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반도체 시설투자 ‘1보 후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추월 노린다

▲ 미국 마이크론이 내년 반도체 시설투자를 축소하는 대신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 및 생산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이크론의 미국 뉴욕 반도체공장 예상 조감도.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메모리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이 업황 악화에 대응해 내년 시설투자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연구개발 및 차세대 반도체공정 투자는 공격적으로 늘린다.

경쟁사인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물량 경쟁에서 당장 승산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해 미세공정 D램과 3D낸드 기술 선두를 굳히는 데 집중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6일 아시아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내년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다양한 악재가 발생하면서 반도체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택근무 감소에 따른 IT기기 수요 둔화와 미국 정부 규제에 따른 중국의 공급망 차질, 인플레이션 심화로 발생한 소비 위축 등이 주요 원인으로 제시됐다.

수미트 사다나 마이크론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아시아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반도체 업황 악화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수요와 공급 균형 회복이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를 경쟁사로 두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업황이 나빠지면 시장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마이크론 등 기업이 가격 방어 능력을 갖추기 어려워져 실적에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사다나 CBO는 마이크론이 시장 변화에 대응해 2023년 시설 투자 비용을 80억 달러(약 10조5천억 원) 수준까지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투자 규모와 비교해 약 33% 줄어드는 것이다.

그는 마이크론의 반도체 고객사들이 재고 조정에 들어간 만큼 반도체업황이 정상화하려면 최소한 수 개월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마이크론의 시설 투자 감축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이 해소되는 시점이 더욱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론은 앞으로 10년 동안 벌일 중장기 투자에 오히려 더 공격적 계획을 제시했다. 해당 기간에 예정된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비용은 모두 1500억 달러(약 197조 원)에 이른다.

마이크론이 계획하고 있는 투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최근 발표한 미국 뉴욕주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이다. 해당 공장에는 모두 1천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된다.

연구개발 투자 비용은 마이크론의 D램 미세공정 및 3D낸드 적층기술 발전에 주로 쓰인다.

마이크론은 1β(베타)급 미세공정 D램 및 232단 3D낸드 메모리반도체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당 반도체는 모두 고객사에 샘플 공급 또는 양산이 시작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르면 내년부터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를 양산하며 마이크론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마이크론이 한국 반도체기업보다 시장 점유율에서 뒤처지고 있지만 기술력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 나가면서 업계의 기술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크론 반도체 시설투자 ‘1보 후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추월 노린다

▲ 마이크론의 232단 3D낸드 메모리반도체 홍보용 이미지.

사다나 CBO는 “마이크론은 경쟁사보다 D램 및 낸드플래시 신기술 적용에 최소 수 개월 앞서나가고 있다”며 “성능과 전력효율 모두 우수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크론이 내년 시설투자 계획을 축소했지만 중장기 투자 계획은 공격적으로 잡아두고 있는 점도 장기간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데 낙관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최근의 투자 전략 변화는 당분간 실적 위축을 감수하고 미래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마이크론이 우위를 확보하려는 목표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되는 대목이다.

사다나 CBO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이 마이크론의 이런 계획에 힘을 실어줬다며 중장기 시설 투자에 충분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론에 적극적 지원 의지를 앞세워 대규모 투자 결정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론이 뉴욕주에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내놓은 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세계 메모리시장에서 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한국 반도체기업을 겨냥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자연히 미국 정부가 앞으로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론이 더 큰 수혜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마이크론은 2030년까지 D램 및 낸드플래시 연간 매출을 3300억 달러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이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과 비교해 약 2배로 늘어나는 수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