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승부수, 소프트뱅크 ARM 상장에 엔비디아 웃도는 프리미엄 노린다

▲ 소프트뱅크가 자회사 ARM 기업공개를 추진하며 엔비디아 이상의 프리미엄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ARM의 인공지능 반도체 관련 이미지. < ARM >

[비즈니스포스트]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을 상장하며 최대 800억 달러(약 104조 원)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이는 현재 ARM의 실적을 고려할 때 엔비디아 주가에 붙은 프리미엄을 웃도는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어 손 회장의 강력한 ‘승부수’ 또는 '무리수‘에 해당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ARM은 9월부터 기업공개(IPO) 절차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며 600억~700억 달러 사이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증권가에서 거론되는 ARM의 예상 기업가치가 300억~700억 달러로 추정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목표를 세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관계자를 인용해 “ARM 경영진은 최대 8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여전히 목표로 두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나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바라봤다.

엔비디아는 ARM을 540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지만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손정의 회장은 결국 ARM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 계획을 철회한 뒤 미국증시에 상장을 처음 추진할 때만 해도 이처럼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왔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IT업황 침체와 경제 성장 둔화가 이어지면서 반도체주를 비롯한 기술주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었다. 챗GPT의 상용화가 불러온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이 IT기업의 투자 확대를 자극해 인공지능 반도체 관련주 주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현재 대표 기업인 엔비디아의 주가는 연초 대비 약 209% 상승했다. 경쟁사인 AMD 주가는 같은 기간 71%가량 올랐고 인텔 주가도 29% 가까이 높아졌다.

소프트뱅크가 지금 상황에서 ARM 목표 기업가치를 매각 추진 당시보다 대폭 올려잡은 것은 결국 ARM도 인공지능 반도체 주요 기업으로 인정받도록 하겠다는 손 회장의 의지를 보여준다.

2016년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할 때 들인 금액은 314억 달러(약 40조 원)다. 약 8년만에 두 배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손 회장은 ARM 상장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ARM의 주력 사업을 모바일에서 인공지능 반도체로 바꿔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과 미디어텍 등 모바일 프로세서를 직접 설계하는 기업에 모두 핵심 설계자산을 제공하며 사용료를 거두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수요가 둔화해 자연히 모바일용 반도체 시장도 위축되면서 ARM의 사업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퀄컴과 같은 대형 기업에서 ARM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반도체 아키텍처(설계기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점도 향후 실적에 불확실성을 더했다.

ARM은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의 기술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해당 영역에서 큰 성장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투자자들에 설득해 왔다.
 
손정의 승부수, 소프트뱅크 ARM 상장에 엔비디아 웃도는 프리미엄 노린다

▲ 마사요시 손(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손 회장도 외부 활동을 사실상 중단하고 ARM 상장 작업에만 수 개월째 집중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결국 ARM이 실제로 소프트뱅크에서 목표하는 수준의 기업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손 회장의 이러한 노력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로 꼽힌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큰 폭의 적자가 이어지며 부채 증가 등 재무구조 악화로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ARM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다만 손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도 ARM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ARM의 인공지능 반도체 관련 기술이 아직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잡지 않아 사실상 미래 성장 잠재력만으로 기업가치를 평가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배경은 전 세계 IT기업의 인공지능 서버 및 슈퍼컴퓨터 투자 확대로 A100과 H100 등 인공지능 반도체 주요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 있다.

ARM이 이러한 엔비디아보다 높은 수준의 프리미엄을 붙인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점이 성공적인 상장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에 엔비디아 수준의 프리미엄을 부여한 기업가치는 670억 수준으로 추정된다. 현재 소프트뱅크가 목표로 하는 가치는 이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결국 ARM이 실제로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 막대한 실적을 거둘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 엔비디아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는 시도는 무리수일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ARM이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처럼 대체 불가능한 기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실적을 고려한 적정 기업가치는 320억 달러에 그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