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안전불감증' 지적, 외신기자 “아무도 군중 통제 안 해"

▲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 골목이 10월30일 경찰의 출입 통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인파가 몰려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고와 관련해 주요 외신들이 관계당국의 통제 부족 등 미흡한 사전 조치를 원인으로 꼽았다.

영국 가디언은 30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9일 밤 현장에 있던 소속 기자의 기사를 통해 “즐거운 파티가 되어야 할 핼러윈데이가 끔찍한 공포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의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29일 오후 7시경 이태원에서 친구들과 만났는데 이미 주변 지하철역에서 차량이 정차할 때마다 사람들이 밀려나올 정도로 상당한 인파가 몰렸다고 전했다.

그는 지하철역에서 직원들이 군중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봤지만 이미 내부에서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고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온 뒤에도 이태원 일대 대로에서 도보 1분 정도에 불과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 10분 넘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해당 기자는 “도로에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몰리는 인파 속에서 아무도 군중을 통제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태원에 있는 클럽 등 사업장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경우는 매우 흔하지만 이 날에는 유독 바깥의 도로 전체에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해당 기자는 10시30분경 인파를 피해 지하철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한 뒤 도로에 나왔다. 그 때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듣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가 목격한 장면은 사고 현장 인근인 해밀턴호텔 앞에 몇 대의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가 도착했고 경찰관이 차량 위에 올라가 사람들을 향해 현장을 떠나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현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주변이 시끄러워 무슨 일이 벌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고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나오면서 계속해 혼돈이 빚어졌다.

이후 더 많은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해 군중을 해산하려 시도했고 휴대폰에도 해밀턴호텔 주변을 피하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 메시지가 울렸다.

그는 해당 시점까지 사고와 관련한 사회관계망서비스 콘텐츠나 뉴스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제서야 수많은 부상자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응급구조대원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규모 인파에 대한 사전 통제와 사건이 발생한 뒤 현장 통제, 안내 등에 미흡한 부분이 있어 사건 현장에서 더욱 혼란이 커졌다는 점을 언급한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이태원 사고가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재앙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며 이를 계기로 관계당국의 안전 기준과 관련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과거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원인이 미흡한 안전 수칙과 긴급상황 대응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 한 승무원 등으로 지적됐는데 이태원 사고는 정부의 안전 불감증이 여전하다는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원의 한 매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뒤 일생에서 가장 많은 인파를 보게 됐는데 경찰관은 거의 보이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대규모 군중 통제와 관련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노먼 배들러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이태원 사고 현장과 같은 대규모 인파에서는 가만히 서 있어도 생명의 위혐을 받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제한된 공간에 인구 밀집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질식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군중 안전관리 전문가인 영국 서폴크대 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대규모 인파에서는 살짝 미는 동작도 다수의 사람을 위협하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전했다.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의 인파에서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대형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해당 전문가는 한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오랜 기간 이어졌다가 마침내 해소돼 더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지역을 방문하게 됐다는 점도 사고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바라봤다.

노먼 배들러 교수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완화 이후 인파가 많이 몰리는 현상이 이전보다 더 일반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따라서 대규모 인파가 몰릴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군중 통제와 관련한 훈련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이를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다.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충분한 대비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군중과 관련해 연구하는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고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