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는 왜 팀 쿡을 선택했을까  
▲ 팀 쿡과 스티브 잡스


팀 쿡은 하루아침에 스티브 잡스의 후임으로 뽑힌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는 잡스가 췌장암 수술을 받은 2004년과 간이식수술을 받은 2009년, 마지막으로 병가를 냈던 2011년 모두 세차례에 걸쳐 CEO 대행으로 잡스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포스트 잡스’를 얘기할 때마다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되던 ‘준비된’ 후계자였다.


팀 쿡은 잡스의 후임으로 거론될 때마다 “잡스를 대신할 만한 인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퇴직한 후에도 잡스는 70대 후반까지 애플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말과 달리 팀 쿡은 2011년 애플의 CEO에 올랐다. 1998년 그가 애플에 들어온 지 13년 만이었다.


잡스는 팀 쿡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애플을 안정적으로 끌고 나갈 적격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팀 쿡의 ‘관리자’ 능력을 높이 샀다.


팀 쿡은 특히 공급망관리(SCM)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잡스는 팀 쿡의 그런 능력 때문에 그를 애플로 영입했고 병가를 냈을 때도 회사를 맡겼다. 그리고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주력제품의 방향이 어느 정도 잡혀 안정적 경영이 필요한 무렵 그에게 모든 걸 넘겼다.


전문가들은 팀 쿡이 후임자로 지목되자 “잡스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 딱 맞는 인물은 아닐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는 애플의 모든 요소를 함께 가지고 갈 최고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 잡스가 팀 쿡을 선택한 이유


팀 쿡은 1998년 잡스에 의해 영입됐다. 훗날 잡스는 팀 쿡을 만났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한 지 오래지 않아 나는 그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안다고 신뢰하게 되었다.”


팀 쿡은 애플에 입사해 가장 먼저 재고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애플 제품의 경우 재고 가치가 1주일마다 1~2%씩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팀 쿡은 당시 “낙농업처럼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며 “만약 우유가 유통기한을 다한다면 바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팀 쿡은 애플이 생산에서 손을 떼고 외부업체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효율적 생산공장을 과감히 닫았다. 이후 폭스콘과 같은 아시아의 외주업체들과 손을 잡고 90일이 넘었던 애플의 재고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팀 쿡은 아이팟을 생산할 때도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메모리 업체에 12억5천만 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고 대량의 메모리를 확보했다. 대량의 부품을 선금으로 지불하면서 애플은 더 싼 값에 부품을 공급받게 됐고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이런 방식은 지금까지도 애플의 가장 중요한 생산방식으로 꼽힌다.


팀 쿡은 2007년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 올랐다. 그는 COO로서 공급망관리, 서비스 및 지원 등을 포함해 애플의 판매와 운영을 책임졌다.

팀 쿡은 잡스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경영을 맡았으며 그 일을 무난히 소화해내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2009년 6개월 동안 CEO를 대행했을 때 애플의 주가가 무려 60%나 상승했다. 그가 CEO 대행으로 있는 동안 애플의 신제품 출시와 판매는 잡스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팀 쿡은 잡스와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다. 제품개발과 광고마케팅 등 애플의 화려함이 잡스의 몫이었다면 애플의 표나지 않는 살림살이는 팀 쿡이 맡았다.


이런 정반대의 성격과 성향이 오히려 조화를 만들어냈다. 팀 쿡은 제조나 재고관리 등 성가신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잡스가 디자인과 제품개발 등 중요한 일들에 마음 놓고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잡스와 팀 쿡은 13년 동안 애플을 함께 이끌며 애플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잡스의 상상력이 애플제품을 만들었다면 팀 쿡의 운영능력은 애플을 분기매출 267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 쿡은 오반대학교를 졸업한 후 IBM에 입사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듀크대학의 경영대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IBM에서 12년 동안 제조와 유통부분을 담당했고 이후 소매업체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컴퓨터 제조업체인 컴팩으로 이직했다. 컴팩에서 부사장으로 있던 그는 6개월 만에 잡스를 만나 애플에 합류했다.


  잡스는 왜 팀 쿡을 선택했을까  
▲ 팀 쿡은 2014년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모바일 아이폰 출시 행사장에 직접 참석했다.<뉴시스>


◆ 잡스와 상반되는 팀 쿡의 리더십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2008년 팀 쿡을 ‘일중독자’(workaholic)로 표현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이메일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하고 새벽에 전화회의를 할 만큼 일에 열성적이라는 것이다.


팀 쿡은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고 회의를 주도하면서 감정을 거리낌없이 표현하는 잡스와 대조적이다. 그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협력사 및 경쟁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10년 LG디스플레이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한 적도 있다.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는 이메일과 타운홀 미팅을 통해 더 자주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주요 임원들과 점심을 먹던 잡스와 달리 팀 쿡은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알지 못하는 직원들에게도 같이 식사할 것을 요청한다고 한다.

이런 개방적인 모습은 바깥일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신제품에 대한 거의 모든 사항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던 잡스 시절과 달리 지금은 신제품 출시 이전에 대부분의 내용이 알려진다. 이 때문에 '출시될 것 같던 제품'이 그대로 출시돼 신제품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다.


팀 쿡의 리더십에 대해 포춘은 2012년 "팀 쿡도 존경을 받고 있지만 숭배까지는 아니다"라며 "애플이 새로운 시대로, 복잡한 단계로 올라서고 있는 지금 하느님과 같은 CEO까지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춘은 "애플은 그저 맡은 바 임무를 해낼 줄 아는 인간 CEO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팀 쿡은 운동광으로도 유명하다. 운동 중에서 사이클링(자전거 타기)을 가장 즐긴다. 애플 임직원 회의에서 랜스 암스트롱의 사례를 자주 입에 올릴 만큼 사이클 선수인 랜스 암스트롱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팀 쿡은 지난 3월 포춘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33위로 뽑혔다. 포춘은 팀 쿡에 대해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강인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포춘은 “레티나 디스플레이, 새로운 OS, 아이폰5와 같은 신제품으로 선두를 지키고 있는 점과 애플 소매점 운영을 위해 버버리의 CEO 안젤라 아렌츠를 영입하는 등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