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 원 과금은 무과금(게임에 전혀 돈을 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니지M의 사용자들이 리니지M을 비판하며 자조적으로 하는 농담이다. 이 농담에는 매우 낮은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리니지M의 과금시스템과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큰 금액을 내야 하는 점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 
  
게임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리니지M도 걸면 걸리게 된다

▲ 한국게임산업협회 로고 이미지.


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에는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자리잡은 확률형 아이템의 정의 변경 관련 내용만 있는 게 아니라 국내 게임사들의 영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바로 제3조1항2호와 3항이다. 

개정안의 제3조1항2호은 ‘우연적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것으로서 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것’은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제3조 3항에서는 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것의 예시로 ‘게임 이용에 사회통념상 과다한 비용이 소요되는지 여부’와 ‘게임 이용을 통해 획득하는 유·무형의 결과물이 환전되나 환전이 용이한지 여부’를 들고 있다.

◆ ‘초고액 과금’, 리니지M은 게임일까 아닐까

문제의 개정안 조항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게임 이용에 너무 과다한 돈을 사용하거나, 게임 플레이 도중 얻은 게임 아이템 등을 현금으로 사고팔기 쉬우면 이 법의 적용 대상인 ‘게임’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당장 리니지M이 문제가 된다. 

리니지M은 2017년 6월 출시된 이후 줄곧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 순위 1위, 2위를 놓치지 않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제대로 즐기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리니지M을 즐기기 위해 억 단위의 돈을 소비한 게임 이용자들의 이야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또한 리니지M의 개발사인 엔씨소프트가 공식적으로 현금거래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웹사이트를 통해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지기도 한다. 

결국 리니지M으로 대표되는 국내 모바일게임들이 개정되는 게임법 제3조1항과 3항에 따라 게임법에서 규정하는 ‘게임’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게임이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게임을 국내에서 서비스할 수 없게 된다.
게임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리니지M도 걸면 걸리게 된다

▲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 제 31조1항과 3항의 내용.



게임법 개정안 제31조를 보면 제3조1항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게임’은 게임위원회가 게임의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있다. 이미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 역시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면 ‘지체 없이’ 등급분류를 취소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법 제68조1항5호는 “누구든지 등급분류가 거부 또는 취소된 게임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니지M을 예로 들자면, 게임위원회가 리니지M을 두고 ‘사회통념상 과다한 비용이 소요된다’거나 ‘게임 아이템의 환전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리니지M은 이 법에서 규정하는 게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리니지M의 등급분류가 취소된다. 결론적으로 리니지M의 국내 서비스가 금지된다는 말이다. 

◆ 게임이 아닌 것과 게임인 것을 어떻게 구별할까, 기준의 모호성도 논란

물론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바로 리니지M을 비롯한 여러 모바일게임들의 등급분류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통념상’, ‘환전이 용이한지’ 등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현재 리니지M을 비롯해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대부분의 모바일게임은 프리 투 플레이(F2P) 방식으로 운영된다. 게임을 즐기는 것 자체는 무료지만 게임 속 요소 가운데 일부를 현금을 내고 구매해야하는 방식이다. 

게임사들은 게임 내 유료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즉 ‘현질’은 게임을 좀 더 쉽게 즐기기 위한 게이머의 선택일 뿐이이지 게임을 즐기는 데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임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리니지M도 걸면 걸리게 된다

▲ 게임에 많은 돈을 소비한 이용자의 인터뷰. <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또한 모바일게임에 수 억 원의 돈을 쓰는 소위 ‘핵과금러’도 존재하는 반면 돈을 아예 쓰지 않는 ‘무과금러’, 돈을 쓰더라도 조금만 쓰는 ‘소과금러’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기준을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2020년 1월 한 달 동안 리니지M의 사용자 1인당 과금액은 27만 원 수준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사회 통념상 과다한지 여부’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환전의 용이함도 마찬가지다. 현재 대부분의 모바일게임 아이템 현금거래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먼저 현금을 주고받은 뒤 게임 내에서 서로의 캐릭터가 만나 아이템을 주고받거나, 게임 내에 존재하는 경매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거래되는데 이런 방식이 ‘용이하다’라고 볼 수 있을지 여부도 해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게임회사들은 이런 기준의 모호함을 두고 “정확히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지 알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제출한 ‘게임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에서 “개정안의 제3조 적용 제외와 관련된 사회통념상 과다, 용이 등의 표현이 모호해 수범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저해한다”면서 개정안 수정을 요청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국내 대부분의 게임회사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협회다. 

게임회사들은 이 조항 뿐 아니라 사업자의 의무를 강제하는 과도한 규제 조항의 신설, 이행강제금 조항, 영화산업진흥법과 달리 청소년을 만19세 이하로 규정하는 조항 등을 두고 다른 산업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이 개정안을 두고 “산업 진흥보다는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항이 다수 추가됐다”고 비판했다.

◆ 범죄를 다룬 영화와 범죄를 다룬 게임의 차이, 여전히 ‘미성숙한 문화’ 취급 받는 게임산업

한쪽에서는 사업으로서 게임을 제쳐놓고서라도 게임을 여전히 ‘미숙한 문화’로 취급하는 시선이 개정안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비판을 제기하는 쪽은 제68조2항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이 조항은 △‘반국가적 행동을 묘사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국가의 정체성을 현저히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것’ △‘존비속을 향한 폭행·살인 등 가족윤리의 훼손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것’ 등에 해당하는 게임을 제작, 배급 및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항은 개정 전 게임법에도 포함된 조항이었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반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등 다른 문화예술과 관련된 법률에는 이와 같은 조항을 찾아보기 힘들다. 게임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 문화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임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리니지M도 걸면 걸리게 된다

▲ 영화 범죄도시(왼쪽)와 게임 뉴단간론파V3 이미지.


예를 들어 2017년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는 서울에서 발생한 중국 조선족들의 범죄를 다룬 영화다.

잔인한 범죄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커다란 인기를 끌며 7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게임법 개정안 68조2항에 따르면 범죄도시와 같은 내용의 게임은 국내에서 서비스할 수 없다. 범죄 등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해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일본 게임사 소니인터렉티브엔터테인먼트(SIE)가 개발한 ‘뉴단간론파V3’가 반사회적 묘사를 담고 있다며 등급분류를 거부해 이 게임의 국내 출시가 무산된 사례도 있다. 

뉴단간론파V3는 고등학생들이 모종의 장소에 감금된 상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게임의 출시 예정일은 범죄도시 개봉일보다 한 달 앞선 2017년 9월이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정일 소설가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대법원에서 음란물 유죄 판결을 받은 뒤 20년이 흐르고 영화나 문학 쪽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지만 게임에서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며 “문화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게임이 아직 미숙한 문화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