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이어 TSMC도 독일 반도체공장 추진, 삼성전자 유럽 투자 자극하나

▲ 대만 TSMC가 인텔에 이어 독일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유럽 투자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TSMC 반도체 생산공장.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독일에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거액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수혜를 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도 주요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와 인텔의 투자에 자극을 받아 유럽 내 반도체공장 설립 계획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주요 협력사들과 독일 드레스덴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관계자를 인용해 TSMC가 내년 초 독일에 주요 경영진을 보내 현지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 및 인프라 구축 등에 관련해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TSMC 독일 반도체공장이 착공에 들어가는 시기는 2024년으로 예정됐다. 이미 독일 정부와 논의가 구체적 단계까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부터 TSMC를 비롯한 세계 대형 반도체기업에 현지 공장 투자를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인텔이 20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첨단 파운드리공장을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TSMC 역시 지난해 독일 정부의 요청을 받은 뒤 현지 반도체공장 설립 계획을 검토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 수급 차질 가능성 등이 배경으로 꼽혔다.

미국 정부가 최근 반도체 지원법 시행 계획을 확정하며 TSMC를 비롯한 반도체기업의 미국 내 공장 투자에 520억 달러(약 66조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TSMC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화답해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에 들이는 투자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3배 이상 늘렸다.

그럼에도 TSMC가 다시 태도를 바꿔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에서 최근 합의한 ‘유럽판 반도체 지원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주요 소속 국가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모두 430억 유로(약 58조 원)를 지원하는 반도체산업 육성 계획을 올해 초부터 논의해 왔다.

해당 법안은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 해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최근 회원국들이 모두 찬성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시행 절차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 국가들이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투자 유치 기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TSMC가 실제로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면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각각 수 조 원에 이르는 시설 투자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받게 될 수 있다.
 
인텔 이어 TSMC도 독일 반도체공장 추진, 삼성전자 유럽 투자 자극하나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인텔은 이미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하며 유럽연합과 독일 정부에서 모두 10조 원에 가까운 지원을 약속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TSMC가 독일에 신설하는 공장 투자 규모는 수조 원대로 예상되는 만큼 유럽연합 및 독일 정부의 지원 규모도 상당한 수준에 이를 공산이 크다.

인텔에 이어 TSMC도 유럽에 반도체공장 투자를 확정짓는다면 이들과 파운드리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도 크게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경쟁사들과 달리 유럽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지원금을 받아 반도체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 지배력도 강화할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유럽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고객사 기반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은 삼성전자가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인텔은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에 사실상 처음 진출하는 기업으로 아직 확실한 고객사를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대규모 공장 건설 뒤 가동률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TSMC도 이런 점을 고려해 독일에 첨단 반도체 미세공정 대신 구형 반도체에 주로 쓰이는 22~28나노급 반도체 생산라인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공정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유럽 내 자동차 고객사들에 잠재적 수요가 크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10나노 이하 첨단 공정 반도체에 생산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만큼 TSMC의 뒤를 따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유럽에 반도체공장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면 결국 유럽연합 및 소속 국가 차원의 지원 이외에도 파운드리 시장 상황에 대한 확신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도체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반면 공장을 건설하는 데는 수 년의 시간이 걸린다”며 “반도체기업들이 수요 대응을 위한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