부터다. 나는 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직업적 관심을 넘어 롤의 ‘찐팬’이 되었다. 야구나 축구 등 다른 스포츠 게임보다 훨씬 스피드하고 박진감이 있다.

요즘은 나의 응원팀인 디플러스 기아의 성적이 신통치 않아 속이 상하지만(많은 프로야구 팬들과 비스한 심정 일 듯하다), 이 팀의 경기는 가급적 빼먹지 않는다. 하이라이트라도 챙겨본다.

롤게임의 한국리그인 2023 LCK 스프링 결승전을 직관하러 갔는데 주변이 모두 20대여서 다소 머쓱하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가 20대의 마인드가 되어서 경기를 즐겼던 기억이 새롭다.

사족이 좀 길었지만 오늘은 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롤을 소개하고 싶다. 30대이든, 40대이든, 50대이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MZ세대(1980년부터 2000년대 중반에태어난 세대)를 대표하는 게임이라고 할만한 롤의 세계, 비즈니스적 관점에서의 롤의 경제학을 알 필요가 있다.

지금 국내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인 LCK에서는 3가지 전선에서 치열한 마케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선은 금융 대전, 2선은 통신 대전, 3선은 제약사 등 제3세력의 등장이다. 먼저 금융대전.

현재 LCK(Lol Champions Korea) 리그에는 10개의 프로팀이 있는데 보수적 이미지의 대명사인 은행들이 리그스폰서십부터 구단운영까지 적극적으로 e스포츠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19년부터 LCK의 타이틀 스폰서로 후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LCK경기와 경기장에 우리은행의 로고가 노출된다. 우리은행은 롤과 연계한 다양한 금융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게임단에 눈을 돌린 케이스. LoL 프로 구단인 리브샌드박스의 이름은 국민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브랜드인 ‘리브(Liiv)’와 구단명인 ‘샌드박스 게이밍’을 결합한 것.

신한은행은 DRX구단과 스폰서쉽을 맺고 있다. 지난해 DRX가 미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신데렐라와 같은 깜짝 성공스토리를 쓰며 우승을 차지하자 DRX선수들의 유니폼에 찍힌 신한은행의 로고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나은행은 페이커의 소속팀 T1과 스폰서십을 맺고 있어 국내 4대은행이 모두 롤에 진출했다.

DRX와 리브샌드박스의 경기를 언론에선 ‘뱅크 더비’라고 부르며 화제성을 높인다. 최근에는 제2금융권인 OK저축은행이 LoL구단인 ‘브리온’과 3년간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이 팀은 ‘OK저축은행브리온’이라는 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험사인 한화생명은 아예 LCK 구단 자체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권이 롤게임과 같은 e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의 마음을 잡겠다는 의도가 가장 클 것이다.

당장의 큰 고객이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주 고객층으로 성장할 MZ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 마케팅의 느낌이 강하다. 더구나 토스나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과 핀테크 업체들과의 경쟁심리 또는 위기감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다음은 통신대전.

6월24일 그랑서울 LCK아레나에서 열린 T1과 KT의 LCK서머 1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페이커가 이끄는 T1은 SKT와 미국 컴케스트가 합작한 구단으로 한국 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최고의 인기팀으로 군림해왔다. 당연히 그간 KT를 압도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달랐다. KT가 2021년 이후 처음으로 T1을 완파하자 언론들은 ‘KT 통신사 대전 승리’라는 제목으로 긴급히 보도했다.

3사 중 나머지 한 곳인 LG유플러스는 LCK 스프링 시즌 우승팀이자 전통의 명문구단으로 꼽히는 젠지 이스포츠와 불과 한 달 전에 스폰서십을 맺으며 롤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금융사들과 달리 통신사들은 MZ세대가 당장의 주 고객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롤시장에 뛰어들었고, 통 큰 투자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7월1일 기준으로 보면 젠지가 1위, KT가 2위, T1이 3위로 통신사 3사의 팀들이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 구단은 통신 대전의 승리는 물론  ‘최고’가 되기 위해 서로 간에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통신 3사의 희비가 엇갈리리라.

또 하나의 트렌드는 제약사들의 롤시장 진출이다.

젊은층과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 보이는 제약사들도 이미 롤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광동제약은 아프리카프릭스 선수단과 네이밍스폰 계약을 맺고 ‘광동프릭스’를 후원하고 있고, 코스닥 상장 제약기업인 휴온스는 DRX를 후원하고 있다. 또한 JW중외제약은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팀이 아닌 ‘LCK’리그의 스폰서이다.

한 의약전문지는 제약사가 롤 마케팅에 뛰어드는 이유 역시 ‘박카스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세대’에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전문의약품은 광고도 금지되어 있고, 제약사의 주 타깃은 MZ세대가 아닌 중장년, 노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제약사들의 문화도 보수적이다.

이 언론보도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은 최고경영진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MZ에게 자사브랜드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당장 큰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롤을 통해 브랜드 노출을 반복하여 젊은 층의 마음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광동프릭스로 치자면 ‘쌍화탕’의 광동이 아닌 ‘비타500’의 광동, 나아가 MZ와 함께 성장하는 광동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은 것이리라.
 
[비즈 프리즘] e스포츠의 경제학 - 롤에서는 지금 치열한 마케팅 전쟁 중

▲ 7월3일 기준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 서머 순위. <네이버 e스포츠 섹션 화면 갈무리>

사실 롤마케팅의 원조는 IT업계나 로지텍과 같은 게임 관련 장비 회사,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용품 회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MZ세대’에 접근하는 지름길로 인식되면서 산업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고 발로란트나 펍지 등 다른 유명 게임들도 e 스포츠로 성장하면서 영역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아직 e스포츠 마케팅은 갈 길이 멀다. 국내에선 기업들이 구단 후원이나 스폰서십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구단들이 선수들의 유니폼에 들어갈 기업의 로고 자리를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페이커를 제외한 스타 선수들을 활용한 광고도 많지 않고, 콜라보 제품들도 아직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국내의 유명선수들은 외국에서 더 스타 대접을 받고 콜라보 역시 해외에서 많다. 우리 회사의 경우 얼마전 중국 파트너사와 협력해 DRX구단의 베릴 선수와 함께 중국의 게임과 스마트폰사의 콜라보 상품의 마케팅 협업을 했다.

그는 담원기아와 DRX에서 롤드컵 우승 경력을 쌓은 스타이다. 최근 미국의 코카콜라사는 LoL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와 콜레보레이션 상품인 ‘코카콜라 제로 레전드’를 한정판으로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이 글을 읽는 20~30대 독자분들 중 상당수는 “다 아는 이야기들인데 새삼스럽게”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반대로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40대 이상의 분들에게는 ‘신기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동안 관심의 영역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롤이나 e스포츠에  ‘사업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기업들은 한국의 e스포츠 산업과 선수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나라 구단과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선 영국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의 4대리그, 야구는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세계를 호령하지만, 롤에선 한국과 중국이 양대 리그로 전세계를 지배한다. 리그와 시장은 중국이 더 크지만 성적은 백중세이고 거의 ‘종주국’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중국 등 해외리그에서의 한국 출신 게이머들이 활동하고 있다. 축구의 브라질과 같은 존재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한국의 유명 구단과 프로게이머들의 팬덤이 해외에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롤드컵의 경우 전세계 7400만 명이 동시 시청했을 정도이고 매월 1억 명 이상이 즐긴다.

나는 우리나라의 어떤 스포츠 종목도 이 같은 ‘글로벌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케팅적 관점에서 본다면 MZ세대와 글로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을 쉽게 열수 있을 것이다.

디플러스 기아의 네이밍 스폰서인 기아가 롤을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롤 유럽리그를 5년째 후원하며 프나틱, 로그 게이밍 등 유럽명문팀과 협업해 브랜드 홍보를 하고 있다.

나는 많은 국내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국내 구단과 프로게이머들을 마케팅에 활용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글로벌 홍보까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의 경기들이 글로벌하게 중계되고 전세계의 수많은 게임 인플루언서들이 개인방송을 하며 다시 2차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롤 게임 구단주와에게 왜 구단을 시작했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BTS 등 K-팝 아이들이 전세계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훔쳤다면 롤을 통해 나머지 절반인 젊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말이 절반 정도만 수긍이 간다. 내가 직관한 롤 게임의 경우 경기장인 롤파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기업의 경영자와 마케터들이 ‘e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전세계 남성과 여성들에게 우리 브랜드들을 ‘매혹’시켰으면 한다. 이태희 CUE코리아 대표

 
대학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