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한국 조선업계가 '빅2'로 재편되면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과 격차를 벌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경쟁국들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가 변수로 지목된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인수 놓고 중국 일본 설득 가능할까

▲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3월8일 KDB산업은행과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면서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이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회사의 인수가 성사되면 글로벌 조선시장의 20% 이상을 지배하는 거대 괴수가 탄생하게 된다”며 “중국과 일본의 경쟁 조선소들은 앞으로 경쟁이 힘겨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각각 1, 2위로 합산 수주잔량이 1698만CGT(표준환산톤수)에 이른다. 글로벌 3위인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의 수주잔량(525만CGT)보다 3배 이상이나 많다.

더욱이 중국, 일본 조선업계는 이미 한국 조선사들과의 기술 경쟁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3사는 고부가가치 선종인 LNG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심으로 수주를 확대 중이지만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은 여전히 건조가격이 싼 벌크선이 주력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가 2월 집계한 국가별 수주잔고를 보면 DWT(재화중량톤수) 기준으로 한국 조선사들은 LNG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 비중이 총 48.2%를 차지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수주잔고에서 벌크선 비중이 각각 62.1%, 51.3%로 가장 많았다.

비싸고 수익성이 좋은 일감은 전부 한국에 몰리고 있는 셈이다.

양현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조선소들은 자국 발주를 제외하면 수주가 불가능한 수준이라 경쟁력을 상실했다”며 “중국 조선소들 역시 상위 업체들을 제외하면 RG(선수금환급보증)를 받는 게 불가능한 상황인 데다 해외 선주들 사이에서 중국 조선소들을 상대로 강한 불신과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유럽해상보험협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건조된 4426척의 선박에 관한 보험금 청구비율을 조사한 결과 중국 조선소가 건조한 배는 89%로 압도적 비율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통해 수주 경쟁력을 더 높이게 되는 일이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인수 추진의 이유로 한국 조선산업의 재건을 들기도 했다.

한영석 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 사장은 담화문을 통해 "국내에서 조선 '빅3'가 경쟁하는 동안 중국과 일본 업체들은 통합과 합병을 통해 경쟁력 확보에 집중했다"며 "이번 인수 추진은 한국 조선의 경쟁력 회복과 재도약을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인수가 이뤄지면 투자 효율성이 대폭 개선되는 데다 이렇게 아낀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해 기술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국내 조선3사는 기술력이 모두 비슷해 이번 인수로 기술 시너지를 얼마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조선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빅2로 재편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은 조선인으로서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현대중공업이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해외 경쟁국들의 기업결합 심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해야만 한다. 이 가운데 한 나라에서만 반대해도 인수합병은 무산될 수 있다.

일본은 이미 한국 정부의 조선산업 지원을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추진하는 등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인수 추진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중국에서도 국영조선소인 중국선박공업(CSSC)과 중국선박중공업(CSIC)이 인수합병을 계획 중이다보니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반대표를 던지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조선소들의 인수합병과 현대중공업의 이번 인수는 사안이 다르다는 반박도 나온다. 중국 조선사들은 중국 내부 수주 비중이 높은 만큼 합병을 해도 글로벌 조선시황에 영향이 크지 않지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LNG운반선 합산 수주잔고는 이 선종의 글로벌 수주잔량에서 59.5%를 차지한다. 두 회사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합산 수주잔고 역시 세계 수주잔량의 60.2% 수준이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독과점 문제는 전체 선박의 점유율이 아니라 선종별 점유율로 따져야 한다"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세계무역기구의 독과점 심사, 경쟁국가들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탈리아 크루즈조선소 핀칸티에리와 STX프랑스의 사례를 봐도 이들은 독과점 문제로 합병작업이 미뤄지고 있다. 이 두 회사가 합병하면 크루즈선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는 이유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탄원서가 접수되면서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조선해운 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인수 추진을 통해 경쟁국들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건틀렛(장갑)을 던졌다"며 "그러나 인수가 성공할지 여부는 시황뿐 아니라 경쟁국들의 반응에 달렸다"고 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