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 속까지 침투한 미세 플라스틱, 각국 규제 강화에도 한국은 ‘아직’

▲ 플라스틱 쓰레기 등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오염을 넘어 인간 등 생물체 체내 축적까지 생태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사진은 바다를 가득 메운 플라스틱 쓰레기의 모습. < Flickr >

[비즈니스포스트]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는 물론 사람의 몸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막기 위한 규제가 본격적으로 마련되고 있지만 한국은 비교적 뒤쳐져 있는 모양새다.

12일 국제학술지인 ‘해양오염학회지’ 4월호에 게재된 ‘한국에 좌초한 대형해양생물 체내 미세플라스틱’ 논문을 보면 한국 해변에서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죽은 채로 발견된 대형 해양동물 12마리를 해부하자 미세플라스틱 1902개가 발견됐다.

한국의 바다도 미세플라스틱 문제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미세플라스틱은 의도적으로 제조됐거나 기존 플라스틱 제품이 버려진 뒤 풍화작용 등으로 조각나면서 크기가 5㎜(밀리미터) 미만으로 작아진, 물에 녹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을 뜻한다.

폐어구와 같이 바다에 직접 버려지는 폐기물은 물론 육지에서 배출돼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 쓰레기 등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의 미세플라스틱 양을 늘리는 요인이다.

특히 의류를 세탁기로 세탁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환경오염으로 주범으로 꼽힌다. 

나아가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작아진 미세플라스틱은 각종 생물체 내에 축적되면서 이를 섭취하는 인간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컵, 플라스틱 용기와 식수 및 음식 섭취에 쓰이는 플라스틱 제품은 물론 화장품과 같은 일상용품 역시 인체의 체내에 미세플라스틱을 축적시키는 요인이다.

국제학술지인 ‘종합환경과학’ 4월호에는 사람의 고환과 정액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담긴 중국 베이징대 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체내의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의 내분비 시스템을 교란하고 남성의 생식기능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고환 위축, 정액의 양 및 질 감소 등 결과가 담긴 수컷 쥐 실험 결과를 함께 제시했다.

올해 3월에는 미국 럿거스대 공중보건대학(SPH) 연구팀이 동물실험을 통해 모체 쥐 체내의 미세플라스틱이 태반을 거쳐 새끼 쥐에게 전달되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한국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늘면서 미세플라스틱에 따른 위험 역시 빠르게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과 올해 3월 내놓은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2017년 798만1천 톤에서 2021년 1193만2천 톤으로 4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했다.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은 5일 열린 ‘제1회 해양수산 과학기술 혁신포럼’에서 “동아시아 및 북태평양 지역은 2066년께에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2016년 대비 4배 증가하고, 2100년께는 전 세계 해양 오염이 2018년 대비 50배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재까지 한국 연안의 미세플라스틱 위험 농도는 안전한 수준이지만 2100년쯤엔 한국 연안 82% 정도의 지역이 미세플라스틱 안전 농도를 넘을 것이다”고 우려했다.

미세플라스틱 관련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대응을 위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2025년 1월부터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막는 필터의 장착을 의무화하는 등 유럽을 중심으로 미세플라스틱 관련 규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유럽화학물질청(ECHA)를 중심으로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막기 위한 표준, 인증 마련 등 구체적 수준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2010년대부터 화장품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에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해 왔으며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필터를 의무화하도록 법안 등이 추진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7년 화장품에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규제가 마련된 정도다. 다른 제품군이나 비의도적으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에 대응하는 등 그밖의 영역에서 별다른 규제는 마련돼 있지 않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미세플라스틱 관련한 포괄적 규제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 국회의 움직임은 다소 굼뜬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2022년 12월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부처 협의체’를 출범하기는 했으나 아직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는 않은 상태다.

국회에서는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전기 및 전자제품, 타이어에서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막기 위해 제조업자, 수입업자에게 재질, 구조개선 등 지침을 준수하도록 하는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 의원은 법안 발의 당시 “해외에서는 제품 사용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입법 노력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 산업계도 미세플라스틱이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제품의 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입법취지를 밝힌 바 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