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중국발 이커머스 시장 격변(하) 가격 경쟁력보다 소비자 신뢰 확보가 관건

▲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가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지적재산권 및 소비자 보호 강화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 신뢰를 다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폭발하며 중국 이커머스 이용자가 크게 늘었지만 신뢰를 얻지 못하면 ‘록인효과’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5일 유통업계에서는 중국 이커머스가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 이용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고 분위기를 탄 만큼 앞으로도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다른 시각도 나온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근거로 애플리케이션(앱) 사용량만을 기준으로 한 자료가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준으로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앱 순위에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사용자 수 증가폭은 각각 371만 명, 354만 명이었다. 이는 기업공개를 준비하며 기업가치 10조 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내 핀테크기업 토스의 사용자 수 증가폭 349만 명을 앞서는 것이다.

두 앱은 종합몰 앱 사용자 수 순위에서도 선전했다.

쿠팡과 11번가, G마켓 등 국내 종합몰 사용자 수 상위 10개 앱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사용률은 각각 66.6%, 68.7%로 쿠팡(91.0%) 다음이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세대별 종합몰 앱 순위에서도 20대 이하에서 3위, 30대 이상에서 모두 4위에 올랐을 정도로 국내 소비자에게 자주 선택받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이커머스 가운데는 모바일앱 주문보다 PC 주문이 더 많은 곳들도 있다”며 “실제로 한 이커머스가 와이즈앱이 아닌 다른 분석서비스 업체에 자체 외뢰한 자료에 따르면 PC와 모바일앱 사용자를 기준으로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주요 이커머스들보다 순위가 많이 낮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거래액(GMV)까지 비교한다면 중국 이커머스와 국내 이커머스의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거래액을 공개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거래액이 공개되면 그 규모는 국내 이커머스들과 비교가 안 될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소비자들이 중국 이커머스에서 비싸지 않은 공산품들을 주로 구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신뢰’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알리익스프레스가 국내에서 지속 가능하려면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중국 이커머스들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이커머스들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 등만 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네이버 카페 게시판에는 “전동분무기를 실제로 사용한지 10번도 안됐는데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나고 물이 안 나온다” “휴대용 믹서기가 작동을 안 해서 분해해 봤더니 모터 부문에 믹서기에 갈았던 내용물이 들어있다”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한다.

알리익스프레스 가품 논란 관련 기사들에는 “어차피 짝퉁인거 알고 사는 것 아니냐”는 댓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이 교수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인기를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경기 불황 때문으로 진단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 저렴하고 최근 이용자가 늘어나다 보니 재미로 몇 번씩 사보는 단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 소득은 바로 떨어지지만 소비 수준은 바로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며 “소비자들은 현재 소비 수준에 대해 적응해가고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 시기를 지나면서 물가 수준에 적응하고 가처분소득이나 가치소비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들이 적응하는 시기가 지나고 각자의 기준이 생기면 결국에는 제품의 품질과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은 품질 대비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의 적응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중국 이커머스가 가품 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때는 지금처럼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플랫폼이든 직구 플랫폼이든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신뢰다. 소비자들이 품질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믿을 만한 플랫폼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12월 지적재산권 및 소비자 보호 강화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클린’을 내놨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유통 전에 가품으로 의심되는 상품이 있으면 선제적 대응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신년기획] 중국발 이커머스 시장 격변(하) 가격 경쟁력보다 소비자 신뢰 확보가 관건

▲ 알리익스프레스는 명품 브랜드에 대한 검색 자체를 막았다. <알리익스프레스 애플리케이션 화면 갈무리>


인공지능(AI)에 기반한 검증 시스템도 실시하기로 했다. 인공지능으로 텍스트 뿐만 아니라 제품 사진, 가격 비교 등 복합적 알고리즘을 통해 가품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검증 시스템이 작동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많다. 지금도 ‘구찌’, ‘프라다’, ‘샤넬’ 등 명품 브랜드 이름을 입력하면 검색 결과가 뜨지 않지만 ‘럭셔리 슈즈’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관련 가품이 많이 뜬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시장을 타깃팅한 보완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기업 보호를 위해 3년 동안 100억 원을 투자하고 소비자들이 가품으로 의심되는 상품을 구매했다면 증거를 제출할 필요 없이 100% 환불이나 반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알리익스프레스가 내놓은 대책들이 가격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알리익스플레스가 가진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품 논란을 해소하고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면 알리익스프레스가 더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교수는 “익숙한 앱에서 다른 앱으로 갈아타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인 ‘스위칭코스트’가 크면 소비자들은 본인들이 구매하던 앱을 계속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소비자들이 쿠팡에 익숙해진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이 초반에는 로켓배송 등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을 선점했지만 이제는 소비자들이 꼭 로켓배송 때문이 아니라 쿠팡이 익숙하기 때문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앱을 검색해보면 100~200원 더 싸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노력을 하기 보다 익숙한 쿠팡을 이용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앞으로 어떻게 전략을 잡느냐에 따라 고객 선점이나 유지 여부가 갈릴 것”이라며 “알리익스프레스가 국내 시장 공략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쿠팡을 넘기는 힘들 것 같고 다른 국내 플랫폼들과 경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