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과잉 주도, K배터리에 '디스플레이 악몽' 재현되나

▲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을 이끌어 한국 배터리 3사에 중장기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생산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내수시장에서 모두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의 물량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중국업체들이 물량 공세로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을 주도하며 한국에 큰 타격을 입혔던 사례가 배터리 분야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자국 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 업계의 수요보다 훨씬 많은 수준의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조사기관 CRU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중국 전체 배터리 생산능력이 1500GWh(기가와트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연간 배터리 수요는 636GWh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생산 물량은 2배를 넘는 셈이다.

현재 대부분의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배터리는 해외 고객사의 수요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내수시장 수요에 의존하고 있다. 공급 과잉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철강과 알루미늄, 태양광 등 다른 산업에서 나타났던 공급 과잉 사례가 배터리 분야에서 재현될 것이라는 업계 전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 도움을 받아 물량 공세에 뛰어든 중국 업체들이 결국 해당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업황 변동을 이끌어 점유율을 늘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강세를 보이고 있던 분야라는 점에서 이러한 시장 변동은 특히 한국에 잠재적 리스크로 자리잡고 있다.

CATL과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는 이미 한국 경쟁사들에 글로벌 점유율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는 확실한 입지를 차지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치열해져 배터리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면 한국 배터리업체는 재무 상황 등을 고려해 시설 투자와 생산 규모를 조절해야만 한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만큼 수익성 악화보다 점유율 상승을 우선 순위로 두고 공격적인 시설 투자와 생산 증대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잡게 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다.

이러한 일은 이미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중국 정부 지원을 받은 현지 업체들의 공세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큰 타격을 입었던 전례가 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과잉 주도, K배터리에 '디스플레이 악몽' 재현되나

▲ 중국 쓰촨에 위치한 CATL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 < CATL >

중국 기업들은 생산량에 맞춰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LCD 패널 가격이 급락하고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도 계속 생산을 확대하며 글로벌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결국 전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던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LCD사업은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장기간 적자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한국 디스플레이업체들은 결국 LCD사업을 사실상 중단하는 수순을 밟았다.

BOE와 같은 중국 기업은 LCD시장의 지배력을 높인 성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올레드 등 신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한국 경쟁사를 점차 위협하고 있다.

물론 디스플레이와 전기차 배터리의 특성은 매우 다르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장 논리는 비슷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중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현지 제조사들이 공급 과잉을 이끌어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계속 성과를 낸다면 한국 배터리 3사는 갈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물량 공세가 한국의 주력 산업에 큰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CATL 등 중국 배터리업체는 내수시장의 수요에 기반한 가파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전고체 배터리, 나트륨이온 배터리와 같은 기술 개발에도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한국 배터리 3사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따른 장기적 영향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RU그룹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 놓였다. 이에 따라 많은 물량이 해외에 수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공급 과잉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면 자연히 해외 수출 물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중국 경쟁사의 저가 공세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야만 할 수도 있는 셈이다.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주요 고객사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 등을 고려해 중국산 배터리를 사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지금보다 낮아진다면 정부 보조금 등 측면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중국산 배터리 채용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중국 배터리업체가 해외 시장에 배터리를 덤핑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더 많은 기업들이 중국 이외 국가로 수출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
 
중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과잉 주도, K배터리에 '디스플레이 악몽' 재현되나

▲ 중국 BOE의 디스플레이 기술 전시장. < BO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