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호에 여전히 먼 승계의 길, 코오롱 구조조정으로 '경영 능력 인정'에 온 힘
- 이규호 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이 부회장은 경영 능력 입증을 위해 내년에는 코오롱그룹의 사업 재편을 통한 성과 내기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인 28일 코오롱글로벌 주식 1만518주, 코오롱인더스트리 주식 2441주를 개인자금으로 장내매수했다.매입 규모는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인더스티 주식 각각 1억 원으로 모두 2억 원가량에 머문다. 지분 비율로 보면 코오롱글로벌 0.05%, 코오롱인더스트리 0.01%에 해당한다.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지분 매입을 놓고 "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에 힘을 실어주려는 책임경영의 일환"이라고 말했다.이 부회장이 매입한 지분의 규모는 미미하지만 승계 작업의 첫발로 보며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이 부회장이 이번 매입을 통해 처음으로 코오롱그룹의 국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게 됐기 때문이다.이 부회장은 1984년생으로 40세를 넘어서까지 코오롱그룹의 지주사 코오롱은 물론 다른 국내 계열사의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지 않아 '지분 0%의 후계자'로 불렸다.국내 주요 그룹의 경영 후계자들이 대체로 성인이 되거나 기업 경영에 뛰어든 뒤에는 지분 확보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의 지분 확대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는 셈이다.특히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코오롱 주식을 보유하기 시작했다.이 부회장이 이번 지분 매입에서도 지주사인 코오롱의 지분을 매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으로 보인다.코오롱그룹은 지주사 코오롱이 주요 계열사의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코오롱의 지분만 확보하면 그룹 전체의 경영권도 확보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올해 3분기 말을 기준으로 이 명예회장은 코오롱 지분의 49.74%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코오롱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코오롱인더스트리 33.43%, 코오롱스페이스웍스 89.01%, 코오롱글로벌 75.23%, 코오롱모빌리티그룹 90.37% 등이다.이 부회장으로서는 같은 자금을 들여도 코오롱의 주식을 매입하는 편이 경영 승계 진행의 속도나 편의성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의미다.이 부회장의 행보는 경영 승계에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 않고 경영 능력 입증을 우선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코오롱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다른 경쟁자가 없다는 점, 총수 일가의 지배권이 확고한 지배구조 등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에게 경영 승계의 속도는 애초부터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있다.코오롱은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비상장사로 전환한 뒤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반면 경영 능력 입증은 이 부회장이 경영 승계에 명분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이웅열 명예회장은 2018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놓고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아버지로서 재산은 물려주겠지만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주식은 1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다만 코오롱그룹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이 경영 성과를 내기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주력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한국 석유화학 업황 악화에 고전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연간 영업이익은 2021년 2527억 원을 낸 이후 매년 줄어 2024년에는 1587억 원까지 감소했다. 코오롱글로벌 역시 건설 불황의 영향으로 지난해 566억 원 영업손실을 내 12년 만에 적자를 봤다.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벌은 코오롱그룹 전체 실적에서 7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이 부회장으로서는 눈에 띄는 지표상 경영 성과를 내려면 당장 업황의 반등과 같은 상황 변화를 기대하기 보다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한 사업 재편이 현실적 선택지일 수 있다.이 부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한 이후 2024년에 항공, 우주 등 사업과 관련해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출범하고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코오롱글로텍의 자동차 소재·부품 사업부문을 합병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에는 코오롱글로벌에 리조트 기업인 MOD, 자산관리 기업인 LSI 등 자회사를 합병했다.이 부회장은 현재 수입차 판매업 등을 하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비상장사로전환하고 코오롱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재계 한 관계자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이 코오롱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되면 배당을 통해 코오롱의 실적에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며 "비상장사 전환으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이 부회장에게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