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오너들이 자식뿐 아니라 조카들에게도 지분을 나눠주고 있다.

세금 부담을 줄이는 분산증여라는 시각도 있다. 경영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족들 사이 우애를 다지면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해 나가려는 수단으로도 읽힌다.
 
대기업 오너들이 조카들에게도 지분을 넘겨주는 까닭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왼쪽)과 구자엽 LS전선 회장.


23일 재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대기업 오너들은 자녀들에게 지분을 상속하거나 증여하지만 조카들에게 지분을 넘기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조카들에게 주는 지분은 단순한 계열사 지분이 아니라 지주회사 등 그룹의 지배구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회사의 지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과 구자엽 LS전선 회장은 21일 조카인 구본혁 LS니꼬동제련 부사장에게 4만5천 주, 구윤희씨에게 5만 주의 LS 주식을 증여했다. 

구본혁 부사장과 구윤희씨는 2014년 별세한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자녀다. 구자명 전 회장은 구자홍·구자엽 회장의 동생이다. 구자홍·구자엽 회장은 구본혁 부사장의 딸 구소영과 구다영에게도 2만7500주씩 나눠줬다.

구자홍·구자엽 회장은 이전에도 조카들에게 주식을 증여한 적이 있다. 2015년 구자명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예스코 지분을 조카들이 처분하자 다시 이를 사들여서 2017년 조카에게 증여했다.

구자명 전 회장이 작고한 뒤 구자홍·구자엽 회장이 조카들에게 증여한 지분의 가치는 2017년 81억 원, 이번에는 69억 원으로 모두 150억 원 규모다.

현행법상 상속 및 증여 규모가 많아지면 세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최대주주의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할증도 적용된다. 

이를 고려해 주식을 조카에게 넘기는 행위를 두고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세금 부담을 낮추는 일종의 분산 증여로 보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렇게 흩어진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때는 하나로 뭉쳐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기업 오너가 지분을 조카들에게 증여하면서 ‘가족경영’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곳이 적지 않은 이유다.
 
대기업 오너들이 조카들에게도 지분을 넘겨주는 까닭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8년 11월 친족들에게 9228억 원 규모의 주식을 증여했다. 여기에는 최 회장의 오촌조카인 최성환 SK 상무, 최영근 전 SKD&D 매니저 등이 포함됐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최종관 전 SKC 부회장과 최종욱 전 SKM 회장의 가족들에게 주식을 나눠줬다. 사촌과 오촌조카들에게 SK 주식 13만3332주를 증여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의 오촌조카들이 받은 지분규모만 4323억 원에 이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2015년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자녀들에게 증여하면서 동생인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의 자녀 이소혜씨와 이호준씨에게도 일부를 나눠줬다.

이 회장은 장남 이선호씨가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때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지는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1.35% 전량을 처분하면서 조카 두 명에게도 각각 1.14%씩을 넘겨줬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2014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들 구광모 당시 LG 상무에게 LG 주식 190만 주를 증여한 일도 있다.

다만 구광모 상무는 구본능 회장의 친자로 구본무 회장에게 양자 입적됐기 때문에 단순히 조카에게 지분을 증여한 사례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