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중립산업법 '자충수' 되나, 에너지 안보 균열로 후폭풍 예상

▲ 탄소중립산업법이 유럽연합 넷제로 달성을 뒤로 미룰 수 있다는 의견이 주요 외신을 통해 제시됐다. 사진은 프란스 티머만(Frans Timmermans) EU 그린딜 집행부위원장이 16일(현지시각) 유럽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는 탄소중립산업법(NZIA, Net Zero Industry Act)이 오히려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해외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 수입을 제한하는 잘못된 방향의 규제가 유럽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미쳐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9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논평을 내고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한 유럽연합의 탄소중립산업법이 오히려 탄소중립 달성 시기를 늦추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탄소중립산업법은 2030년까지 유럽연합의 재생에너지 생산장비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시행되면 미국과 중국 등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달한 국가에서 유럽연합으로 발전장비를 수출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반면 유럽 내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장비에 투자하는 기업은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시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비슷한 방식이다.

블룸버그는 유럽연합의 이러한 정책이 시장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이 점유율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에서 사용하는 태양광 패널 가운데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물량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태양광 패널을 비롯한 대부분의 재생에너지 장비와 인프라는 중국 등 국가에서 수입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섣부른 수출입 규제로 자급체제 구축에 속도를 낸다면 이를 달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결국 화석연료에 다시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현재 전력 공급량도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전 세계에서 각각 13%, 3%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에너지 수급은 결국 근본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변수에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유럽연합은 여전히 대량의 천연가스 수입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를 겨냥한 수출입 규제가 확대되며 이른 시일에 공급이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필요한 장비와 인프라 수입 규제까지 이뤄진다면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 더 큰 균열이 발생하게 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이런 이유로 유럽의 정책이 에너지 자급체제 구축과 탄소중립 달성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과 소비자들이 모두 수출 장벽에 따른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책이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화석연료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추세가 다시 뚜렷해질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유럽연합은 미국과 중국 등 재생에너지 생산 분야에 첨단을 달리는 국가 기술을 수용하는 대신 과거의 국가 통제 경제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