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국 반도체 규제 ‘역풍’ 세지나, 중국 추격에 ASML도 불안

▲ 중국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산업 규제를 계기로 반도체장비 자급체제를 강화하며 ASML을 위협할 가능성도 떠오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산업 규제를 계기로 핵심 생산장비 등의 자급체제 구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장비 핵심 기업인 ASML마저 중국의 추격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에 미칠 영향도 주목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27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에 ASML도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ASML은 7나노 이하 미세공정 시스템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EUV(극자외선)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해 공급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기업이 ASML의 장비 없이는 고객사의 모바일과 인공지능 반도체 등을 위탁생산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ASML은 최근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지니고 있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갈수록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근본적 원인은 중국 반도체산업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규제 때문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에 걸쳐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막기 위한 무역제재를 강화해 왔다.

트럼프 정부는 네덜란드를 압박해 ASML이 중국에 EUV장비를 공급할 수 없도록 했고 바이든 정부는 더 많은 반도체장비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일을 금지했다.

ASML은 이러한 규제로 반도체장비 주요 시장인 중국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단기적 실적 부진보다 중장기 성장 전망에 더 불안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수출 제한을 계기로 수입하기 어려워진 반도체 핵심 장비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연구개발 비용 등을 지원하며 자급체제 구축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 베닝크 ASML CEO는 블룸버그를 통해 미국의 중국 반도체산업 규제가 ‘실수’에 불과하다며 중국이 이를 계기로 자체 반도체장비 개발 및 생산에 촉매제를 얻게 됐다는 시각을 보였다.

그는 “중국의 반도체장비 자급체제 구축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현실화될 목표”라며 “규제가 강화될수록 중국의 노력도 그만큼 힘을 얻고 있다”고 바라봤다.

ASML의 핵심 경영진이 이처럼 중국의 기술 추격에 현실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밝힌 점은 중국 정부가 최근 반도체 공급망 투자를 대폭 확대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대중국 반도체 규제 ‘역풍’ 세지나, 중국 추격에 ASML도 불안

▲ EUV 반도체장비를 활용하는 삼성전자 화성 파운드리공장.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 주도로 설립된 반도체펀드는 미국 규제에 대응할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500억 위안(약 9조6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 국영 반도체기업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디커플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는 중국 반도체장비 관련 산업 발전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국 기업들이 생산한 반도체장비로 해외 수입 의존을 낮춰 완전한 자급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2021년 21% 수준이던 중국 반도체기업의 장비 자급률은 2022년 35%까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도 미국 규제 강화에 대응해 가파른 증가율을 보일 공산이 크다.

시장 조사기관 SEMI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장비 시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중국 장비업체들이 내수시장의 강력한 수요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은 ASML 전직 임직원을 통해 반도체장비와 관련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TSMC와 삼성전자 등 임직원을 영입해 기술 발전을 앞당긴 성과를 고려하면 반도체장비 분야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

다만 베닝크 CEO는 미국의 규제 조치가 향후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고객사 수주잔고가 연매출의 2배 수준으로 쌓여 있어 실질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규제에 대응한 중국의 반도체장비 자급체제 구축은 중장기적으로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EUV와 유사한 기술을 확보한다면 첨단 시스템반도체와 D램 등 분야에서 자국 기업을 통해 해외 경쟁사의 물량을 대체하는 데 충분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중국 반도체 규제에 따른 ‘역풍’은 한국 반도체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에 해당한다.

다만 블룸버그는 “중국이 이른 시일에 ASML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온다”며 “ASML이 앞세울 수 있는 전략은 기술 격차를 경쟁사들과 더 벌려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저 대슨 ASML CFO(최고재무책임자)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만약 경쟁사가 우리를 따라잡는다고 해도 그 때가 되면 ASML은 더욱 발전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